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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단 심문과 종교 재판의
압제 속에서 탄생한
현실적 조언과 세속적 지혜
스페인 ㆍ 중남미 문학의
최고 권위자가 가려 뽑은
발타사르 그라시안 철학의 정수
“참다운 지혜는 불의한 사람과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쓸모 있는 무기이자 수단이어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불멸의 스승으로 여기고, 니체가 인생의 지침으로 삼은 일상의 철학자
발타사르 그라시안이 전하는 세속적 지혜의 기술
2023년 11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한 출연자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소개한 뒤 그의 저작들이 2024년 상반기 대한민국 서점가를 휩쓸었다. ‘쇼펜하우어 열풍’이라 부를 만했다. 그와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끈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으니, 쇼펜하우어가 공공연히 ‘불멸의 스승’이라고 밝힌 발타사르 그라시안이었다.
그라시안은 신학과 철학, 인문학에 정통한 가톨릭 사제이자 대학자였고 뛰어난 연설가였다. 하지만 그가 펴낸 저작들은 종교적 이상이나 관념적 윤리, 현학적 지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귀에 쏙쏙 박힐 만한 현실적 조언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저서들이 1600년대 중반 유럽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처럼 대중 친화적인 그의 저작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감을 샀고, 가톨릭 고위직 세력은 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라시안을 탄압했다. 1658년 급기야 그라시안은 자신이 소속되었던 예수회를 탈퇴하겠다는 청원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같은 해 세상을 떠난다.
그라시안은 인간세상과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힘을 가진 탐욕스러운 소수가 대다수의 민중을 착취하고, 우매한 민중으로 하여금 지배층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욕망을 자극하고 유혹하며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구조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보았다. 사실 이러한 욕망의 구조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불의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라시안의 언어들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당대와 근대, 현대의 편협한 학자들에 의해 철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통속 작가’에 머물러야 했던 그라시안의 세속적인 조언들은 불의한 세력과 각박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기에 오히려 위대한 사상과 철학들이 쇠락해갈 때도 400년의 시간을 넘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혜의 쓸모 : 초역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마지막 인생 수업』은 스페인어권 문학이 우리나라에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던 스페인ㆍ라틴 문학 권위자 송병선 교수가 그라시안의 저작들 속에서 가려 뽑은 글들로 구성했다. 송병선 교수는 1990년대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저작들을 거의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인간관계, 공부, 삶의 의외성, 인간의 품위에 관한 글들은 단순한 도덕과 윤리의 지표가 아니라 각박한 현실을 지혜롭게 건너도록 이끄는 뛰어난 무기이자 수단으로 다가갈 것이다.
저자 소개
발타시아 그라시안 Baltasar Gracián y Morales
1601년 스페인 사라고사 지방의 벨몬테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1619년)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26세였던 162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인문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교의 다른 사제들과 자주 갈등을 일으켜 부임지를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했다.
1937년 『영웅(El Héroe)』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이자 한국에 가장 많이 소개된 『세속적 지혜의 기술(El Oráculo Manual y Arte de Prudencia)』(스페인어를 직역하면 ‘신탁 편람과 신중함의 기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얻는 지혜’, ‘지혜의 말’ 등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권에서 발타사르 그라시안 붐을 일으킨 번역본의 제목은 ‘The Art of Worldly Wisdom’이었다. ‘세속적 지혜의 기술’은 이 영어판 번역본의 제목을 옮긴 것이다)을 비롯하여 세상살이에 관한 조언을 담은 에세이와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을 다수 발표했다. 로마 가톨릭 사제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은 종교에 관해서는 극히 제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종교적이고 추상적인 윤리의식에서 벗어난 현실적 도덕관을 피력해 대중의 호응을 얻었으나, 당대의 지식인과 성직자들로부터 반감을 샀다. 말년에 그는 가톨릭계로부터 교회의 승인 없이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 처벌과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1658년 예수회에서 탈퇴하겠다고 청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같은 해에 사망했다.
