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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라세라] 17
S#1. 지수네 오피스텔 복도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다가가는 은수. 몇 걸음 걸어가는데 다시 통증을 느끼는 듯 멈칫한다.
참고 집 앞으로 걸어간다.
S#2. 태주의 오피스텔
태주, 시계를 보고 TV를 끈다. 흐트러진 맥주캔과 안주를 치우고 옷을 입는다.
가방을 챙겨 불을 끄고 나가는 태주.
S#3. 지수네 오피스텔 건물 앞
준혁, 차에서 내려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간다.
S#4. 지수네 오피스텔 앞
은수, 능숙하게 열쇠 있는 곳을 찾는다. 우유팩, 창틀, 열쇠가 없다.
갑자기 심하게 통증이 온다. 무릎이 턱 꺾이며 주저앉는다.
은수, 공포감이 밀려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의 핸드폰을 찾는다. 핸드폰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겨우 잡았는가 싶었는데 손에 힘이 없어 놓치고 만다.
은수,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려고 손을 내미는데
이때 복도를 돌아 걸어오는 태주가 은수를 본다.
깜짝 놀라 은수에게 다가오는 태주.
은수, 창백한 얼굴로 태주를 바라본다.
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 걸어오던 준혁, 걸음을 멈춘다.
태주가 은수를 일으키고 있다.
태주 : 왜 이래요?
은수,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매몰차게 태주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난다.
태주, 은수의 태도에 충격을 받는데
다음 순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은수, 태주 은수를 잡으려 하지만
그 순간 다가온 준혁이가 은수를 잡는다.
준혁, 태주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번 보고는 은수를 부축해서 복도를 걸어간다.
태주, 그 자리에 꼼짝 없이 선 채로 가는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S#5. 병원 응급실 복도
준혁, 창백한 은수를 부축하고 응급실에서 나온다.
은수, 응급실 근처 의자에 힘없이 앉는다.
준혁, 그런 은수를 안타까운 눈길로 내려다본다.
무표정한 은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준혁 :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어.
은수 : .....
준혁 : 용서해 줘.
은수,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간다.
준혁, 부드럽게 은수의 팔을 잡는다.
은수, 힘없이 준혁을 뿌리치고 걸어간다.
준혁, 가는 은수를 다시 잡는데 은수 좀 전 보다 강하게 준혁의 팔을 뿌리친다.
은수, 준혁을 원망 가득한 눈으로 보며 눈물을 흘린다. 점점 흐느껴 우는 은수.
준혁, 그런 은수를 보는 마음이 아프다. 은수를 포옹한다.
준혁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수, 준혁의 품에 안겨 슬프게 오열한다.
S#6. 준혁의 오피스텔 침실
은수를 침대에 누이는 준혁.
준혁 : 아이는 또 가지면 돼...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당신 몸이나...
은수 : 그 아이가 아니잖아...
준혁 : !
은수 :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아이 낳고, 당신이랑 잘 살 수 있겠구나... 모든 거 다 잊고... 이제 정말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준혁 : .....
은수 : 당신이 날 못 믿는데... 우리... 어떻게 살아요?
준혁 : ...그 때 말한 건 실수였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절대로.
은수 : 그 아이가...불쌍해. 너무너무 불쌍해.
은수, 흐느껴 운다.
준혁, 어쩔 줄 몰라하며 그런 은수를 바라본다.
S#7. 혜린네 집, 태주의 방 (아침)
태주, 출근 준비를 하듯 옷을 입고 있다.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혜린이가 들어선다.
혜린 : 어떻게 된 거야?
태주 : .....
혜린 : 언제 들어왔냐구.
태주 : 새벽에.
혜린 : 너 정말 왜 이러니?
태주 : .....
혜린 : 가뜩이나 어수선하고 아빠까지 저러고 계시는데 조심 좀 해주면 안돼? 몇 번을 말해. 여기 너 혼자 사는 집 아니라구.
태주 : 첨부터 제멋대로 생겨먹은 놈인 걸 날더러 어쩌라구.
혜린 : 그래서 그렇게 계속 제멋대로 살겠다는 거야?
태주 : (넥타이도 맘대로 매어지지 않는다) 이 집 나갈까? 그럼 되겠어?
혜린 : ! 뭐라구?
태주 : (거칠게 넥타이 빼어 집어 던지며) 제발 좀 가만히 좀 놔둬. 나도 미치겠으니까!
태주, 가방을 들고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간다.
혜린, 태주의 태도에 확 불안감을 느낀다.
S#8. 백화점 사무실
태주, 초조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집어 던지고 일어난다.
S#9. 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빼어 들고 복도를 걸어가던 태주.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던 준혁과 마주친다.
준혁, 차갑게 시선을 외면하며 가려는데
태주,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태주 : 어떻게 됐습니까?
준혁 : (본다) 뭐가?
태주 : ...한은수씨요... 혹시 아이가...
