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 펜션의 창 밖에서 닭들이 시끄럽게 홰를 치고 울부짖었다. 망가진 꽃밭 위에서는 흉측한 빛깔의 밴이 끝없이 매연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신경한 주인 무스타파가 시동을 걸어놓고 볼일을 보러 떠난 사이 낡은 엔진이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일어나기 전, 간밤에 꺼내놓았던 것들을 빠짐없이 가방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펜션의 식당으로 내려왔을 때, 메멧이 내 가방을 눈여겨보았다.
"떠날 건가요?"
"네."
"바닷가는요?"
"이제 가볼 필요가 없어졌어요. 식사 후 바로 이곳을 떠날 거예요."
나는 메멧에게 다음 행선지를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동쪽의) 페티에가 될 것 같아요. 파타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서쪽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시계반대 방향으로 터키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되돌아가는 것은 안 되는 것일까. 여행은 기록을 갱신하기 위함이 아닌데.
"당신은요?"
"나는 되돌아가요, 올림포스로. 그곳에서 남은 일정을 다 보낼 거예요."
밴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밴을 타고, 우리는 올림포스로 되돌아왔다. 맨 처음 오렌지 펜션에 도착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좀더 본격적인 물놀이를 위해 새로 산 오천 원짜리 장난감 트럭이 이끌려 왔다는 것. 펜션의 일꾼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아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무슨 연유로 우리가 되돌아왔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유습을 찾으러 갔다.
| | | | ⓒ2004 오소희 | |
허겁지겁 유습이 뛰어나왔다. 그의 뺨은 발갛게 상기되었고, 그의 눈에는 옅은 반가움의 눈물이 맺혔다. 비로소 사람들이 일제히 질문을 터뜨렸고 유습이 내게 통역을 했다.
"어디에서 오는 길이에요?"
"장난감 가게에서요."
와하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머지 질문들. 어디에? 파타라에. 어땠나요? 훌륭한 곳이었어요. 올림포스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깨닫게 해주었으니까요.
이번엔 내가 물었다.
"나처럼 다시 되돌아온 외국인이 있었나요?"
"아니오. 단 한 번도."
그들은 올림포스를 다시 찾아준 이방인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기쁨을 표했다. 점토가 물을 만나 부드럽게 허물어지듯, 무뚝뚝함이 허물어지고 다정한 미소가 스민 얼굴들은 완전히 다른 이목구비처럼 보였다. 하티제는 차를 내왔고 유습은 CD를 올렸다. 일꾼들은 공놀이를 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뒤뜰로 갔다. 나는 정말로 집으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이들을 위해 아무 선물도 사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닷새를 더 보냈다. 오솔길과 지중해와 모닥불과 새로운 사람들.
그 닷새 가운데 어느 날은 '드디어' 유적 탐방을 했다. 아이는 내 예상과 달리 험한 산세 구석구석 숨어 있는 유적들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다. 때로는 나를 앞장서 또 다른 유적으로 안내하기도 하면서.
"We are lost!"(우린 길을 잃었어!)
아이는 나름대로 혼자만의 상상에 심취해, 책에서 본 모험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숲 한가운데에 숨겨진 목욕탕 잔해에 앉아 천년을 한결같이 같은 시간, 같은 돌무더기 위에 내려앉았을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았다. 고즈넉한 시간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와 웃자란 풀더미 뒤에서 무너진 극장과 무덤, 또 용도를 알 수 없는 그 옛날 누군가의 공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유적이란 아이에게 그저 점프를 하기 적합한 돌덩어리일 뿐이어서, 타박타박, 아이가 지침 없이 뛰어내리는 소리가 조용한 숲속에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오래된 혼령들이 유적들 가운데서 되살아나 움직이고 차가운 돌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그들만의 온화한 생을 유지해나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었다.
또 그 닷새 가운데 어느 날인가는,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너 한국 사람이냐?"
중빈과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한국인의 얼굴 윤곽을 정확히 짐작하고 아이에게 말을 걸어온 이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셨다고 했다.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분이 내게 맨 처음 들려준 말씀이었다.
"내가 한평생 번 돈, 길 위에서 다 쓰고 죽을 거야."
그 말씀은 마치 선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무슨 투쟁처럼도 들렸다. 자신도 집이 있어야 하고 자식 집까지도 장만해주어야 부모 노릇 했다 소리 듣는 한국에서, 연금을 일시불로 타서 세계일주를 하는 데 다 쓰고 죽겠다는 것은 가족에게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작년엔 두 달 동안 남미를 여행했어. 밤새워 버스 타고 이동하는 짓을 두 달 동안이나 했는데도 끄떡없었어.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건강이 최상이야. 아프지도 않아."
