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어났어요. 자꾸만 어떤 소리가 들렸거든요. 처음에는 어렴풋이 멀리서 들렸어요. 꿈에서 나는 소리인가 했는데 점점 커지는 거예요. ‘째애까악째애깍’ 꿈이 아니에요. 시계 소리 같아요. 살짝 눈을 떠 보니 아직 캄캄한 밤이라 그냥 자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째애깍째애깍째깍째깍…….’ 저 소리를 조용히 시켜야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힘겹게 눈을 떴어요. 우선 귀를 만져 보았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귀 주변을 더듬거렸어요. 부드럽고 푹신한 베개만 만져졌 어요. 고개를 돌려 침대 오른쪽에 있는 책상 쪽을 바라보았어요.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쪽에서 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말도 안 되지만 아무래도 밖이 아니라 내 안 에서 들리는 것 같아요. 째깍거리는 소리가 내 가슴부터 머리까지 울리고 있어요. 혹시 내가 자는 사이에 누가 나한테 시계를 먹인 걸까요? 아니면, 이제 나는 아홉 살 여자아이 오해주가 아니라 시계로 변하는 걸까요? 나는 슬슬 무서워졌어요. 침대에서 탈출하듯 뛰어내려 더듬더듬 안방으로 갔어요. “엄마!” 소리는 여전히 나와 함께였고, 나는 더 무서워졌어요. 안방 문 손잡이를 세차게 돌리 고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엄마를 흔들었어요. 아빠도 흔들었어요. “엄마, 엄마아! 아빠아!” “해주야아아 왜애. 어리이가아 밤주에 이러먼 아대에.” “나중에 나중에에 엄마안 자야해에.” 아빠는 잠에 취한 소리로 말하며 이불을 더 뒤집어썼어요. 엄마는 반대편으로 돌아누 웠어요. “엄마! 아빠아! 나한테서 시계 소리가 나요.”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어요. 내 울음소리와 시계 소리가 회오리처럼 뒤섞여 나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요. 무섭고 어지럽고 서러워서 더 크게 목놓아 울었지 요. 결국 엄마, 아빠는 일어나 불을 탁 켰어요. 엄마는 시계를 확인하며 물었어요. “왜 그래? 새벽 2시잖아. 무슨 일이야?” 엄마와 아빠는 눈에 졸음이 가득했어요. “시계 소리가 나요. 엉엉엉.” “무슨 시계 소리? 안 들리는데?” “아니이! 내 몸속에서 난다고요!” 엄마와 아빠는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러자 나를 비웃듯이 그 소리는 더 커졌어요. 나는 더 무서워졌어요. 엄마와 아빠는 하품하며 나를 데리고 캄캄한 내 방으로 갔어 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안심시키려고 했어요. “아무 소리도 안 나. 네가 착각한 거야.” “아니에요. 엉엉엉.” “얼른 자자.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자고 나면 괜찮아.” “소리가 나서 못 자겠단…….” “자려고 노력해 봐. 눈 감고. 어서. 응? 우리 딸 착하지?” 엄마와 아빠는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피곤하고 졸리니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 은 거예요. 아빠는 원래도 바빠서 내 얘기를 잘 안 들어주었지만, 엄마는 작년까지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어요. 그런데 엄마도 올해부터 상담사 일을 다시 시작하고는 내 이야기를 잘 안 들어요.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야 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 이 없나 봐요. 나는 소리 때문에 괴롭고 아빠, 엄마가 미워서 이불을 뒤집어썼어요. 엄마와 아빠는 나를 토닥였어요. 나는 가만히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자는 줄 알았나 봐요. 토 닥이는 손길이 사라지고 살금살금 발소리가 들렸지요. 입술을 깨물었어요. 정말 자고 나면 괜찮아질까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어요. 째깍대는 소리가 더 거칠고 빨라졌어 요. 어? 그때, 다시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어요. 엄마가 다시 왔나 봐요. 나는 기뻐서 얼 른 이불을 내렸어요. “엄……!” 엄마가 아니었어요. 침대 옆에 엄청 큰 투명 문어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키가 엄마만 해요. 일반 문어보다 훨씬 다리가 많아요. 그냥 봐도 50개는 넘는 거 같아요. 게다가 반투명한 몸에서는 은은한 빛까지 나와요. 나는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어…….” 