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전하려
산길을 가면서◈
3월! 한 겨울내 토닥댄 겨울의 찬 손을 거두는 계절. 이 산길 앙상한
덤불을 깨워 가지 끝을 틔우는 봄. 연한 초록 눈이 뾰족이 비집으면서 산길을 가시는 이를 잡고는. 헤진 살갗을 찢은 아픔의 환희를 동여매며 히히거린다. 훌륭한 유산을
누리는 그 축복들. 그리고 새(동고비)가 푸드덕 날고 이 길섶으로 자연의 전통이 정교하게 운행하는 가치로 움으로 시간과 계절 그리고 세월 그들의 순환이
여간 아름답다. 무엇이든지 함께
존재의 정이 결코 없는 깊은 심연의 유희다.
어찌 어찌하다 혼란 같은
변을 보듬는 나이. 대롱 없는 붓대의 투정에 허리춤을 가다듬는 젊은 시래기를 키는 그런 나이. 하여간 구슬픈 나이에 고단한 만선을 반긴 석양은 아름답고 거친 창해를 거슬러 이른 회심으로 뒤돌아볼 곳이 있는
그런 나이. 황홀한 무대에 우렁찬 주악으로 추앙하는 그리 선하지 못했던 세상의 조곤 조곤한 선율에 색임
질 하는 나이다. 이제 삶이 부과하는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 하는 농염한 지혜의 나이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안 사람” 철학자 니체를 아는 체하기가 쑥스럽다. 자기 변론에 능숙한 솜씨의 변에 학문 학술을 겸용하는 치사함 보다는 질겁한 오랜 세월을 누리는 길섶 바위 하나
족히 우람스러워 이 늙음이 무던한 침묵을 엿듣는 그런 은유로……!
「어슐러 K. 르귄」의 No time to spare(남겨둘 시간이 없다) 에서 “늙음을 존경 받아 마땅한 용기라며 콩나물만 한 지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자신이 흔치 않고, 복제 불가능한 존재와 만났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적 찰나에서 무덤으로부터의
손 인사랄까 살아 있다는 티를 내야겠다 싶었다.” 며 88세의
나이로 영민하기까지 글쓰기. “우리 두 고대인들에겐(늙은 남편과) 녀석의 학습과정이 무척 재미있다” 며 입양한 고양이를 돌보는 일. 친구 만나기. 찾아온 가족들과 어울리며 아흔이신 삼촌 이야길 하면서 “그 양반 운도 참 좋다며. 산책길에
불량배 『아서리티스(arthritis=관절염)』와 그의 교활한 아내 『사이아티카(sciatica=좌골신경통)』를 안 만나도록 조심하시라며” 말장난을 하면서 “노년을 부정하는 말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다. 내 나이를 지우고, 내 삶을……. 나를 지운다”고 존재의 부정을 나무란
당찬 석학 할멈의 글에 얼큰하게 취해본 근황을 여기다 이렇게 초해둔다.
<2019.3.8.
관악산 연주대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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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 드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