주 형사가 가고 난 방... 너무도 조용하다. 난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모니터의 화면을 보았다. 보면 볼 수록 이상한 광경이다.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난다.
다섯 가치 째 피워 문 담배가 필터까지 타 들어갔다.
목이 말랐다.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냉장고로 가 물병을 꺼내들고 암실로
들어갔다. 죽은 소연의 사진이 여기 저기 걸려 있다.
난 물을 마시면서 사진들을 보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를 찍은 사진과
404호 문 앞에서 찍었던 몸체...
난 여섯 가치 째 담배를 꺼내 물며 물끄러미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지포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사진이 붙어 있는 곳으로 가서
잘려져 있는 머리사진을 떼어 몸체의 허리부분에 붙여 놓았다.
난 뒤로 물러서서 다시 한 번 그 사진을 보았다.
'주희가 본 것이 정말로 이것인가?......정말로 주희는 이것을 보고....'
피로 물든 하얀 가운....잘려진 목....만약 주희가 본 것이 이것이라면
그녀는 심장마비만으로도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갇힌 것에 대한 공포...
눈앞에 드러난 죽은 시체의 환상.....
난 사진을 떼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컴퓨터의 모니터 옆에 사진을
아까와 같은 식으로 붙여 놓았다.
난 모니터에 나타난 엘레베이터 안의 희미한 형체와 옆에 붙여 논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 이것을 본 것일까?....설마....이건 아닐 꺼야!'
난 붙여놓았던 사진을 떼어 버렸다.
한 숨과 함께 빨아들였던 담배연기를 뱉어내고는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었다.
난 컴퓨터의 모니터를 멍하니 보다가 마우스를 드래그하여 [하얀천사]라는
제목의 폴더를 눌렀다. 창이 열리면서 문서파일과 그래픽 파일이 보였다.
난 그래픽 파일을 열었다.
주 형사에게서 빼앗아왔던 소연의 생전 모습을 스캔 받은 사진.....
환한 미소를 짖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의 시야로 들어왔다.
흐릿한 배경화면의 가운데에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
도대체 왜.....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부셔뜨린 것이지?
왜 인간들은 아름다운 것을 가만히 관조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인의 미소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짓밟아 버린 것일까? 도대체 무엇때문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나 냉정하게 모든 것을 생각했던 내가
왜 이렇듯 감정적이 되는 것일까?
난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컴퓨터를 꺼버리고는 오피스텔 밖으로 나왔다.
이성적이 되기 위해선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다. 감정에 치우치면 판단이 흐려진다.
신발도 신지 않고 복도를 걸어나갔다. 난 가끔 깨끗한 오피스텔의 복도를 맨발로
걸어다니곤 한다. 나의 여러가지 특이한 행동들을 보아온 오피스텔 사람들은
이젠 이런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무척 늦은 시간....비가 간간히 내리고 있는 거리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난 오피스텔 로비의 창문 앞에 쭈그려 앉아 일곱가치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두번의 살인사건...
소연의 죽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엇갈린 시간진술...
CCTV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형체...'
난 눈을 감고 증인의 진술을 하나 하나 생각했다. 그 중 약간 의심스러운
사람이 기억났다.
504호에 사는 정찬호...20살의 대학생... 그가 증언을 하면서 보인 반응은
공포라기 보다는 슬픔이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거 같아...'
그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참...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런....이런....'
담배를 버리고 난 신발을 신으러 방으로 올라가려 하다가 그냥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상아 아파트를 향해 출발했다. 난 제일 중요한
윤 소연의 집을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아 아파트에 도착한 난 그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엘레베이터에서 나오는 안경을 쓴 남자와 마주쳤다.
504호에 사는 정찬호..
그가 날 보며 흠칫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나의 인사에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했다. 난 그에게
미심쩍은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소연의 방을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닫기 버튼을 누르고 14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가 싶더니 다시 열린다. 뭐지....? 닫히는 문 사이로 그가 보였다.
안경을 쓴 504호의 정찬호였다. 그는 날 바라보고 있다.
