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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변증전도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Stephan
믿을 만한 전도를 위한 5가지 실천... '왜 복음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나?'
1. 질문을 던져라. 그렇지만 대답을 해주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2. 생각이 아니라 마음에 초점을 맞춰라.
3. 사랑과 지혜로, 마음속 깊이 지닌 신념과 욕망을 드러낼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가라.
4. 회의론자들과 구도자들의 통찰을 가치 있고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칭찬해 주어라.
5.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스토리들을 마음을 향해 전해라.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5가지 실천이 계속 중요하게 등장할 것이다. 이 가운데 당신이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금 바로 하나를 짚을 수 있다면, 믿을 만한 전도를 행하도록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복음을 얼마나 나누어야 할까? 예수님도 전도자들에게 기대되는 일의 절반도 다루지 않으셨다. 나는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좋은 전도란 전해야 할 내용 전부를 전하지 못한다면 아예 하지 않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우리 죄의 결과를 당신이 감당하시고, 다시 부활하사 새 생명을 얻으셔서 죄와 죽음과 악을 정복하셨으며, 우리에게 회개와 주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용서를 제공해 주시며, 새로운 세상을 약속하신다는 진리를 명확하게 진술하는 법은 분명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볼 수 있듯이, 전도의 목표는 단번에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의 목표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예수님은 질문을 하시고, 스토리를 전해주신다. 그렇게 사람들 내면의 소원과 욕망에 도달하는 데 대가셨다. 예수님은 정답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동시에 예수님은 진리를 피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비와 율법,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대화는 신학적이었지만 공식을 외워 전달하는 식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율법 교사의 반론을 기꺼이 들으셨다.
너무나도 자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견해를 이해시키기를 고집한다. 상대방과 진짜 의사소통을 하는 대신, 복음 제시를 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일단 메시지가 전달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응답을 갖고 자신이 행한 전도의 효율성을 판단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고 계시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가장 깊고 가장 의미 있는 진리에 관해 사람들과 대화함으로써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손을 깨끗이 털고 지나간다. "전도했음. 체크!"
이것은 전도가 아니다! 그런 전도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짧은 길이로 딱 듣기 좋게 만든 내용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을 필요로 한다. 전도 대상으로 대해지기보다 더 의미 있게 대해지기를 원한다. 이 내용을 전했고, 저 내용을 전했다 하면서 체크하는 체크 리스트에서 눈을 떼고 우리 앞에 마주 앉은 사람에게로 향할 필요가 있다. 미리 정해진 전도 내용을 전하지 못할까 봐 염려하지 마라. 전도 훈련을 받으면서 들었던 모든 사항을 다 전하지 못했어도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비그리스도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당신을 낮춰보지 않으신다. 누가복음 10:25-37에 대해 코멘트하면서, 제람 바즈(Jerram Bars)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전해주지 않고서 그를 그냥 보낼 수 있을 만큼 주님을 신뢰하는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신뢰하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단 한 차례의 요점 정리 복음 제시인가? 당신의 전도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당신이 비그리스도인과 대화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지식 부족까지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으실 수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라. 초대해서 의문점에 대해 더 탐구하자고 이야기하라. 그들의 의심을 주의 깊게 듣고 당신의 믿음을 심화시켜라. 당신은 함께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와 관련해서 두 번째로 명심해야 할 것은, 좋은 전도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서 또 그의 희망과 걱정에 대해서 알고, 대화 중에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때 만나서는 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후 세 차례의 만남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음에 도달하는 것은 과정이지 한 번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 다. 우리에게는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가 <느린 전도> 2장에서 말했던 것이 필요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 한 번의 대화에서 복음 전체를 다 전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렇게 된 이유는 친구들이 전부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 '전도할' 위치에 겨우 한 번이나 처할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 복음의 넓이와 아름다움은 단 한 번의 성급한 전도가 아니라 천천히 드러나는 것이다."