할아버지에게선 매캐한 땀냄새가 났다. 그는 여행을 노동처럼 하고 있었다. 한평생 미뤄온 세상구경을 뒤늦게 하려니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발걸음이었다. 이렇게 좋고 넓은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억울하다는 발걸음이었다.
"Where's your wife?"(부인은 어디 계신가요?)
한 터키인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꿈은 이기적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꿈이라는 것의 속성이 현실을 배반하기 때문에, 꿈꾸는 자를 얽어매고 있는 지독한 현실, 즉 생계나 가족 같은 것에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후회가 남지 않는 것만이 더 나은 것일 것이다.
"매일 아침 영어 다섯 문장씩, 하루도 빠짐없이, 총 2000 문장을 외웠어. 그래서 아쉬운 소리는 다 해."
할아버지의 영어는 거칠고 단도직입적이었지만, 의사를 관철시키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여행 가이드북을 보고 경악했다. 헌책방에 가도 구하기 어려워 보이는, 절판 된 지 수십 년은 지난 듯한 책이었다. 목적지에 어떻게 도착하는지, 그곳에 호텔은 있는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책이었다. 오직 <터키의 가볼만한 곳>이라는 부제 하에 각 지역의 사진 한 컷씩이 들어 있고 그 밑에 지역명이 씌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가 몽둥이처럼 둔탁한 영어 실력과 괴나리봇짐처럼 작은 배낭, 믿을 수 없이 형편없는 (여행서라기보다는) 사진첩 하나만을 들고 세계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누비는 것을 상상해보곤 한다. 그러면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들곤 한다. 우리가 흔히 늙음에 대해 가지게 되는 초라하고 우울한 기분, 그리고 지금 당장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생활자의 고민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간단히 짓뭉개버리며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가능한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네가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리고 또 그 닷새 가운데 어느 날 밤, 유습이 내게 물었다.
"방갈로 문에 달린 손잡이들을 보았나요?"
뒤뜰의 오렌지 나무 사이를 산책하면서, 나는 그 손잡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손잡이마다에는 몇 가지 안 되는 페인트로 제각각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열악한 재료만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을 작업임을 감안한다면, 색상과 균형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다.
유습은 비밀을 털어놓듯이 수줍게 말했다.
"그거, 내가 그린 거예요."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습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나요?"
"여기 당신 말고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또 있던가요?"
그렇게 나와 유습의 긴 대화는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당신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당신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거친 말 외에도 당신이 선곡하는 음악, 작은 사건을 대하는 당신의 표정, 그 모든 것들은 마치 당신이 말을 걸 듯이 타인에게 끊임없이 전달되어요. 당신이 그린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당신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보다 방갈로의 손잡이에 그려 넣은 점 하나가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지요.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떤 곳에서는, 그런 점 하나의 의미를 매우 중시하기도 한답니다. 당신이 찍은 점 하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우주, 당신의 전부이기도 해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렇군요. 올림포스는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러니 이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것도 멋질 거예요. 하지만 지금 당신이 가진 꿈은 광산촌에서 자란 아이가 광부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선택된 꿈이 아니라 운명처럼 짐 지워진 꿈이죠.
아직 젊은 당신에게 런던이나 파리는 이곳에서 먼 곳이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런던의 아무 미술관이나 들어가 그곳에 걸린 그림들을 본다면, 확신하건데, 당신은 몹시 충격을 받을 거예요. 고호나 샤갈이나 마티스, 혹은 루벤스...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굉장히 유명한 화가들이에요. 당신이 그 그림들과 마주한다면, 그 그림들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거예요. 이곳에서 당신이 주고받았던 말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요. 처음부터 그 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는 당신이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요. 왜냐면, 당신은 '알고 싶기' 때문이죠. 이곳에도 좋은 음악이 있고, 당신은 그것이 좋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또한 당신은 그것이 음악이라는 방대한 우주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있고, 알고 싶어하고,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재능입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테이블을 닦고, 멍청한 대학생들의 수발을 드는 것보다, 훨씬, 훨씬,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일은 짧은 시간에 많은 토마토 껍질을 벗기는 일이죠.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당신이 일 분에 몇 개의 토마토를 손질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대신 그들은 당신이 손잡이 위에 찍은 점의 의미를 궁금해 할 거예요. 그들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거예요.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처럼요. 그들의 말은 난해하고 기교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난해함과 기교에 있지 않아요. 그들이 당신을 깨우쳐주는 데에 있어요. 당신이 당신의 점을, 그 점으로부터 시작될 모든 미래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고맙게도, 유습은 나의 말을 잘 이해해주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모두 흥미롭다면서, (그동안 그가 받은 질문들은 기껏해야 "설거지 다했어?" 같은 것들이었을 테니)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질문해 달라고 했다. 밤이 깊어졌으므로, 나는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은 스스로 해답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런던의 어느 골목에서 밤에는 접시닦이를 하고 낮에는 행복한 얼굴로 미술관 탐험을 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우리는 함께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나서도 여전히 올림포스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싶다면, 그거야말로 당신의 '선택'이겠죠."