준혁 : 네가 내 와이프 일에 왜 관심 가져?
태주 : 당연하잖아요, 그런 모습 봤는데.
준혁 : 관심 갖지도 말고 신경도 쓰지 마.
태주 : !
준혁 : 네 놈만 없으면 아무 문제없으니까.
태주 : !
준혁, 사무실로 들어간다.
S#10.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준혁, 업무를 보고 있다. 역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전화기를 들고 망설이다가 맘먹고 버튼을 누른다.
S#11. 준혁의 오피스텔
작은 짐가방을 싸들고 외출 준비를 한 은수, 거실의 전화를 받는다.
은수 : 여보세요.
준혁(f) : 나예요.
S#12. 준혁의 사무실
통화 중인 준혁.
준혁 : 몸은 좀 괜찮아요?
은수(f) : 네.
준혁 : 은수씨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내가...내가 못났어. 반성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 풀고...
은수(f) : 조금만...
S#13. 준혁의 오피스텔
통화 중인 은수.
은수 : 조금만 시간을 가져요.....당신이랑 나...조금도 쉴 틈 없이 정신없이 달려온 거 같아.
뭐에 그렇게 쫓겼는지 둘 다 너무 정신없었어.
S#14. 준혁의 사무실
준혁, 아픈 마음을 누르고 은수의 말을 듣고 있다.
은수(f) : 나도 숨 좀 돌리고 싶어요. 서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S#15.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 나한테 시간 좀 줄 수 있죠? 당분간... 떨어져 있어요, 우리.
은수, 전화를 끊는다. 잠시 후,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S#16. 준혁의 사무실
힘없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준혁. 아득한 기분이다.
마음을 추스르려 애쓰는데 이때 핸드폰 벨이 울린다. 액정을 보고 어두운 얼굴로 전화를 받는다.
준혁 : 네... 곧 찾아뵙겠습니다.
S#17. 혜린네 집, 서재
서재에 들어서는 준혁. 휠체어를 탄 차회장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개 숙여 인사한다.
차회장 : 앉아라.
준혁 : (앉는다)
차회장 : 너랑 얘기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불렀다.
준혁 : .....
차회장 : 네가 알고 싶은 게 뭐냐?
준혁 : 제 아버지와 회장님에 관한 진실입니다. 제가 본 걸 그대로 믿기에는...너무 벅차니까요.
차회장 : ..막 사업을 확장하려던 시기였어. 처음으로 단독 건물을 짓고 제대로 된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한 말단 경리직원이 찾아왔더구나. 우연히 이중장부기록에 대해 알게 됐다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지.
준혁 : .....
차회장 : 한창 공사 중이던 건물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설득하고, 언쟁하고, 몸싸움도 조금 있었던 거 같아.
준혁 : .....
차회장 : 갑자기 그 사람이 균형을 잃더니 내 눈 앞에서 사라지더구나.
준혁 : .....
차회장 : 당황한 마음에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그 때 널 처음 보게 됐다.
준혁 : .....
차회장 : 두려웠다. 네가 언제 기억을 찾아 이런 날이 오게 될지 몰랐으니까..... 혜린이와의 결혼을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내 딸한테까지 안기고 싶지 않았거든.
준혁 : 그렇게 두려우셨으면서 굳이 절 거두신 이유가 뭡니까?
차회장 : ...그 순간 혹시 네 아버지를 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미처 잡지 못한 게 아니라 안 잡은 게 아닌가...
준혁 : .....
차회장 : 넌 그 대답이 뭐라고 생각하니?
준혁 : .....
차회장 : 분명 그 순간에 내 이기심이 있었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아마 죄는 충분할 거다.
준혁 : .....
차회장 : 죄책감 때문에 널 거뒀고, 널 보면서 평생을 두려워했다.
준혁 : .....
차회장 : 네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마. 사고에 대해 다시 조사하고 싶다면... 그것도 응해주겠다.
준혁 : 진작 말씀해주셨다면 아버님을 이해했을 겁니다. 제가 화가 나고, 서운한 건...
아버님은 제가 아버님에 대해 가진 신뢰만큼 절 믿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차회장 : 그게...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걸 모르겠니?
준혁 : .....
차회장 : 온전한 마음으로 널 대하지 못한 거 미안하다. 그 때문에 널 항상 외롭게 만든 거.....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말이다, 준혁아... 그래서 네 놈이 내 가슴에 깊이 박혀버렸다.
준혁 : .....
차회장, 아픈 시선으로 준혁을 바라본다.
준혁, 차회장을 보다가 고개를 떨군다. 설움을 꾹꾹 누른다.
S#18. 준혁의 오피스텔 (밤)
들어오는 준혁. 불을 켠다. 휑하니 텅 빈 공간이 눈 앞에 들어온다.
소파에 옷을 벗어 놓는다. 문득 아기 용품에 시선이 간다.
다가가 아기용품을 어루만지는 준혁.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상실감과 외로움이 밀려든다.
