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조수1리사무소에서 북쪽 40m '서울슈퍼' 동쪽 길 200여m 지점
시대 ; 조선
유형 ; 비석(효부비)
孝婦金性烈行績碑
비석이 있는 곳은 조수1리 웃가름이다. 금능에서 조수로 가는 길에서 마을에 다 들어가면 K자로 길이 갈라진 곳 모퉁이에 있다. 뒷면에 새긴 비문에는 氏金海人訓長諱斗和長女戊子生年十六適南平人訓長諱文用彦子慶德之妻生一男一女治産三年生寡孤□(개견변+저자시)夫定梁氏生一男又得朴氏生二女出他關四十星霜客苦年七三返鄕而死身無依托五七年間家勢窮乏媤父母從喪掃祭凡節極孝媤父母反親父母成碑洞里捐金掘井鄕里稱頌德反鄕關玆以表彰焉(김해인 훈장 두화(斗和)의 장녀로 무자년에 태어나 16세에 남평 문씨 용인의 아들 경덕과 혼인하였다. 1남1녀를 낳고 집안 일을 다스린 지 3년에 생과부가 되었다. 남편이 다시 양씨를 정하여 1남을 낳았고 또 박씨를 얻어 2녀를 두었다. 타지로 나아가 40여년 고생을 하였다. 나이 73세에 귀향하여 죽었는데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다. 57년간 가세가 궁핍하였다. 소제범절을 따랐고 시부모와 친부모에게 효도하였다. 동리에서 성금을 모아 비석을 세워 향리에서 덕을 칭송하고 마을에서는 이에 표창하였다.)(제주여성문화유적 698쪽) 우측에는 子聖律聖有 女己出己三 孫長奉漢次奉周 功勞者 姪金琪銓 좌측에는 西紀一九七四年甲寅春在日長女聖七 李柄雲 外孫君守 謹立 住造水이라 새겼다.
가세가 궁핍하였으나 이후의 비문 해석은 다음과 같이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세가 궁핍하였으나 시부모 종상(3년상을 치름)과 소제(제사를 받듬)에 범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시부모 및 친부모의 비석을 세웠으며, 동리에 돈을 내놓아 우물을 파게 하니 향리에서 덕을 칭송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니(反鄕關) 이에 이 비석으로써 그런 사실을 나타내고자(表彰) 한다.
《작성 200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