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복음 6장 38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9-주는 자가 되게 하소서
여러분은 주는 것과 반는 것 중에 어떤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작게 주었을지라도 받는 것은 크게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게 가르치십니다.
제가 생명수침례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할 때 월요일마다 북한선교신학대학원에 공부를 하러 더녔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여러분들이 읽으신 이 성경본문을 읽을 순서가 되어 말씀을 읽고 묵상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 같이 오늘 본문 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라”고 하시는데 누구에게 주며 무엇을 주라고 하시는 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누구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누구에게 무엇을 줘야하는 지 가르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이 어떻게 적용을 해야하는 지 하나님께 여쭈어보면서 다녔습니다.
성령께서는 여러 날 동안의 나의 삶 속에서 그 말씀에 머무르도록 역사하시면서 세 가지의 주어야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저의 신학교 동기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그 전도사님에게 유독 마음이 가서 그분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 전도사님이 누군가하면 중국선교사로써 우리 교회 여러번 왔다 가셨던 유일성목사님입니다.
두 번째는 저와 함께 신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전도사님이 개척한 교회를 갔다가 거기서 내부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도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북한선교신학교에 다니면서 수원에서 어렵게 월세를 내면서 목회도 하고 공부도 하는 전도사님에게 조그만 돈을 헌금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기도와 몸과 돈, 이 세 가지로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저의 삶을 그렇게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크게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이 “주라”는 말씀 속에 더 많은 줄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위로해주라” “힘이 되어 주라”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해 주라”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라” “바로 잡아 주라” “용서해주라” 하는 일 외에도 굉장히 많은 줄 것과 대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줄 대상들도 역시 많으며 심지어는 원수에게까지도 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고자 할 때 성전 문 앞에 있던 날 때부터 한 번도 걷지 못했던 거지가 이 두 사람에게 동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보면서 “은과 금은 우리에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면서 거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것을 본 거지는 믿음으로 베드로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 순간 그리스도의 능력이 베드로에게서 거지에게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에게 줄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돈보다 더 큰 것은 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은 자기 중심에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는 공통적으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자기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줄 수가 있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문앞에 앉아 있는 일평생동안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하반신 장애인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통해 오늘날도 역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에게 그 능력을 나타내셔서 도우십니다.
이 일로 인해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구걸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함께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실 때 이 일도 일어나고 이보다 더 큰 일도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나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자신을 믿는 자 안에서 나타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들 안에 계신다면 이것이 과거의 역사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예수님만 빼고 다 주게 됩니다. 그것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 안에서 무엇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누군가에 주시길 원하신다면 먼저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연예인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형태의 교회로 모여들어 마치 군집생활하는 것처럼 교회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연예인들은 그런 모임을 통해 자기들의 밥벌이를 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집니다. 큰 교회로 가서 누구도 교회에 다닌다는 소문이 나게 한 후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간증집회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적당한 거짓말도 섞습니다. 그러면 진실을 알 수 없는 그들을 초청한 교회의 교인들은 “아멘”하면서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밥벌이를 하는 연예인들의 초점은 돈에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도 없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그 한 사람만을 위해 일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여러분들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 가운데 흩어져 있는 자기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자신이 먼저 구원하신 사람들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줄 수도 있고 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그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하고 완전한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예수님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주고자 하시는 완전한 나라인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것을 통하여 이 땅에서의 사귐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는 그들이 예수님을 그들 자신의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서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을 얻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물론 에수님이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천국은 영원한 나라에 있는 죽어서 들어가는 천국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과 이 세상에서 함께 동행하심으로 인해 보이시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천국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실 때 자신이 다스리시는 천국을 가지고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이 의롭고 기쁘며 평안하며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며 진리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이 혼자 신앙생활을 하도록 일하지는 않으십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혼자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왜 본다고 표현하느냐 하면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예배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가 함께 찬송하고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그가 예배를 드리고 나서 스스로 만족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를 통해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며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은 자신의 몸으로 이끄십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옷도 단정하게 입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하라는 대로 다하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후로는 점점 느슨해져서 잠옷을 입고 예배 드림은 물론 똑바로 앉아서 드리던 예배가 이제는 쇼파에 누워서 드리는 지경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면서 헌금은 온라인으로 자기가 시청하는 그 교회에 보낸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속에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생명의 나눔이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도 없습니다. 생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도 못합니다. 자기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예배를 보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서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누가 거기에 동참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리니”라고 하실 때 그 주는 것은 바로 교회를 염두해두신 말씀이며 또한 교회를 통해 주시는 복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라는 명령임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사실을 명확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오늘 본문의 앞부분인 누가복음 6장 35-38절까지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먼저 여러분들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선대하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힘든데 그를 “선대하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일반적인 사랑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한평생 경험하셨겠지만 그런 사랑은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여러분들을 주관하시지 않는 한은 어림도 없습니다. 혹 그것을 한 번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후에는 그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며 적대시 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선한 일을 하다가 그래도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크게 실망해서 그 다음부터는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좌절하지 않고 사랑을 하며 선대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의 변화는 여러분들에게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하여는 자유해집니다.
