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눈이 내렸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올해는 이른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실로 오랫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는 셈이다. 요즘은 날씨가 하수상해 요상한 이상기온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때는 항상 추웠고 눈도 제법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린 아침 창문을 열고 바라본 세상은 얼마나 멋졌던가. 보잘 것 없는 낡은 집 그속에 형들과 같이 사용하는 작은 방에서도 자연의 신비로움과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눈을 치우기 위해 아버지와 형들은 땀을 흘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집밖으로 뛰어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동네 친구들과 어슬픈 대나무 스키로 신나게 집앞 고갯길을 달리던 그 광경이 문득 생각나기도 한다.
그 시절 한국에는 통행금지가 없던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날과 12월 31일 밤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날은 온세상이 해방감을 만끽하는 그런 날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형들은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통행금지가 없는 날 밤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것 아니였겠는가. 그냥 밤늦게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참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날 밤 집에는 나와 어머니 둘만 남게됐다. 하지만 작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캐롤송을 들으며 잠에 드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아기 예수가 태어난 그 베들레헴의 마굿간은 얼마나 추웠을까...마리아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요즘 최신식 병원에서도 아기를 낳을 때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그 당시 이불도 따뜻한 물도 치료할 의약품도 없었을텐데 그 고통은 얼마나 험했을까...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그 눈 내리는 사이로 동방박사들은 또 얼마나 추위속에 힘든 여정을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성장했다.
하지만 잘 아시겠지만 예수께서 태어난 베들레헴의 오늘(2023년 12월 24일) 아침 최저 기온이 영상 12도이다. 한국의 봄 가을 날씨정도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베들레헴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중동국가들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도 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북부 헤르몬 산 (2,814m) 정상에는 일년의 상당기간 눈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평지에서는 눈을 보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중동의 사막 국가들의 이미지 속에 눈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하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유럽의 영향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계절이 존재하고 겨울에는 춥기도 한 유럽의 날씨의 영향때문으로 판단된다. 유럽국가들에서 겨울철에 눈이 오는 것은 일상화된 것이다. 그런 유럽의 영향과 그 유럽의 지대한 연관성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엄청난 영향을 받은 한국의 상황이니 크리스마스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속에 어릴 적 그 순수했던 마음까지 가미되면 그 연상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또 예수님이 백인으로 상징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민들은 백인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중동국가인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백인으로 연상되는 것일까. 그것도 유럽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계사는 유럽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워낙 오랫동안 세계를 주도했다고 하는 유럽이니 말이다. 지금의 미국도 사실상 유럽 아닌가. 땅만 떨어져 있지 그 문화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전파된 것이고 지금도 유럽의 후예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크리스마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실 나는 즐겁다. 뭔가 하는 일도 없고 바깥을 나갈 일도 별로 없지만 그냥 좋다. 어릴 때 그 추억이 강하게 나의 머리와 심장을 압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눈을 치우기 위해 환경미화원분들은 더욱 힘들고 아파트의 경우 경비원아저씨들의 노고가 더욱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제발 오늘 하루라도 왜 예수가 이 땅에 오게됐으며 그가 세상에 전하려고 했던 정신은 무엇이었는가를 한번쯤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시간에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전쟁은 계속되고 서로 상대를 없애기위해 안간힘을 다 하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많은 젊은 군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그 전쟁으로인해 말로 표현할 수없는 고난을 겪는 그 나라들의 백성들은 오죽할까.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예수님의 가르침 즉 사랑의 의미를 진실되게 느껴보는 그런 크리스마스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23년 12월 2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