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사우디 관계 중재 나선 中 "석유 확보해 서방 제재 대비 위해"
[ 서울=뉴스1 | 김예슬 기자 yeseul@news1.kr ] 2023. 3. 12. 11:04
우크라 전쟁으로 대러 제재 목도…대만 침공 시 유사 제재 우려한 듯
中, 석유 공급원 안정화…사우디, 이란·러시아 석유에 위기의식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과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중동의 역내 라이벌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중재로 7년 만에 관계를 복원했다. 중국이 미국과 사우디 간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함과 동시에 원유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란과 사우디의 외교 정상화 소식을 보도하며 "중국이 양국 중재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장기 갈등을 감안해 에너지 조달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며 "대만 유사시에 따른 미·유럽의 경제 제재에 대항하는 의도로 비친다"고 평가했다.
이란과 사우디는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협상은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6일부터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과 사우디의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돼왔다.
양국이 서명한 협정에는 양국이 2001년 체결한 안보 협력 협정과 무역·경제·투자에 관한 합의를 다시 활성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의 관계 정상화는 지난 2016년 사우디가 이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아파 성직자 40여 명을 처형한 뒤 외교 관계가 끊긴 지 7년 만에 이뤄졌다.
이번 합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를 중재함으로써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식으로 중동 지형을 재편하려는 가운데 나왔다.
또 중국은 이번 합의를 중재하며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2018년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지목된 이후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중국은 이란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는 미국과 달리 이란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기도 해 이란과 사우디 양쪽의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과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이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국교 정상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국제부 공용 기자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중동 외교를 가속했다. 여기에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리웨이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미국과 유럽 제재에 동조하지 않고 중국과 무역을 계속하는 경제 거점 국가의 육성이 중요하다'는 논문을 펴내며 "중국이 대만 통일을 강행할 경우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석유 공급원을 안정화하려는 중국의 목표와 국제 시장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려는 사우디의 이익도 맞아떨어졌다. 중국은 사우디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들여온다. 2021년 중국과 사우디 간 무역액은 873억 달러(약 115조5000억원)로, 이 중 원유 수입이 77%를 차지한다. 사우디가 수출하는 원유의 25%는 중국으로 향한다.
코넬대 무역정책학과의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는 CNN에 "중국 경제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과 양 측면에서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은 시진핑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애슬랜틱 카운슬(AC)의 중동 프로그램 선임연구원 아메드 아부두도 "러시아가 더 저렴한 석유 공급원이지만,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5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입장에서도 중국은 놓칠 수 없는 '큰손'이다. 국제안보분석연구소(IAGS) 공동소장인 갈 루프트는 "사우디는 대폭 할인된 러시아산·이란산 원유의 쓰나미에 직면해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사우디의 목표는 중국을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남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수년 동안 중동 지역 분쟁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석유 구매자로만 남아있던 중국은 미국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며 "인권에 대해 강의하지 않고, 모든 당사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 이 지역의 많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매력적인 전망을 제공한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