목차
CHAPTER 1
때로는 길을 잃어야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
: 의외성으로 가득한 삶을 슬기롭게 건너는 방법
01 계획대로만 살면 인생이 계획의 틀에 갇힌다
02 사람들은 누군가의 실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뒤의 행동을 기억한다
03 삶의 시작과 끝은 다르지 않다
04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는 것이다
05 상황이 나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더욱 나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06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다면 생각을 내버려두라
07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08 지금 행하지 않는 것은 결코 지혜가 아니다
09 지금 저지른 작은 실수가 내 미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10 모든 것을 갖고도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
11 남이 나에게 하는 거짓보다 내가 남에게 하는 거짓이 훨씬 더 해롭다
12 사람의 인생에는 종말이 없다
13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라
CHAPTER 2
지혜를 흉내 내라, 지혜로워지리라
: 품위 있고 현명하게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는 삶의 태도
14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살림을 함부로 키우지 마라
15 현명한 사람은 꺾이지 않는다
16 나 자신의 한계를 알면 삶이 분명해진다
17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
18 말을 되새김질하라
19 실수하는 법을 배워라
20 늙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낡지는 말라
21 오감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육감을 키워라
22 세상의 것에 휘둘리지 말고 의지대로 나아가라
23 품위가 부족할수록 고귀하게 행동하고 품격 있게 말하라
24 인내할 때 비로소 정신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25 용기는 신중함 속에서 빛을 발한다
26 대중의 생각 속에 숨어 있는 속임수를 발견하라
CHAPTER 3
관계가 풀려야 인생이 잘 풀린다
: 나를 중심에 놓는 관계 맺기의 지혜
27 분노하되 절대로 화를 내지는 말라
28 내가 진정으로 다스려야 할 단 한 사람
29 친구 서너 명이면 충분하다
30 천박함은 시끄럽다
31 자신을 높이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마라
32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꾸며서 내보인다
33 세상이 가장 훌륭한 경전이고 사람이 가장 좋은 선생이다
34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35 남자의 얼굴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여자의 속마음
36 그 사람의 출신을 보고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
37 이성의 화려함에 넘어가지 마라
38 욕심이 많은 사람을 절대로 곁에 두지 마라
39 진정한 우정은 나의 세계를 넓혀준다
40 스스로 양심적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라
41 사소한 행위에서 본심을 파악하라
42 악은 자신이 하는 일을 드러내지 않는다
CHAPTER 4
삶이 깊어지면 다시 공부가 시작된다
: 어떻게 현재의 한계를 깨고 나라는 존재를 확장할 것인가?
43 하루를 살았으면 하루어치의 깨달음을 얻으라
44 어제를 딛고 오늘을 숨 쉬며 내일로 향하라
45 스물한 살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
46 말을 하면 생각이 흩어지지만, 글을 쓰면 생각이 모인다
47 책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다
48 남의 생각을 자기 것인 양 떠벌리는 사람을 주의하라
49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
50 결과물을 만들어내라
CHAPTER 5
세상의 일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라
: 고단한 주인공보다는 평온한 조연으로 살아가는 지혜
51 이기적으로 지혜롭게 처신하라
52 세상에는 피하는 게 상책인 일이 많다
53 중심을 지키며 주변을 살펴보라
54 불행한 세상은 거짓에서 시작된다
55 탐욕에는 한계가 없다
56 땀 흘리는 일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57 노년에 이르면 자신이 고집해온 것들을 버려야 한다
58 관공서에서는 절대로 화내지 말라
59 삐뚤어진 몸이 삐뚤어진 마음보다 낫다
60 진실이 반드시 당신의 입을 통해 드러나야 할 이유는 없다
61 신뢰가 가장 뛰어난 자산이다
62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옳다고 믿는 것을 오히려 조심하라
63 한쪽으로 거짓이 들려와도 다른 한쪽으로는 진리에 귀 기울여라
64 진실은 교만과 분노를 불러오지 않는다
65 비판은 사라지고 찬사만 들려온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신호다
66 침묵으로 악의에 동조하지 말라
옮긴이의 말
첨예한 현실과 개인의 일상으로 눈길을 돌린 철학자
책 속으로
계획대로만 살아가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계획에 갇히게 된다. 사실 인생 계획이라는 것은 내가 좌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내 삶을 가두어놓는 행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내가 구상한 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나의 시간과 인연과 성과가 내 손아귀 안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운명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바꾸어 말하면 내 운명을 지배하기 위해 삶을 계획이라는 틀 속에 구속한 것인지도 모른다.
