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투명 경영은 존경받는 기업 되기위한 필수코스"
서울 장충동의 세계경영연구원(IGM) 강의실. 중소기업 CEO 40여명이 '유(U)'자 모양으로 빙 둘러앉은 이곳에 이채욱(64)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들어섰다. 짙은 감색 정장에 노란색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그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저는 사실 운이 좋아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면서 "그 경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겸손하면서도 부드러운 첫인상과 달리 그는 '투명(visual) 경영', '시스템 경영'으로 압축되는 팀워크, 윤리, 커뮤니케이션 등을 얘기할 때는 단호함을 보였다. 삼성물산 해외사업본부장에서 부채만 가득한 삼성-GE 의료기기 합작회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사장은 연평균 45%의 성장을 이끌며 실력을 인정받아 GE코리아 회장에 올랐다. 2008년 9월에 CEO로 취임한 인천국제공항 역시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실시하는 공항 서비스평가에서 5년 연속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선정됐다. 투명 경영, 시스템 경영으로 압축되는 그의 성공 비결을 소개한다.
■팀워크 키우는 시스템 경영
"리더십(leadership)이란 무엇일까요? 조직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구성원 모두가 다 함께 힘을 합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려면 리더가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직원들이 늘 같이 참여하는 투명한 시스템(operating mechanism)을 갖춰야 합니다.
이는 조직 내 인사(人事)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인사의 기본이란 해당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직접 선발해서 키우고, 또 책임지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장인 저는 제가 직접 쓰는 사람(본부장·실장 13명)만 고릅니다. 대신 본부장은 처장(15명), 처장은 팀장(75명), 팀장은 팀원(750명)을 임명하는 것이죠. 이렇게 조직의 책임자가 같이 일할 직원을 직접 선발하고, 직원들 역시 선호하는 부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팀워크가 강화되고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인사제도는 CEO 한 명의 지시가 아니라 일관성, 공정성,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을 통해 조직을 움직인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채욱 사장은 2008년 9월 인천공항공사에 취임한 후, 곧바로 사장의 고유 권한이었던 인사권을 본부 및 실(室)로 위임했다. 동시에 관리자급은 물론 일반 팀원들까지 자기가 원하는 직무를 1·2지망으로 지원하도록 해, 해당 관리자가 그중에서 선발하게 만드는 '잡 포스팅(Job Posting)' 제도를 도입했다.
"아무리 업적이 좋다 하더라도 정직과 신뢰(integrity) 같은 가치관이 떨어지는 조직은 장기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큽니다. 팀워크를 무시하는 것 역시 조직의 가치관을 떨어뜨리는 행위죠. 가령 10명의 직원 중에 목표치의 130%를 달성하는 한 명이 협동심을 발휘하지 않아 나머지 9명의 업적이 10%씩 떨어진다면 그 조직은 결과적으로 60%를 손해 본 셈입니다. 윤리, 정직, 신뢰와 같은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만큼 시스템을 잘 갖추고 조직문화를 어떻게 이끄느냐는 CEO가 늘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혜 모으는 커뮤니케이션 경영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투명 경영의 일환이다. 이채욱 사장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2부 강의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연습해 보자고 제안했다.
실습은 간단했다. 구성원들의 여러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체험한다는 취지에서 이 교육 프로그램의 슬로건(구호)을 수강생들이 만들어 보기로 했다. 수강생들은 작은 종이에 각자 생각하는 구호를 적어 제출했고, 진행자는 이를 화이트보드에 하나씩 적었다. 그러곤 수강생들은 이들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구호를 2개씩 고르는 투표를 했다.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구호 2개를 놓고 다시 투표를 해서 '윈-윈 CLMP(교육프로그램명)!'을 이 수업의 구호로 최종 결정했다.
- ▲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세계경영연구원‘리더십 스쿨’에 참가한 중소기업 인들에게 투명/시스템 경영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이 사장은 "CEO로 일하다 보면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내 방법이 항상 옳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며 "그러나 지식 경영은 직원들의 생생한 지혜를 모아서 최고의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는 2008년 10월 '뉴 리더 알아가기(assimil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종의 간단한 인사청문회인데, 갓 취임한 이채욱 사장에 대해 그동안 언론에 나온 이야기, 궁금한 점, 또는 우려되거나 제안하고 싶은 내용들을 경영진과 노조간부들이 종이에 적어 화이트보드에 붙인다. 사장은 이를 하나씩 떼어내면서 진솔하게 대답해 주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인천공항공사는 새로 발령받은 본부장 및 실·처장에게도 이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고 있다. 이 사장은 "직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설명함으로써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의 팀을 빨리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예외가 용납되지 않는 윤리 경영
강의 중반에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의 고민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달됐다. 고민의 주내용은 불합리한 영업관행이었다.