여러분 우리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영이 여러분들 안에 거하시면서 이전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던 원수들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원수까지도 용서하며 그를 선대할 수 있습니까? 원수의 마음을 읽고 알게 되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선대하면서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상이 크며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같이 여러분들 역시 그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비판하지도 말고 정죄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역시 하나님의 정죄를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면 여러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주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주시는 데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여러분들에게 안겨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원수를 헤아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을 때 하나님도 역시 여러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 답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으며, 또한 그 성품을 세상에 반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을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여러분들 안에는 미움이 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그들이 여러분들의 행실을 보고 예수님을 믿을지 안믿을지 여부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세상에게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행한 그 빛과 소금된 삶으로 인해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을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품으로부터 시작된 착한 행실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에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을 보면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많이 가질수록, 그리고 많이 모을수록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주는 사람조차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는 복을 주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 주고, 섬김으로써 기쁨을 얻고 있다면 여러분들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주기는 주는데 억지로 하고 있다면 그 받은 사람은 여러분들에게 고마워할지라도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주실 상이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 주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주님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럴 때 받은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사람들은 세상을 조금더 밝게 비취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비출 수 있도록 그 위치에 올려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등을 말 아래 두지 아니라고 등경 위에 둔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스스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높이 올려놓으시기 때문에 세상이 여러분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언제든지 여러분들을 주시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벌을 주시기 위해 감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을 주시기 위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자꾸만 주는 사람이 된다면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계속해서 여러분들에게 줄 것을 공급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나누는 삶 자체가 감사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무더운 날씨에 상수리 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세 사람이 자기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웠던 아브라함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서 엎드려 절하면서 말합니다. “내가 당신들께 은혜를 입었다면 당신들을 대접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그들이 허락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즉각 달려가 가장 살진 송아지를 택하여 종들에게 주고 또 장막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밀가루로 빵을 많이 만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대야에 물을 떠나가 그 손님들의 손과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많은 것을 먹고 쉼을 얻은 이 세 사람은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토록 사모했던 아들을 내년 이맘때에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사들의 말대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도 역시 나그네를 대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돔 성 문앞에 앉아 있다가 두 명의 나그네가 성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뿌리치고 더 가려고 하는 듯 했지만 롯은 그들이 당할 어려움을 생각하고는 강권하여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물로 그들이 손과 발을 씼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망하는 그 날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르밧 과부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랜 기근 가운데 사르밧과부틑 모든 식량이 다 떨어져 마지막으로 밑바닥에 조금 남은 기름과 밀가루를 가지고 빵을 만들어 먹고 죽을 날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성 밖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을 좀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에 있는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을 마신 선지자는 이번에는 먹을 음식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슬프고 괴로운 심정으로 선지자에게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그것을 먹고 죽을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 선지자는 그것을 자기를 위해 빵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하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자기 말대로 하면 이 기근이 끝날 때까지 자루에서 밀가루가 끊이지 않고 병에서 기름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 말을 듣고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엘리야 선지자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빵을 만들고 있을 때 그것을 보면서 엄마가 자기에게 줄 빵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이 과부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런데 다 만들고는 자기에게 주지 않고 선지자에게 가져다주는 엄마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 결과 아직도 삼년이상 남은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 자루에 밀가루가 끊이 않았고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해 엘리야까지 세 사람이 삼 년 이상을 먹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에게 꼭 필요했던 밀가루 조금과 기름이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그것으로 선지자를 대접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전해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도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다시 살리시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혹시 하니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누군가에 줄 마음을 주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것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원수를 위해서까지도 기도하고, 도와주며, 돈을 빌려주든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행하시는 놀랍고 귀한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망만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행동을 기뻐하셔서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누군가와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힘든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군가와 나누라는 감동을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그것을 공급하십시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드려진 여러분들로 인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상을 주시는지를 경험해보십시오. 자비와 용서를 베풀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여러분들을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풀며 용서해주시고 또 그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주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손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텐데 하면서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뒤에는 하나님이 무한한 공급자로 서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세상을 말씀 하나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니 두려울 것도 염려활 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향해 방향을 틀으시느냐에 따라 그 복의 물줄기도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주는 일에 참여함으로 인해 여러분들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주는 것으로 인해 세상은 여러분들로 인해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갖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복이 여러분들로 인해 온 세상에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