_ 「계획대로만 살면 인생이 계획의 틀에 갇힌다」 17~18쪽
이름을 드날릴 만큼 뛰어난 업적을 쌓고, 누구나 찬사할 선행을 베풀었다 해도 실수에 잘못 대처하면 그 모든 명성을 잃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오래 기억하지 않지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관해서는 쉽게 잊지 않는다.
_ 「사람들은 누군가의 실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뒤의 행동을 기억한다」 20~21쪽
누군가 나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손해를 입혔을 때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저주를 퍼붓거나 격한 행동을 하면 상대방의 죄책감을 덜어주게 된다. 아니, 오히려 더욱 큰 앙심을 품고 적반하장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어차피 등을 돌린 사람을 내 편으로 되돌릴 수는 없으니, 그를 욕한다고 상황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혹시 그의 배신으로 인해 금전적 피해나 신체적 상해를 입었다면 공권력과 법의 도움을 받되 공공연히 그를 비방하지는 말라.
_ 「상황이 나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더욱 나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29쪽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 24시간이 주어진 것도 공평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숨겨진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공평하다. 지금 당장 권력과 돈을 얻고 명성을 누린다 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고 부당하게 행동했다면 시간은 그 추악한 면면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인다. 지금 거짓을 부리고 속임수를 써서 무언가를 얻었다면, 시간은 그 모든 것을 빼앗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시간은 교만한 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흐른다. 시간은 모든 겉치레를 벗겨내고 본질을 보여준다.
_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라」 51~52쪽
대부분의 사람은 고매한 인격을 가진 이가 품격 있게 말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 상황도 성립한다. 말에 품위를 실으면 그 사람의 인격이 말을 닮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천박하고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그의 인격과 품위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수준으로 떨어진다. 반면에 머리에 든 것이 없고 품행이 가벼운 사람이라도 고상한 말을 쓰면 그의 인격과 품위가 고상해진다. 인격에서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 인격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_ 「품위가 부족할수록 고귀하게 행동하고 품격 있게 말하라」 83~84쪽
세상에는 악한 것이 많다. 그 악한 것들을 취하거나 그편에 설 때는 순간적이나마 이득이 찾아온다. 욕심은 돈을 가져오고, 사치는 쾌락을 느끼게 하며, 교만은 명예를 맛보게 하고, 게걸스러움은 맛나고 기름진 음식을 누리게 하고, 게으름은 휴식을 준다. 하지만 화는 어떤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로지 상처와 충격과 멸망을 가져올 뿐이다.
_ 「분노하되 절대로 화를 내지는 말라」 95~96쪽
그 사람의 인격을 알고 싶다면 그가 자신보다 신분이 낮거나 어린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 지위가 낮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서 상전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리고, 아랫사람들에게는 잔소리와 쓴소리를 쉬지 않다가도 윗사람이 나타나면 표정을 싹 바꾸는 그런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천박한지 알지 못한다.
_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110쪽
출판사 서평
“우리는 나 자신에게는 매일 지면서 타인을 이기려고만 한다.”
