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게의 전교수호자 아기예수의 성녀 데레사 10월1일 대축일
하모251-[2016.04.23]-160529.mp3
t생애 중요한 요점
9번째 태어난 마리프랑스와 데레사는 1873년1월2일 탄생하여 1888년 4월9일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하여
아기에수와 성면의 데레사 수녀가 되었스며1897년9월30일 사망하였다.
부모님은(마르탱부부)매일 아침 미사에 참여하였스며 자녀들은 커가면서 성당에 다녔다.
매일오후 성체를 모셨다.
프랑스 혁명의 후유증으로 성당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마르탱씨는교회에 헌신하는 확고한 태도를 일관하였다.
데레사의 유년시절은 집안에서 밭치는 기도와 연도와 선행을 실천하는 분위기의 영양을 받아
어린 데레사는 예수님과 동정녀 마리아을 열성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기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877년여름에 모친이 유방암으로 사망함으로서 예기치 못한 불행에 직면하게 되었다.
교회의 축일에 참석하는 일이'작은 여왕'의즐거움이였스며 작은 숩에서의생활 지침이 되었다.
그녀는 독서와 그림보는 것을 좋아했다.
프랑스의 역사적 여자 영웅들 중에서 특히 쟌다크의 용감한 행적을 통해 데레사는 불타오르는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일생을 통해 실현은 많은 시행착오를 올바르게 잡아주었다.
실현은 수많은 장소에서 사건별로 끈임없이 발생하였다.오히려 이같은 엄한귀칙을 그녀는 소망했스며
넓은 자애심과 능동적 태도로 이를 수용했다.음식 휴식 공간 건강 침실 난방이 안되는 건물의 냉기
이 모든 고통들을 기꺼히 받아 들였다.
"내 영혼은 쉽게 내 마음이 시련에 동참했다.
정신적인 매마름이 나에 일상적인 빵이 되었으며,모든 위로가 박탈되었다.
나의 모든 바람이 흡족하게 되었스므로 나는 피조물중에서 가장 행복하다."(자서전 a)
모든 단점과 실현을 예수님님의 사랑으로 변모 시켰다.
시련의 금자탐이다.
1894년 가을 어느날 그녀는 여기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경험했다.
'작은이는 누구나 나에게 오라'(잠언9,4.)는 구절에 처음으로 감동 받았다.
데레사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직접 하느님으로부터 듣는 기분이었다.
위대한 성인되는 여정에서 작음은 그녀러부터 매우어려운 문제였다.
'작은 존제','지극히 작은 존제'로써 하느님께 닥아가는 부름을 받았다.
이사야66,12-13.어머니가 자녀를 쓰담아주듯 나도 여러분을 위로해 주겠다. 품에 안아 무릎에 앉히고 어루만져 준다.
처음으로 접하고 이같은 깊은 감명을 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데레사는 모성에 극도로 민감하다. 그녀가 다섯살 어린나이에 암으로 둘도 없는 어머니를 잃지안았는가?
인격형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모친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생이별을 했다.
어린 데레사는 하느님이 어머니처럼 느껴젔다.
데레사가 살던 시절에 그리스도 인들은 그들의 행적에따라 보상 네지는 징벌을 받게되고 ,감시의 눈을 살피시는 심판자로서의 하느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이해했고,선행이나 희생을 통한 영혼의 작은 변화로 천국에 오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봄날 같은 삼위일체 축일날 아침,"예수님은 두려운분이 아니라
흡족한 사랑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을 받았다.
사랑의 순교와 응답에서 모든 인간적 노력은 불안전하며 선한 동기도 쉽사리 이기적 욕심에 휘말려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사실을 터득했다.
그러니 데레사는 그 무엇보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함을 알아들은 것이다.
데레사는 자신을 '희생물'로바치면서,사랑이'내 영혼을 사로잡을수'있도록 아무런 걸림돌이 없기를 온 몸으로 갈망한다.
그레서 데레사는 사소한 몸짓하나라도 봉헌될수 있도록 사랑의 행동에 '순할 수 있었던 것도 나약한 교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주님을 향한 참신한 봉헌을 위해 쉴 새 없이 나의 심장은 고동침니다.
내 육체가 기력을 다할때 까지 계속해서 사랑의 봉헌을 반복하겠습니다.마지막 병석에서 그녀가 말했다(동녀수녀들의 증인)
즈느비에브 수녀가 찍은 임종의 사진 덕분에 우리는 평화스러운 얼굴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묵상"
"지금 유물론자들의 망령이 나를 업습합니다."
세상에 하느님이 없다는 유혹,평생을 하느님안에서 살았지만 ,하느님품안에 안길 그 순간에 오직 물질만 있을 뿐이라는 유혹이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든것도 나약한 인간의 현실을 받아 드리는 성녀의 단순함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 지극히 단순하고 오롯한 어린이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선교는 하느님 사랑의 뿌리를 두고 단순하고 겸손한 미음으로 애덕을 실천할 때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2016.10.1.
서교분 글 적음 하모니카
최수미 도미니카수녀올겐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