놀랍고 무서워 엄마를 부르려는데 내 입이 무언가에 막혔어요. 나지막하고 급한 그러면서도 아주 기쁜 듯한 소리가 들렸어요. 더운 날 시원한 물을 보고 반기는 듯한 목소리였지요. “내가 보여?” 나는 문어와 눈이 마주쳤어요. 문어 머리통이 커다란 분홍 풍선 같아요. 사람처럼 머 리통에 눈 두 개가 나란히 있어요. 눈이 물고기 몸통을 모양이에요. 양쪽 끝이 뾰족하 고 가운데가 통통했거든요. 눈 속에 까만 구슬 같은 눈동자가 있어요. 착하고 순해 보 여요. 무섭지 않아요. 내가 답하지 않자 문어가 조심스레 나를 살피며 다시 물었어요. “내가……보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와! 다행이다!” 눈 아래 길게 튀어나온 둥근 기둥이 움직였어요. 내 주먹 두 개를 이어 붙인 길이만 해 요. 움직이면서 소리가 나요. 입인가 봐요. 입이 애벌레가 꿈틀거리듯 또 움직였어요. “안녕? 너 지금 마음이 엄청 답답하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는 그 말이 눈물 나게 반가워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문어 몸에서 나는 은은한 빛이 따뜻하고 다정해요. 어두운 바닷가에서 홀로 빛을 내는 등대 같아요. 나는 안심이 되었어요. 그 순간, 소리가 아주 조금 작아졌어요. 문어는 부드럽 게 다시 물었어요. “답답했던 일이면 뭐든 괜찮으니 말해줄래?” “으으읍…….” “아차차! 내가 입을 막고 있지! 미안해. 소리 지르지 않는다고 약속해 줄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내 입에서 무언가 떨어졌어요. 투명하고 길쭉한 문어 다리 하나예요. 다리 끝에 둥글납작한 문어 빨판 같은 것이 보여요. 저게 내 입을 막고 있었나 봐요. 이제 보니 다른 다리들 끝에도 모두 문어 빨판 같은 것이 달려 있어요. 발처럼 바닥에 붙어 있어요. 우웩! 이제 보니 발로 내 입을 막은 거네요! “고마워. 나는 ‘마음 폭탄 제거 요원’이야. ‘리아’라고 불러 줘.” 저건 무슨 말일까요? 화내려고 했는데, 너무 궁금해서 화가 쏙 들어갔어요. “마음 폭탄 제거 요원? 마음 폭탄이 뭔데?” 리아는 내 침대 옆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왔어요. “네 몸속에서 째깍대는 소리 들리지? 그게 마음 폭탄이야. 네 마음속에 폭탄이 생겼는 데 그게 터지려고 소리를 내는 거야.” “마음이 폭발한다고?” “그럼. 화산 폭발 그런 것만 위험한 게 아니야. 마음속이 폭발하면 더 위험하다고!” “어떻게 위험한데?” “그 사람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겨. 심하면 죽을 수도 있어.” 그 말을 듣자 째깍대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오지 뭐예요. 죽을 수도 있다니 요! 나는 덜컥 겁이 났어요. “괜찮아. 내가 왔잖아.” “근데 너는 이 소리를 어떻게 들었어? 우리 엄마, 아빠도 못 듣던데…….” “내 다리 끝에 달린 것 보여? 모두 소리를 듣는 귀야. 우리는 땅속에서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어. 그런데 마음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도 다치거나 죽을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마음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 마을은 내 담당이야.” “나 말고도 또 있어?” “응. 요새 좀 더 늘어나.” 조금 안심되었어요. 나만 시계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잖아요. 아! 그렇다고 해서 계속 들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소리는 머리를 아프게 했어요. 하지만 다행이에 요. 리아가 있잖아요. “그럼 네가 내 거랑 다른 사람들 거랑 다 제거해 주는 거야?” “아니, 전부는 아니야. 우리를 봐야 도와줄 수 있거든. 그런데 우리를 보지 못하는 사 람이 더 많아. 그래서 내 친구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늘고 있어. 큰일이야.” “뭐? 왜 못 봐?” “자신이 답답하다는 것과 그 까닭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거든. 그래야 ‘마음 폭탄’ 소리 도 듣고 나도 볼 수 있어.” 리아 눈이 슬퍼 보여요. 나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리아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고마워. 그럼 이제 네가 답답했던 이야기를……아차! 미안. 네 이름도 안 물어봤네.” 문어가 다리 하나를 들어 머리를 문질렀어요. 민망해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났어요. “나는 오해주야.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어.” “음…….” 