약간 기분이 이상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난 그가 5층에 사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튼을 눌러주며 물었다.
"뭐 잊어버리고 나오셨나 보지요?"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가 올라가고 잠시 후에 5층을 알리는
소리 음이 나며 문이 열렸다. 난 그가 나가기 편하도록 문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그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날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어요."
갑작스런 그의 말에 난 놀랐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역시 이 사람 무언가 알고 있어.'
엘레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난 그가 빨리 무슨 말을 하길 바랬다.
그는 날 보며 약간 주저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소연이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요."
소연이 누나? 그럼 피살자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군.
"뭐지요? 말해보세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엘레베이터가 멈추어 섰다.
8층과 9층 사이였다. 찬호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이럴수가?"
난 엘레베이터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고장인가 본데요."
"고...고장이 아니야. 안돼...안돼."
"왜 그래요?"
"죽을꺼에요. 우리 죽을 꺼라고요. 으아아..."
"이봐요. 진정해요. 고장난 것뿐이라고요. 정신차려요."
그의 눈이 공포로 가득 찼다. 난 비상벨을 눌렀다. 스피커폰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다. 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주희에게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상황?'
갑자기 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공포로 인해서? 아니다. 난 지금
주희에게 일어난 일이 내 앞에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제 좀 있으면 문이 열릴 것이고 주희가 본 그 괴형체를 나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찬호는 구석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죽을 거라고요. 다 죽을 꺼에요."
그는 머리를 싸쥐고 소리를 질렀다.
"이봐 조용히 좀 해. 단순 고장일 뿐이야 시끄럽다고!"
난 여전히 엘레베이터의 문을 바라보며 찬호에게 소리쳤다. 찬호는 더욱 몸을
움츠리며 구석 쪽으로 몸을 붙였다.
난 그를 신경쓰지 않고 긴장을 한 채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와라...와....너가 누군지 내가 반드시 밝혀내지...와라.'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 쪽에서 눈을 한시도 때지 않고 빨리 문이
열리기를 바랬다.
'열려라. 어서...열려라. 지금 이렇게 널 기다리고 있다.
어서....모습을 나타내봐. 어서...'
난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드디어 보게 된다. 내 눈으로 직접....
주희가 보았던 그것이 무엇인지 이 두눈으로 직접보게 되는 것이다.
(8편 끝...)
INTERVAL: 몇달전, 마루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을 때, 몸이 아프신 할머니가
날 부르셨다.
오래전 부터 몸이 많이 아프셨던 할머니는 너무도 힘드셨던 것 같다.
"약 좀 사다줘... 너무 아파서... 죽고싶어...편안히 죽을 수 있게,
약 좀 사다줘...."
할머니가 말하시는 약은 아픔을 참기위한 약이 아니라, 죽기위한
약이었다.
할머니에게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드리며 말했다.
이 약 드시면 안 아플거라고... 그런 소리 하시지 말라고....
밖으로 나온 난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얼마뒤 할머님의 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이상해서 들어가 본
난 이불위에 누워 계신 할머님을 보았다. 잠이 드신 것 같아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온 나...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서 할머니에게 드릴 밥을 차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진지 드세요. 할머니..."
대답도, 움직임도 없으셨다.
언제나 찡그리고 계신 할머님의 얼굴...
괴롭고 힘들어 하시던 할머님의 그 짜증이 베인 얼굴...
그런 할머님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고요하고 편안해 보인다.
저런 할머님의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난 밥상을 내려놓고 할머니를 똑바로
뉘었다. 그리고 말했다.
"할머니...이젠 안 아플 거에요."
난 이불을 덮어드리고.....전화를 걸었다.
"엄마....할머니 돌아가셨어요."
그때서야 눈물이 나왔다. 10년동안 병석에 계셨던 할머님의
찡그린 얼굴은 바로 할머님의 고통스런 영혼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몸의 고통에서 해방된 할머님의 영혼은 할머님의 평온한 표정처럼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은.....
..........마지막 해커로부터..........
카페 게시글
┃개그및영상┃
[마지막해커 후속편 "시간의 역류"](8편)
착한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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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0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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