나는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와, 그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또 그 닷새 가운데 마지막 날, 아이와 나는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올림포스의 해변에는 얕은 여울이 있었다. 아이가 개구리 소리를 들었던 연못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약 10미터 길이의 여울이었다. 폭은 2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무릎 정도까지만 올라오는 얕은 물이긴 한데, 해변 가운데를 똑 잘라먹는 역할을 해서, 누구든 이 해변을 산책하고 싶은 사람은 이 여울을 건너야만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은 등산화 끈을 모두 풀었다 발을 말리고 다시 신어야만 했고, 나 같은 경우는 늘 아이를 안아서 건넨 뒤 다시 나머지 짐을 들고 건너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랐다.
마지막 날 저녁, 나는 올림포스에 무언가 '해주고' 싶은 강력한 에너지에 휩싸였다. 올림포스를 향해 어떤 식으로든 남은 힘을 몽땅 쏟아놓지 않으면, 다음 날 떠나면서 또 미련이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해가 질 무렵 불현듯 솟아난 그 에너지는 아무런 계획도, 차분한 구상도 없이 무작정 돌을 들고 여울에 댐을 쌓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보기와는 달리, 여울의 물살은 꽤 거센 것이어서 웬만한 무게의 돌들은 내려놓자마자 바로 떠내려가 버렸다. 나는 점점 무거운 돌을 골라 바닥에 쌓기 시작했다. 내 형편없는 주먹구구식 계산에 의하면, 먼저 무거운 돌들로 댐을 쌓아 지반을 높인 뒤 그 위에 결정적으로 커다란 돌 몇 개를 나란히 올려놓으면 징검다리가 완성될 것 같았다.
왜소한 동양여자가 윗도리를 벗어젖히고 직경 50센티 가량의 바위를 나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리가 달달 떨려서, 굴리다시피 아랫배까지만 간신히 들어올렸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팔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어깨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것이 오히려 나르기 수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가 내가 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던져두고 함께 작은 돌멩이를 나르기 시작했다. 댐이 어느 정도 높아지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박수를, 어떤 이는 미소를, 어떤 이는 바위 하나를 보태주었다.
내가 찾던 크기의 바위가 많이 모여 있던 곳은 동굴 앞이었는데, 그곳에서는 한 쌍의 백인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옷은 다 걸치고 있었지만,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쪽쪽 쩝쩝 소리를 내며 애무를 하고 있었다. 별로 그들을 방해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들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되도록 그들에게 시선을 자제하면서 바위를 날랐다. 그런데 내가 자꾸 그쪽을 드나들자 키스에 열중하던 아가씨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남자는 고도로 집중하는 반면, 먼저 산만해지는 것은 언제나 여자 쪽이다. 동양인처럼 까만 머리숱에 통통한 이 아가씨는 내게 살짝 미소를 짓더니, 나와 함께 돌을 나르기 시작했다.
"Honey! Honey! Come here!"(자기야, 자기야, 좀 이리 와!)
계속해서 애인을 부르며 황당해 하는 남자친구의 얼굴. 나는 그 표정이 재밌어서 중얼거렸다.
'녀석, 평소에 키스 연습 좀 하지. 오죽하면 바위한테 여자친구를 뺏기냐...'
나보다 힘이 좋은 통통한 아가씨와 열성적인 중빈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징검다리는 완성되지 못했다. 댐이 높아질수록 댐 자체의 무게가 스스로 바닥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쌓아도 쌓아도 여울의 수면 위로는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막연히 댐의 높이만 생각했을 뿐, 지반의 특성이나 물살의 세기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패인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바위와 씨름하고나자, 몸 안의 것을 다 쥐어짠 듯 텅 비고 가벼운 가죽만 남은 느낌이 상쾌했다. 이제 다른 것으로 나를 다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로소 기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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