한 번의 대화에서 복음 전체를 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맞다. 압박감이 대단하다! 휴 홀터(Hugh Halter) 목사는 전도할 사람을 1년간 알고 사랑하고 섬긴 다음에야 복음을 전하라고 권한다. 모든 상황에 해당되진 않을 테지만, 요즘의 문화적 상황과 전도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의구심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풍성한 관계를 형성하라. 삶을 나누고, 이웃들과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가정에 초대해서 함께 어울리고, 동료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하라. 질문을 하라.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라. 시간이 흘러가면 그 사람은 삶의 진짜 문제들을 얘기해 달라고 할 수 있고, 그때 믿을 가치가 있는 복음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들이 삶에서 섬기는 우상을 들여다보고, 그 영역에 더 분명하게 복음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더 확실하게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때까지 시간을 갖고 먼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도 역시 복음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믿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고, 복음이 우리 자신의 생활과 생각과 꿈과 욕망에 들어와 작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일을 하고 사람들을 사랑할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속도를 늦출 때, 복음은 우리가 반복하는 메시지 그 이상이 된다. 복 음은 우리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확신이 된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변화시킨다.
복음이 어느 부분에서 당신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어느 부분에서 당신에게 도전하고 있는가? 어느 부분에서 당신의 가슴을 탁 치는가? 어느 부분에서 당신을 격려하는가?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기 시작했다면, 그건 어떤 모습에 해당하는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 가운데 하나는 복음에 대한 당신 자신의 필요를 다른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나누는 것이다. 나는 이를 자신에게 대입해서 복음을 당당히 나누는 것으로 본다.
우리가 매주 진저맨 펍(Gingerman pub)에서 갖는 밤들 가운데 하루였다. 데이브와 나는 꽤 철학적인 대화를 막 끝마친 다음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잡고 앉자 데이브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존, 너는 의심해 본 적이 없어?"
내가 대답했다.
"글쎄, 데이브, 네가 의심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썼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인 주장들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지만 불신앙 때문에 꽤 갈등하거든."
데이브는 궁금한 얼굴로 나를 힐끗 봤다. 예를 들어서, 오늘 트위터에 꽤 통찰력 있다고 생각되는 글을 올렸는데, 1시간 뒤에 보니 아무도 리트윗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다시 봤지만 그때도 아무 코멘트가 없었다. 그 뒤로 또 확인해 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침울해졌다. 이유가 뭐지? 나는 트위터 공간의 승인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승인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트위터보다 예수님이 더 좋다는 점을 믿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낼수록, 복음은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이 더 좋다는 걸 믿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란 어려워질 것이다.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이 진짜 믿고 있는 바에 대해 찬찬히 귀를 귀울여라. 표현되는 말의 배후에 깔려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잘 들어보라.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서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라. "어떤 느낌이죠? 진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정확히 어떤 상황으로 바꾸고 싶나요?"
두려움, 기쁨, 불안, 희망, 낙심, 걱정, 분노를 암시하는 단어들을 찾아보라. 그런 다음 그리스도께서 그 필요를 어떻게 채우시는지 생각해 보라. 그렇게 해보면, 복음이 그 사람이 믿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끌어다 쓸 수 있는 풍부한 저수지다. 그리고 복음은 모든 문화와 세대에 걸쳐서 인간의 다양한 욕망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을 듣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은 마음에 연결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복음이 어떻게 마음과 연결되는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사람들의 가장 깊은 욕망과 꿈, 희망, 그리고 두려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복음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명제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예수님이라는 인물과 그가 이룩하신 변화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 정도로 깊게 들어가면 전도가 비인격적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전도가 그저 하나의 프로젝트이거나 프로그램의 일환일 때는, 복음을 진정으로 믿게 되는 자리인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 닿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들과 가까워지지 않게 될 것이다.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만일 비그리스도인과 1시간 동안 지낸다면 무슨 일을 할지 묻자, 55분 동안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남은 5분 동안 할 말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신이 그 5분 동안 복음의 명제를 전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당신은 당신의 삶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그 사람들의 갈등에 동조해 주며, 그 점을 놓고 같이 기도하자고 할 수 있다. 페이스를 조절하라. 복음은 우리가 말하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다. 복음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체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의적인 말이다. 마침내 그 말이 좋은 땅에서 싹을 틔우기까지, 기도와 은혜와 사랑으로 상당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사람에 의해 씨가 뿌려지고 물이 뿌려져야 하는 씨앗이다. 후하게 뿌리고, 인내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 조나단 도슨, <왜? 복음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나>(CUP)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