문어는 신중하게 천천히 머리를 까딱였어요.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아 요. 째깍대는 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어요. “나다희는 내 제일 친한 음, 친구야. 어제 점심시간에 내가 다희한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어. 다희는 재밌겠다며 자기가 먼저 한다는 거야. 알겠다고 했어. 다 희 이야기는 재밌었어. 그런데 내 차례인데도 다희가 한 개 더 한다는 거야. 다희가 이야기를 마치니까 점심시간이 끝났어. 엄청 아쉬웠어.” “아이코, 그랬구나. 다음 쉬는 시간에 하지 그랬어?” “그러려고 했는데, 다희가 싫다는 거야. 다른 놀이 하자고.” “속상했겠다.” “나도 정말 얘기하고 싶었는데……. 다희는 자기 얘기만 해. 내 얘기는 잘 안 들어. 다희가 미워.” “너 정말 힘들었겠다. 맞아. 들어주기만 하는 거는 힘들어.” 문어가 말했어요. 그 순간, 내 속에서 거칠게 울리던 째깍 소리가 반쯤 가라앉았어요. 나는 다희가 밉다고 처음으로 말했어요. 엄마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요. 엄마는 친구 없던 내가 2학년이 되어 친구를 사귀니까 기뻐했고, 선생님은 친구랑 사이좋게 놀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지난달, 오월에 엄마에게 내가 다희 얘기를 듣기만 한다고 했어요. “잘 들어주는 건 멋진 거야. 우리 해주, 친구 이야기 잘 들어주는 멋진 친구네!” 엄마는 활짝 웃었어요. 나는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하지만 그냥 엄마를 따라 웃고 말았지요. 그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어요. “나만 멋진 친구 하기 싫어.” 말했어요. 마음이 엄청 시원해요. “잘 털어놓았어. 봐. 소리가 줄었잖아. 그런데 그 무서운 이야기는 뭐야?” “으응, 어느 학교에 춤추기 좋아하는 12살 여자아이가 있었대. 학교 끝나고 매일 빈 교실에서 거울 보며 춤 연습을 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교실에는 거울이 없었던 거야!” “으악!” “무섭지?” “어, 무섭다. 다희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음……맞아. 나랑 다희는 종종 엄마 놀이를 해.” “재밌어?” “아니야. 나는 엄마 역할만 해.” “엄마면 좋은 거 아니야?” “다희가 엄마는 아기 이야기를 잘 들어 줘야 한대. 다희가 자기는 동생이 2명이나 있어서 집에서 아기를 못 한대. 그래서 나랑 놀 때만큼은 다희가 아기만 하겠대. 나는 아기 얘기를 들어주는 엄마만 하래. 그래서 재미없었어.” “아이코, 다희가 잘못했네!” 우리 둘이 노는 것을 보면 다들 사이좋아 보인대요. 하지만 정작 나는 마음이 갑갑해 터질 것 같았지요. 그런데 리아가 저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에요. “맞아, 다희가 나빠. 엄마라고 항상……아!” “왜?”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힘들었겠다. 전에는 내 이야기 듣느라 지금은 다른 아이들 이야기 듣느라…….” 엄마를 원망한 게 조금 미안해요. 어느새 째깍거리던 소리가 확 줄었어요. 그러더니 하품이 나오지 뭐예요. 몇 시일까요? 침대에서 내려와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어요. 새벽 3시 5분인가 봐요. 어? 문자가 와 있어요. 확인하려는데 리아가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게 아니겠어요? “설마, 얘가 다희야?” 핸드폰 첫 화면은 나와 다희가 같이 찍은 사진이거든요. “응. 왜?” “얘도 얼마 전에 째깍거렸는데, 나를 못 봐서 못 도와줬거든.” “정말? 그럼 터졌어?” 나는 깜짝 놀랐어요. 리아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 저절로 소리가 줄더니 사라졌어.” “뭐? 그럴 수도 있어?” “지금 보니 네 덕분이었나 봐. 네가 다희 얘기를 많이 들어줬다며.” 나는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문자도 다희가 보낸 거였어요. 아까 밤 9시쯤에 보냈네요. ‘해주야, 내일 그 무서운 얘기 해줄래? 나만 말해서 미안해.’ 사실 아까 다희가 다른 놀이하자고 할 때, 화냈거든요. 학원 갈 때도 따로 갔어요. 화낸 것도 둘이 각자 간 것도 처음이었어요. “해주야, 나는 이제 갈게.” “왜? 아직 소리가 남았어.” “이제 자야지. 그리고 남은 소리는 내가 없어도 될 거 같아.” 리아가 내 눈을 보며 다정하게 웃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리아의 몸이 점점 옅어지더니 사라졌어요. 째깍대는 소리가 아주 작아요. 나는 침대에 편안한 마음으로 누웠어요. 이제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