: 나를 먼저 설득하는 그라시안의 수사학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수사학은 정치 지망생들의 필수 과목이었다. 수사학이 개인 또는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뜻과 의도를 관철하는 웅변술이었기 때문이다. 토론 문화가 크게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이 최고의 능력자였다. 그러다가 중세에 이르러 수사학은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는 미사여구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때를 맞추어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개인이 대중에게 호소하는 매체는 웅변이 아니라 글이 되었고, 수사학은 웅변의 영역이 아니라 문학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상대를 설득하는 실용성을 담보로 하던 수사학이 예술의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수사학이 문학의 예술성을 치장하는 도구로 활용되던 1600년대에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고대 그리스 수사학이 지닌 원래 성격을 글에 도입하여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문(美文)과 현학적인 표현으로 인해 지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대중으로부터 괴리된 채 엘리트의 문화로만 향유되던 ‘글’에 ‘직접 화법’을 이식함으로써 독자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수사학이 설득하는 대상이 타인이었던 반면 그라시안 수사학이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은 ‘나’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에게 등을 돌린 대상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그라시안은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차라리 나를 더 단단하게 무장하는 것이 이롭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고 그라시안이 주구장창 이기적 노선을 취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태생적인 인간의 단점을 극복하고 주변 환경에 지배되려는 나를 바로 세우며 타자와 나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할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갖가지 위기와 위협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ㆍ 계획대로만 살아가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계획에 갇히게 된다.
ㆍ 사람들은 실수에 대해서는 오래 기억하지 않지만, 실수를 저지른 이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쉽게 잊지 않는다.
ㆍ 욕심은 돈을 가져오고, 사치는 쾌락을 느끼게 하며, 교만은 명예를 맛보게 하고, 게걸스러움은 맛나고 기름진 음식을 누리게 하고, 게으름은 휴식을 준다. 하지만 화는 어떤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로지 상처와 충격과 멸망을 가져올 뿐이다.
ㆍ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천박하고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그의 인격과 품위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수준으로 떨어진다. 반면에 머리에 든 것이 없고 품행이 가벼운 사람이라도 고상한 말을 쓰면 그의 인격과 품위가 고상해진다.
ㆍ 그 사람의 인격을 알고 싶다면 그가 자신보다 신분이 낮거나 어린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
ㆍ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은 교만한 자들을 굴복시키고 모든 겉치레를 벗겨내어 본질을 보여준다.
그라시안의 조언은 때때로 세상에 유통되는 도덕과 배치되고는 한다. 그 이유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도덕과 윤리 가운데 많은 것이 지배자의 통치 원리에서 파생한 까닭이다. 또한 순간적인 상황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방법과 세상의 이치가 우리의 삶에 작동하는 방식에서 대해서 알려준다. 이로 인해 독자들께서는 세상일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나 명확하게 와닿지 않던 많은 부분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가슴에 품고 다니며 가끔씩 꺼내어볼 인생의 문장들”
: 현대인의 삶에 나침반이 되는 세속적 지혜의 경구
최근 들어 훌륭한 문장을 베껴 쓰는 필사 노트 종류의 책이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라고 일컫는 엘리트 계층의 처참한 국어 수준에 대한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울러 믿고 따를 만한 지도자와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훌륭하고 뛰어난 생각이 담긴 과거의 문장을 대하며 불안함과 허전함을 채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대한 위인 대부분은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경구와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삶의 여러 갈래 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그들은 그 오랜 경구와 문장을 꺼내 길을 물었다.
감히 독자에게 이 책을 내민다. 옮긴이 송병선이 그라시안의 저작들에 실린 글 가운데 가려 뽑은 지혜의 정수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쇼펜하우어는 그라시안의 책을 두고 “평생 가지고 다니며 읽어야 할 인생의 동반자”라고 했고, 니체는 “이처럼 세련되고 정교한 인생 지침을 이제껏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철학 세계에서 괴팍하고 까다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 두 인물이 스승으로 모시고 지침으로 삼았다는 점은 그만큼 그라시안의 가르침이 비범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400년 넘게 이어져온 그라시안의 글과, 그 지혜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은 책으로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삶의 고전’으로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