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에 성벽을 쌓아 외부의 상륙 저지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해자와 같은 천연 장애물을 두른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반대로 바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점도 문제였다. 단순히 제주도의 해안선 길이를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바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길이는 250km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나라의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과 비교하면 제주도의 해안선이 약 12km 더 길다. 이렇게 군사분계선보다 더 긴 해안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방어 계획과 더불어 방어시설인 성곽이 필요하였다.
제주도의 긴 해안선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대표적으로 탐라국 시절 세워진 무근성(현 제주시 일대, 일제강점기 제주항 건설 등에 성곽 자재를 사용하면서 유실)을 비롯하여 다양한 성곽을 축조했다. 고려시대 세워진 환해장성은 300여 리(120km)에 석축으로 성곽을 쌓았다. 당시 성곽을 활용한 구체적인 방어 계획을 문헌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 등을 통해 살펴보면 해안가에 성벽을 쌓아 상륙을 저지하는 형태로 그 계획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 주요 지역에는 석성을 구축해 요새화하여 전력을 보강하고자 하였다.
<탐라순력도>로 볼 수 있는 세밀한 방어 계획
조선시대에는 성곽 등을 활용한 방어 계획이 보다 구체화되었다. 특히 제주도의 긴 해안선을 방어하기 위해 3성(제주성, 정의성, 대정성) 9진(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수산진, 서귀진, 모슬진, 차귀진, 명월진, 애월진)을 설치하여 유기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방어계획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제주도의 해안선을 중심으로 3등분하여 제주목(북부 지역), 정의현(동남부 지역), 대정현(서남부 지역)으로 구분하고 각 지역에 9개의 진을 설치하였다. 각 진은 조방장이 지휘하는 성정군 등이 진성을 중심으로 적에 대비하였다.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작성한 <탐라순력도>에 따르면, 명월진의 경우 조방장 강세건의 지휘하에 성정군 412명과 목자와 보인 185명, 말 1,064필, 창고에 곡식 3,300여 석을 비축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각 진에서 보유한 말의 규모와 기병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제주도는 조선의 다른 지역에 비해 기병의 비율이 매우 높았고, 숙종대 군선을 방어 작전에서 제외시키면서 그 비중은 더 높아졌다. 이것은 제주도 내륙에서 기병의 기동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안선 방어의 취약점을 진–봉수–연대로 극복
제주도의 방어체계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있다. 1843년 5월 13일, 제주 서쪽 바다에 이양선이 나타났다.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만조봉수였다. 만조봉수는 명월진에 속한 봉수로서 느지리오름 정상부(해발고도 225m)에 위치하였다. 이에 명월진 만호 김석용은 제주목에 이양선의 출현 사실을 알리는 한편 주변 봉화와 연대를 통해 이양선의 동향을 면밀하게 추적하였다. 이양선은 명월진에서 관할하는 배령포에서 2마장(약 0.8km) 떨어진 곳에 정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배령연대와 주변 연대 등을 통해 명월진 만호에게 전달되었고, 인접 진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이양선의 접근에 대응하였다. 만조봉수에서 관측 가능한 거리는 대략 53km이다.
서울역에서 평택역까지의 직선거리에 조금 못 미친다. 조선 후기 배의 이동 속도를 고려한다면 적이 해안에 접근하는 동안 부대는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말미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주요 해변에 배치된 연대는 보다 근접하여 추적이 가능하였고, 해변에 인접하여 축조된 연대는 요새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비상시 거화를 목적으로 축조한 내륙의 일반적인 봉수대와 달리, 제주의 연대는 적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곽의 형태로 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진-봉수-연대의 방어체계는 제주도의 방어상 취약점인 섬이라는 특성을 보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연대를 비롯하여 진성 등 방어시설 대부분을 제주에 풍부한 돌을 활용한 석성으로 축조하여 병력, 군선 등 다른 전력의 열세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형상이 진과 연대 등을 확인하고 기록한 <탐라순력도>는 왜적 등의 침입에 대항한 전근대 제주민의 모습을 현재 남아 있는 진성, 연대 등과 함께 가장 잘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배령연대, 별도연대등 현재 남아 있는 제주도의 연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이러한 군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문화유산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글. 신효승(<조선전쟁 생중계> 저자)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1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