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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만갑모아보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13 회
https://www.youtube.com/watch?v=nZtL6AUMJsQ
북한의 인간병기 124특수부대원 120명이 울진·삼척에 무장상태로 침투하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13 회
https://www.youtube.com/watch?v=qrigwzMC65E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구 연안을 통하여 북한측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
11월 4일 14시 30분, 간첩대책본부는 군 당국에 빗발치는 주민들의 신고를 수렴. 강원 정선·영월·삼척 지구에 을종사태[3]를 선포하고
군경과 예비군을 동원해 공비들의 퇴로를 차단, 포위망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한 것을 일컫는다.
이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남한 사회에 주요하고 큰 영향(반공질서의 강화)을 끼치게 되었다.
북한이 다수의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이유는 이런 강력하고 무자비한 무력도발을 통하여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1968년 11월 2일 밤 북한 유격대가 남한에 활동 거점을 구축하기 위하여 울진과 삼척으로 침투하였다.
이때 울진·삼척 지구로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3일 동안 네 차례에 걸쳐 각 30명씩 특수정을 이용, 해안에 상륙했다.
침투지점[8] 이 무장 유격대는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예하의 124군[9] 소속이었다.
이들은 1968.10.30~11.2 사흘 동안 120명의 북한 유격대는 8개조로 나눈 후,
야음을 틈타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고포 해안에 상륙하여 울진군·삼척군·봉화군·명주군·정선군 등지로 침투하였다.
이들이 상륙한 곳에 있던 해안초소 근무인원은 총 6명이었다.
그러나 이를 사전에 발견 차단하거나 상부로 보고해야 할 해안 초소 분대장은 말년병장의 전역을 축하한다면서 4명이 술집으로 가버렸고,
남은 인원 2명이 보초를 섰어야 했으나, 일병 한 명은 2~3달 고참이란 핑계로 내무실에서 자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이었던 문무림 일병은 그들이 상륙하는 걸 발견했으나, 겁에 질려 도주해버렸다.
그 후 문 일병은 분대장에게 보고를 했으나 횡설수설했고, 그들은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어서
박격포 몇 발을 바다쪽으로 발사한 후, 상륙하려던 적을 격퇴했다고 허위보고했다.
첫 보도된 사례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위조지폐를 나누어 주고, 남로당 가입서를 작성하며, 도망치려던 주민을 살해하였다.[10]
폭발물을 가지고 있어 산업시설 파괴의 목적도 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11]
그들은 남한측의 군복·신사복·노동복 혹은 일반 와이셔츠나 면 바지 같은 평상복 등 갖가지 옷차림으로 위장하였고,
기관단총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이후 주민들을 집합시킨 다음 북한 책자와 전단을 나누어 주면서 북한의 발전상을 선전하는 한편,
정치 사상 교육을 실시하여 인민유격대 및 조선로동당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였다.[12]
또한 그들은 주민들이 겁에 질려 머뭇거리며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위협하기 위해서 전혀 무장하지 못하고 대항력도 지니지 못한 민간인을 향하여 대검으로 찌르거나
심지어는 늦게 도착한 주민을 돌로 머리를 쳐 무참히 살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민간인을 함부로 대하는 북한군의 이러한 행위는 게릴라 전술 중 하나인 게릴라 양성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할 수준이다.
이때 인근 장성읍에 거주하던 전병두 씨가 마을을 방문했다가 대검에 찔려 죽었다.[15]
삼척군 하장면의 산간마을에서는 80세 노인, 52세의 며느리, 15세의 손자 등 일가족 일원 중 세 사람이 난자당해 살해당했다.
공비들에 의한 약탈사건도 보고되었는데,
경북 영주군에서는 일가족을 안방에 묶어놓고 외양간의 소[17]를 끌고 가고 장롱 안에 있던 옷들을 빼앗아 달아나는 한편,
강원도 평창에서는 가장을 제외한 일가족을 대검과 돌멩이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소와 닭을 빼앗았으며
절간을 습격해 승려들을 감금하고 시주받은 현금과 식량을 약탈해 달아나기도 했다.
이때 연고없이 절에서 지내면서 스님들의 식사를 지어주는 노인을 단검으로 살해했으며 등산객을 인질로 납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연락이 제한된 상황에서 릴레이 방식으로 연락을 취하여 군 당국에 신고하게 되고,
11월 4일 14시 30분, 상황을 보고받은 대간첩대책본부는 강원 정선·영월·삼척 지구에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군경과 예비군을 동원해 공비들의 퇴로를 차단, 포위망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했다.
대간첩 대책본부의 지휘 아래 군과 향토 예비군은 동부 산악 지대의 험준한 지형과 나쁜 기상 조건에도 불구하고,
무장공비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형성, 강력한 화력을 이용하여 전면적인 소탕 작전을 벌였다.
당시의 11월 16일까지 벌어진 소탕작전에 의하여 북측 무장공비 31명이 사살당하였고,
2명이 생포되었으며, 적의 장비 중 PPS-43 기관단총 3정, 권총 1정, 실탄 다수, TNT 3개, 수류탄 20발, 비상식량 200개, 카메라 1대를 노획하였다.
또한 68년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함으로써 침투한 120명을 모두 소탕했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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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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