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박영
냄비에 육수를 끓이려 멸치를 넣는다
멸치들은 포기한 듯 순종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하얀 눈알의 백내장 멸치만
입을 얼굴만큼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은빛 날개 휘날리며 하늘로 오른다는 시인의 넋두리에 속았지
어망에 발 담그고 꿈도 꾸기 전
멸치털이에 놀라 날아오르다 꼬꾸라지고
눈알 빠진 멸치는 눈인사 못하고 지나친 멸치
목 댕강 내장 쏙 뺀 멸치는 친근한 멸치
눈알 흰 멸치는 기가 센 멸치
피 말리듯 온몸 물기 말리며
염원은 염장으로
햇빛도 소금도 멸치의 길
고등어 횟집 서비스로 나온 멸치회무침은 잊어
다음 생은 멸치회 전문점에서 만나는 걸로
잡놈들 다 모아놓은
한봉지 싸게 값을 치렀지만
근본 없는 멸치라고 하지 않을게
기장멸치 외포항멸치 여수멸치 통영은 죽방멸치
맛있다잖아 봄멸치
그래요 그래요
눈알 내리깔게요
백내장 수술로 세상이 달라 보이면
악을 쓰던 입은 다물어질까요
----애지문학회 사화집 {북극 항로}에서
멸치란 경골어강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해상어류이며, 그 크기는 약 10~20cm라고 한다. 한국의 전연안에 골고루 분포하며, “기장멸치 외포항멸치 여수멸치 통영의 죽방멸치”가 아주 유명하다고 할 수가 있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용도가 다르고, 대부분의 멸치는 잡자마자 소금물에 삶아 건조시킨 다음, 마른 멸치로 유통시킨다. 큰 멸치는 다시마와 함께 육수를 내는데 쓰이고, 중간 멸치와 작은 멸치는 간장을 넣어 볶음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이때에 중간 멸치는 꽈리고추와 함께 볶아먹는 것이 보통이고, 작은 멸치는 견과류와 함께 볶아 먹는다. 이밖에도 산지에서는 생멸치를 야채와 함께 버무려 먹고, 멸치에 소금을 넣어 멸치젓갈을 담기도 한다.
멸치는 혈압을 낮추는데 좋고, 칼슘이 많아 뼈 건강에도 좋다. 비타민 B6이 함유되어 있어 뇌기능을 증진시켜주고, 철분이 많아 빈혈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아연과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어 면역체계를 강화시켜주고, 비타민 A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노화로 인한 백내장 등, 눈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섬유질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소화기능을 개선시키고, 간 건강과 피로회복에도 좋다고 한다. 멸치는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산물 중의 하나이며, 따라서 우리 한국인들은 다양한 멸치요리법과 그 식생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모든 멸치는 멸치의 미래와 멸치의 행복을 생각하며,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은빛 날개 휘날리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멸치는 은빛 날개 휘날리며 하늘로 날아오르기는 커녕, “어망에 발 담그고 꿈도 꾸기 전/ 멸치털이에 놀라 날아오르다 꼬꾸라지고” “피 말리듯 온몸 물기 말리며/ 염원은 염장으로/ 햇빛도 소금도”이라는 시구에서처럼, “멸치의 길”을 가게 된다. 이 멸치의 길은 최하위 포식자답게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포획된 채, “기장멸치 외포항멸치 여수멸치 통영은 죽방멸치”처럼, “봄멸치”의 길을 가게 된다. “눈알 빠진 멸치는 눈인사 못하고 지나친 멸치”이고, “목 댕강 내장 쏙 뺀 멸치는 친근한 멸치”이며, “눈알 흰 멸치는 기가 센 멸치”이다.
박영 시인의 [멸치]의 시적 화자가 “냄비에 육수를 끓이려 멸치를 넣”을 때, 대부분의 멸치들은 그 모든 꿈을 포기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러나 “하얀 눈알의 백내장 멸치만/ 입을 얼굴만큼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얀 눈알의 흰 멸치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은빛 날개 휘날리며” 멸치의 미래와 멸치의 행복을 향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제국주의자도 같고, 멸치는 피식민지의 원주민과도 같다. 이 최상위 포식자와 최하위 포식자, 또는 제국주의자와 피식민지의 원주민의 관계를 망각하고, “눈알 흰 멸치”가 그 반기를 들었을 때, 시적 화자는 어떤 섬뜩함과 놀라움을 느꼈던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물어뜯고, 여우 역시도 그의 천적인 독수리의 발을 물어뜯는다.
“눈알 흰 멸치는 기가 센 멸치”, 이 기가 센 멸치는 피식민지의 불량배와도 같지만, 그러나 멸치의 입장에서는 멸치의 미래와 멸치의 행복을 사수하는 애국자와도 같다고 할 수가 있다. “네가 인간이라면 나는 멸치이고, 인간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멸치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듯한 기가 센 멸치의 외침에, 시적 화자는 그만, 그의 양심의 가책을 물어뜯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명이 생명을 먹는다는 원죄의식에 어떤 섬뜩함과 놀라움(두려움)을 느꼈던 것이고, 그 결과, “잡놈들 다 모아놓은/ 한봉지 싸게 값을 치렀지만/ 근본 없는 멸치라고 하지 않을 게”라고 항복 아닌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멸치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고, 어느 누구도 멸치의 미래와 멸치의 행복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 이 ‘만물평등사상’이 시인을 시인답게 만들고, 잡놈들이 아닌 근본있는 멸치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인간이 멸치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은 멸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사슬의 순환구조 때문인 것이고, 그 결과, 멸치 역시도 “그래요 그래요/ 눈알 내리깔게요/ 백내장 수술로 세상이 달라 보이면/ 악을 쓰던 입은 다물어질까요”라고 마지 못해 순응을 하게 된다.
생명이 생명을 먹는다는 것은 죄의식과 함께 감사함을 동반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살생을 해야 하고, 그 감사함에 대한 보답으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체들의 먹이로 다 주고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멸치가 인간을 먹여 살리고, 이 인간을 먹여 살리는 힘으로 “기장멸치 외포항멸치 여수멸치 통영은 죽방멸치/ 맛있다잖아 봄멸치”라는 박영 시인의 [멸치]에 대한 찬가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멸치는 멸치의 미래와 멸치의 행복을 위해서 은빛 날개 휘날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박영 시인의 [멸치]는 천하제일의 ‘멸치에 대한 헌시’이자 그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멸치, 멸치, 은빛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멸치----.
멸치는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으며, 돈과 명예와 권력을 대물림을 하거나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은 멸치만큼 아름답고 우아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