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사에서 불거졌던 교리논쟁은 니케아회의를 통해서 정리가 됩니다. 니케아 회의에 참석한 아타나시우스 감독은 니케아 회의에서 삼위일체를 강하게 수호했고 아리우스주의에 대하여 반박하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단적인 교리에 대항하여 삼위일체, 그리스도론과 같은 정통교리를 평생에 지켰습니다. 그의 생을 되돌아보면 아타나시우스는 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거듭 추방을 당하는 일도 있었고 중상모략과 배반 등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가 남긴 복음적인 신앙의 디딤돌이 현재 우리에게까지 남겨진 것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니케아회의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기독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4세기 초, 교회의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우뚝 서 있다. 그는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 아타나시우스였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회의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고, 그의 여생을 그것을 옹호하는 데 바쳤다. 강직하고 고결한 성품을 소유한 그는 신학자, 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교회 지도자였다.
니케아 종교회의 당시 아리우스파에 정면으로 맞서 삼위일체 교리를 수호한 소수 감독들의 지도자는 알렉산더였다. 알렉산더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 젊은 집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는 참 믿음을 변호하고 이단 교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쳐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니케아 회의 당시 라틴어권에서 온 서방교회 감독들은 니케아 회의의 관심사가 ‘오리겐의 전통을 잇는 동방교회의 문제’로 보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서방교회 감독들은 터툴리안이 오래 전에 가르친 ‘3위와 1본질’에 대한 답을 이미 갖고 참석했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의 초두에 화해를 모색하다가, 박해 후 새로운 시대에 교회의 연합을 위협하는 교리 논쟁이 발생한 것을 개탄했고, 알렉산더를 보좌하러 회의에 참석했던 아타나시우스는 이 논쟁의 무대에서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공의회는 결국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을 소유한 분으로 본질상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신조를 작성하기로 하고,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이것이 ‘니케아 신조’로 불리고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3년 뒤인 328년에 33살의 나이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다. 그는 젊은 시절 수도사들에게서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그의 강점은 사변적(思辨的)이지 않고 실천해가는 신앙이었다. 그는 주님을 향한 불같은 정신과 심오하고 흔들림 없는 확신 때문에 누구에게도 정복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니케아 회의 이후 황제는 뜻을 여러 번 바꾸어 아타나시우스에게 핍박을 계속 가했다. 한번은 콘스탄틴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받아들이라는 칙령을 내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독의 지위에서 파면시키고 유배를 보낼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아타나시우스는 전 교회의 결정에 의해 정죄된 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의 이론을 이단으로 공격하며 아리우스의 잘못된 사상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싸우면서 평생을 보냈는데, 373년 사망할 때까지 45년간 니케아신조를 옹호하다가 다섯 번 이상 추방되었다. 그리고 온갖 핍박, 중상모략, 유배를 당했다. 그가 황제에 의해 다섯 번에 걸쳐 추방을 당한 후, 아타나시우스의 정통 입장은 교회 전체적으로 지지를 얻었다. 그는 여러 번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믿음을 따라 잘못된 교리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진리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가 오늘 우리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이 되는 것은 신앙의 정절을 지킨 순수함이다. 그는 거짓된 교리와 싸우면서도 사람을 미워하거나 매도하려 하지 않았다.
헬라어의 정경(kavav)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도 아타나시우스(AD 352년경)이다. 또한 아타나시우스는 27권 신약성경 체제의 목록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아타나시우스가 남긴 “인간은 본성상 필멸(必滅)의 존재이나, 은총으로 불멸(不滅)의 존재가 되었다.”는 말은 짧지만 그가 복음적 신앙의 기초 위에 서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첫댓글 님이 사랑하는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일러드리지요
캐톨릭의 성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그리스어: Αθαν?σιο?, 293년?~373년 3월 2일)는
4세기에 활동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이다. 아타나시오, 아타나시오스라고도 불린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로부터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개신교 회로부터는 위대한 교회의 신학자요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다.
325년 기독교 최초의 세계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의 동일한 본질을 말한
그의 주장을 인정받아 정통 신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표 저서로 <부활전 서한>이 있다
뭐가 뭔지 ....
구분을 하셔야지요 ?
로마 캐톨릭을 대놓고 찬양을 하시네요
님의 이런 글에 속아 넘어갈 분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럼 초대교회이후 300년은 정통교리가 아니였고
캐톨릭이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올바른 정통교리를
세웠다는 것인가요 ?????
답답합니다....
@한기만(오바댜) 제가 지금의 로마카톨릭을 찬양했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정경 66권이 공인된 것도 카톨릭의 종교회의였습니다. 그럼 카톨릭 교회사에 포함된 부분이니 정경 66권도 부인할까요?! 우리가 오늘날의 카톨릭을 부인하고 적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 거짓된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올바른 진리를 외치던 분을 성공회나 카톨릭이 성인으로 여긴다고 부인해야 할까요?! 이 분이 자신 스스로를 성인으로 자처했던 것도 아닌데요. 지금의 카톨릭이 아나타시우스의 신앙관을 그대로 따른다고 보시는지요?! 시공간을 초월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진리의 신앙관입니다.
@긍휼사모
로마 캐톨릭의 성인에 대한 글을 올리시니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긍휼사모 ##정경 66권이 공인된 것도 카톨릭의 종교회의였습니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사실과 좀 다르네요
그 당시 교회에서 사용되던 성경을 공식적으로 캐톨릭의 종교회의에서
인정을 한 것이지 캐톨릭에서 결정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한기만(오바댜)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성경도 그 당시에 사용하던 성경들 중에 외경과 구분지어 정경으로 확정한 것이고.. 삼위일체 교리도 기존에 존재해왔던 내용을 공인한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인 사건과 배경이 있었기에 역사적 신학적 권위를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와 성경 66권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무리없이 전해진 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경륜과 은혜입니다.
@한기만(오바댜) 카톨릭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적 기준에서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삼위일체가 맞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를 지키고자 보여주는 겁니다.. 이단들이 하면 무조건 안해야된다면, 이단들은 80~90%정도의 정통기독교 교리에 10~20%정도의 이단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와 공통된 80~90%도 버려야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기준은 성경인것이지 정통이기 때문에 다 옳고 이단이기 때문에 다 나쁘다로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카톨릭이 본격적으로 본색을 나타낸것은 5~6세기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진짜 성도들의 눈치를 보며 스믈스믈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이구요.
@Isaiah 적그리스도 세력들도 초기에는 진짜 성도들의 말씀에 의거한 외침을 막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기준을 말씀으로 놓으십시오! 말씀의 기준이 최종권위가 아니기 때문에 왜곡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세위격이시며 하나이신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Isaiah 네...전통이라는 것이 성경적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죠. 아나타시우스를 존경하고 지지하는건 그의 신앙관이 성경적이고 우리들의 신앙체계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긍휼사모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길...^^
@Isaiah 님도요..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