"저는 자동차 창문 스위치를 만드는 중견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접대와 금품 제공이 여전하고, 우리 직원들도 원자재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제가 접대비 지출을 까다롭게 챙기고 식사대접도 일절 받지 못하도록 하자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직원들도 많아졌습니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은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겨뤄볼 만한 수준까지 올라갔는데, 직원들의 윤리의식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투명하고 윤리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 사장은 그 해답으로 자신이 GE에 근무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예전에 의료업계 영업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20억원 정도 하는 MRI(자기공명영상) 한 대 팔려면 리베이트가 당연시됐죠. 그러나 GE의 내부 방침은 '리베이트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한국의 관행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제가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취임 3개월 만에 그런 관행을 모두 없앴습니다. 이후 영업 실적은 반 토막이 났죠. (하하) 하지만 업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 병원이 GE와 흥정하다가 다른 업체 제품을 사면, '저 사람은 분명히 뭔가(리베이트)를 받았을 거야'라고 의심하는 반면, GE 제품을 사면 '그 계약은 깨끗한 것'이라는 인식이 심어진 것이죠.
이 사장은 또 '깨끗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저는 GE에 있을 때부터 비서에게 제 개인 통장과 도장을 맡겼습니다. 업무 과정에서 혹시라도 사적으로 연관된 것이라면 제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천공항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업무를 공(公)과 사(私)로 나눠 투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직원들도 다 같이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을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 같아도 일거수일투족 다 비치게 돼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인천공항에만 CCTV가 1700개나 설치돼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카메라가 날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가끔씩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하하하)"
이 사장이 취임한 이후, 인천공항공사는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 out)'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이 인사청탁, 금품수수 등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비리를 저지르다가 적발될 경우 주의·경고 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파면시키는 제도이다.
■권한 위임을 통한 인재 경영
"CEO가 회사 일을 전부 다 알 수 없습니다.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를 구하거나 권한을 넘겨야 합니다. 단적인 예로, 제가 처음 삼성-GE 합작회사에 갔을 때 저는 의료기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비자이자 고객인 의사들에게 영업을 제일 잘하는 직원이 누구인지를 물어봐서, 여러 명이 거명한 직원을 데려오는 것이죠.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충원하니까 그다음부터 CEO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만 잘하면 되게 됐습니다."
이 사장은 권한을 위임할 때의 주의점을 재미있는 예를 들어 소개했다. "CEO가 한 임원에게 임무를 맡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말로는 권한을 넘겼다고 하면서, 복도에서 만나면 '어, 김 이사 그거 어떻게 됐어?'라고 하면 업무 권한을 다시 뺏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CEO들은 말 한마디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이 사장은 또 "기업은 능력 있고 신바람 나는 인재만 있으면 미래가 보장된다"며 직원들에게 업무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백지(白紙)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제가 처음 삼성-GE 합작회사에 가게 됐을 때 사실 그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게다가 그 회사를 정리하고 돌아오라는 미션까지 받았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더라도 일을 하려면 신바람이 나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회사의 장점을 종이에 적어봤습니다. 세계 최고 회사인 GE와 삼성이 함께 만든 회사, 한 대에 20억~30억원 하는 최첨단기기를 만드는 회사, 그동안 해외사업 부문만 맡았던 내가 연구·개발에서 제조·생산·서비스까지 전 분야를 책임지는 회사…. 계속 이렇게 쓰다 보니 '와 신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인천공항공사에 와서도 똑같이 해봤습니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너무 많은 회사, 그동안 비난만 받아왔던 공기업에서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발돋움할 회사…. 그래서 저는 요즘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채욱 사장이 말하는 3가지 성공 비결
1 열정
"자신이 모자라는 게 있으면 열등감을 갖기 전에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경쟁력은 저절로 따라온다."
2 겸손
"누구나 자만심을 갖고 있다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평생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배려
"사람을 접할 때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존중하고 배려할 때 상대방도 결국 알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