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정]
이 다라니 지닌 몸은 광명당이요
다라니는 주문 또는 비결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칭하지만 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방편을 지니고 있으면 부처님처럼 몸에서 저절로 빛을 내뿜는다고 하니 과연 그 방편이 무엇일까?
2022-12-02 만우스님 논설위원·시인
만우스님.
만우스님.
공양간에서 봉사를 했던 한 보살님은 공양 때마다 밥을 열심히 퍼주고도 늘 욕을 먹는 인물이었다. 좀 사나운 성품이라고 할까? 말을 걸면 먼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화부터 버럭 내놓고 대화를 시작하니 사람들은 무서워서 말도 못 붙인다. 퍼주는 밥에 이의를 제기하면 주걱부터 날릴 기세다. 그래서 대중은 그 보살의 봉사가 불편하다.
우리 절의 사무장 보살은 얼굴이 그리 예쁜 것도 아니고 말소리도 어눌하지만, 대중들은 그이와 함께 어울리고 일하며 말하기를 좋아한다. 새벽예불에도 빠짐없이 나와 기도하고 일한다. 비결을 살펴보니 그이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조그만 일에도 생글생글 잘 웃는다. 그래서 그이와 대화를 나누는 이는 그야말로 ‘웃기는 사람’이 된다. 제 아무리 미인이라도 짜증이나 내며 인상을 쓰고 말을 톡톡 쏘아붙이면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사진이나 먼 발치에 있는 풍경이라면 모를까 같이 일을 도모하거나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가 싫어진다.
웃음 하나로 선생님이 된 분도 있다. 돌아가신 송해 선생이다. 물론 그분 직업이 희극인이긴 하지만, 인류에게 어떤 거룩한 가르침을 주거나, 뛰어난 사상으로 사람들을 이끌거나 혹은 국회의원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한 이도 아니요, 종교 지도자도 아닌데 그분은 만인의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누군가를 가르쳐 배우게 하는 뜻인데, 송해 선생에 이르러 웃음과 즐거움을 나눈다는 의미로 바뀐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나눈다. 농사꾼을 만나면 농사꾼의 마음으로 어울리고, 어린이를 만나면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 모든 이들을 한바탕 웃게 한다. 그 가식 없는 웃음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분을 선생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절에 가면 전각과 불상 같은 조형물들이 다 근엄한데, 유독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조각상이 있다. 포대화상이다. 배는 올챙이처럼 불룩 튀어나왔고, 허름한 포대를 하나 짊어진 채 때론 아이들이 무동을 타거나 포대화상의 몸을 기어오른다. 그렇거나 말거나 화상은 그저 껄껄 웃고 있을 뿐이다.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당나라 말기 그 전란 시절에 포대자루에 음식을 시주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아이들을 보면 사탕이라도 하나 주고 싶은 천진난만한 모습. 사람들은 거기에서 미륵부처님을 보고 희망과 사랑을 보았다. 그래서 포대화상은 미륵부처님의 화신으로 또 일곱가지 복을 주는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포대화상은 결코 우상처럼 추앙받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다.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 ; 나에게 포대가 하나 있으니) 虛空無罫碍(허공무가애 ; 허공처럼 걸림이 없어라)’라는 게송처럼 화상은 그저 무장무애한 삶을 사셨을 뿐이다. 그러니까 천진무구하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 살았기 때문에 마음껏 웃을 수 있고 복을 줄 수 있다. 욕심이나 허영심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어쨌든 그 웃음으로 포대화상은 신의 경지에 오른다.
기도시간마다 수시로 외는 <천수경> 중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은 이 다라니를 지니면 몸에서 빛이 난다는 뜻이다. 다라니는 주문 또는 비결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방편을 지니고 있으면 부처님처럼 몸에서 저절로 빛을 내뿜는다고 하니, 과연 그 방편이 무엇일까? 고단하고 슬픈 시절일수록 긍정과 낙관으로 희망을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주는 일, 그 시작은 그저 껄껄 웃는 일이다. 웃을 때 빛이 나고 세상이 밝아진다.
[불교신문 3745호/2022년12월6일자]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