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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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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남한산성이 40여 일 포위됐으나,군사들이 주린 빛이 없었고 저축이 여유가 있었다.
fitfear3 추천 0 조회 137 22.11.30 22:0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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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11.30 23:03

    첫댓글 고맙습니다

  • 22.12.01 07:11

    마르티노 마르티니 신부의 기록에 따라 정묘호란은 조선군 70만이 동원되어 명나라와의 협동작전으로 강력한 조선의 북방 후금 기병대 50만을 싸워 힘겹게 이긴 전쟁입니다. 이후 병자호란은 후금이 정묘호란의 실패를 거울삼아 전격전을 구사해 곧바로 달려 한양으로 진입하는 모험이 성공하고 결국 임금은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가고, 비빈이하 왕족은 강화도로 도피하여 장기 항전을 준비하나. 술에 대취한 김경징의 실수로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족이 잡히는 바람에 인조는 항복하게 됩니다. 변조된 실록의 기록들은 기타 사료를 면밀히 검토하면 충분히 그 간교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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