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기/록/상으로는 지증왕때가 맞습니다. 우경이 철기시대라고 하는 심태섭 샘의 견해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물론 삼국시대도 철기시대라 할 수 있겠지만) 얼마전에 4세기 우경을 했을 가능성의 유물이 발견되어 6세기에서 4세기로 빨라질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봤자 내물왕 즈음 또는 그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 했는지 안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고 우리도 했을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시험을 내진 않을 것이니 6세기 지증왕으로 외워야 할 것입니다.
신라 지증왕때 우경을 시작하면서 비약적 농업생산량의 발전이 일어나 신라는 만년후진국이었던 입장에서 벗어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들은거같습니다. 그냥 그때가 철기 였으니, 대략적으로 철기라고 알아두시고 신라 지증왕때 우경으로 인한 이러한 효과가 있은 것 정도 알아두시면 되지 않을까요.
첫댓글 기/록/상으로는 지증왕때가 맞습니다. 우경이 철기시대라고 하는 심태섭 샘의 견해는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물론 삼국시대도 철기시대라 할 수 있겠지만) 얼마전에 4세기 우경을 했을 가능성의 유물이 발견되어 6세기에서 4세기로 빨라질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봤자 내물왕 즈음 또는 그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 했는지 안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고 우리도 했을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시험을 내진 않을 것이니 6세기 지증왕으로 외워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심쎔은 삼한에서 '가축을 이용한 밭갈이'를 우경의 시작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가축에 소도 들어갈테니까요 글구 지증왕때 전국적으로 보급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심선상께서 문제에 따라 잘 판단하라고 하신듯 한데요.
정재준쌤이 지증왕때 시작했다고 말씀하신적 없는데요;;; 삼한때 시작됐지만 기록이 없죠~
농사에 이용된 가축들 중 주종은 '말과 소'였습니다. 그런데 지증왕 때 군마의 확보를 위해 농사에는 주로 소를 쓰게 하고 말을 걷어들인 걸로 어디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신라 지증왕때 우경을 시작하면서 비약적 농업생산량의 발전이 일어나 신라는 만년후진국이었던 입장에서 벗어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들은거같습니다. 그냥 그때가 철기 였으니, 대략적으로 철기라고 알아두시고 신라 지증왕때 우경으로 인한 이러한 효과가 있은 것 정도 알아두시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