S#19. 백화점 사무실B (다른 날, 낮)
사무실에 들어서는 태주. 혜린의 방으로 다가간다.
S#20. 동, 혜린의 사무실
태주와 혜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다.
태주 : 또 무슨 일로 부른 거야?
혜린 : 당신이랑 하도 얘기할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 사무실로 부르는 수밖에. 도대체 매일 밤늦게 어딜 가 있는 거니?
태주 : 용건이나 얘기해.
혜린 : (참고) 아빠 심경에 여러 가지로 변화가 생기신 거 같아.
태주 : .....
혜린 :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시겠대.
태주 : !
혜린 : 아빤 아마도 당신과 내가 아빠 뒤를 잇는 걸 생각하고 계신 거 같아.
태주 : !
혜린 : 당신, 생각보다 빨리 월드 백화점 접수하게 됐다구.
태주 :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혜린 : 그거야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잖아.
태주 : 혹시 네가 아버님 조른 거야?
혜린 : 그게 조른다고 될 일이니? ..... 처음엔 나한테 맡으라고 하셨는데 내가 혼자는 벅차다고 했어. 당신이 필요하다고.
태주 : .....
혜린 : 사실 그게 더 낫잖아. 나 혼자는 무리지. 별로 경험도 없는데.
태주 : .....
혜린 : 왜 이렇게 담담해? 원하던 걸 얻게 됐는데. 안 좋아?
태주 : (착잡한 얼굴로 일어난다)
혜린 :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태주 : .....
혜린 : 설마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지.
태주 : 뭘?
혜린 : 한은수 준혁 오빠 아내야. 곧 아이도 낳을 거구... 그 사실 잊지 마.
태주, 혜린을 잠시 보다가 나간다.
혜린, 태주의 태도가 못내 불안하다.
S#21. 바 (밤)
호영과 태주.
태주 : 세상에 나보다 운 좋은 놈이 있을까.
호영 : 없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태주 : ...꼭 뭐에 씌운 거 같아.
호영 : 야, 나 좀 어떻게 안되겠냐.
태주 : ?
호영 : 스카웃 뭐 그런 거 있잖냐. 네가 빽써서 해줄 수 있잖아. 연봉 지금의 2배 정도로 엉?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써먹지.
태주 : (피식 웃는다)
호영 : 야, 나도 출세하는 거네. 세상에 재벌이랑 친구 먹는 놈이 몇이나 있겠냐. 가만 보면 네 놈이 참 영양가 있는 놈이야.
호영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생각에 잠기는 태주.
씬4에서 고통 속에서도 태주를 매몰차게 밀어내던 은수의 모습이 스쳐간다.
태주 : 숨이 막혀.
호영 : ?
태주 : 누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거 같아.
S#22. 지수네 오피스텔 복도
복도를 걸어오는 태주. 은수네 집 앞에서 멈춘다. 머뭇거리다가 초인종을 울려볼까도 하지만 차마 할 수가 없다.
포기하고 그대로 걸어간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듯 다시 뒤돌아본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는데 잠시 후, 문이 열린다.
태주, 기대의 눈으로 보는데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은수와 눈이 마주친다.
은수, 약간 당황한 듯 하지만 곧 침착하게 눈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태주, 힘없이 태주 오피스텔로 향한다.
오피스텔 문을 열려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S#23. 동, 엘리베이터 앞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은수를 잡아채어 포옹하는 태주.
은수, 태주를 밀어내려 하지만 태주 더욱 깊이 은수를 안는다.
태주 : 도저히 안 되겠어. 은수야.
은수 : .....
태주 : 미안해.... 널 놔버려서 정말 미안해.
은수 : .....
태주 : 우리 도망가자.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다 털어버리고 그냥 어디든 가자...
은수, 태주를 부드럽게 밀치며 떨어진다.
애절한 시선으로 태주를 바라보는 은수.
은수 : 이제 미련한 짓 그만 해요.
태주 : 은수야.
은수 : 더 이상... 다른 사람 아프게 하지 말아요, 우리. 이제... 지쳤어.
태주 : .....
은수 : 십년이 흐르고 이십년이 흘러도...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다 본다고 해도 아는 척도 하지 말아요.
평생... 다시는 만나지 말고... 잊어버려요.
태주 : !
은수,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태주, 닫혀진 문만 바라보고 있다.
S#24. 동, 엘리베이터 안
주저앉아 버리는 은수. 고개 숙인 채 흐느낀다.
S#25. 동, 복도
힘없이 복도를 걸어가는 태주. 맥이 풀린 듯 구석 벽에 기대어 선다. 눈물이 난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오열하는 태주.
S#26.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다른 날, 낮)
준혁, 사표를 쓰고 있다. 작성한 사표를 봉투에 넣는데 노크도 없이 최이사가 들이닥친다.
최이사 : 어떻게 된 거야! 박대완이가 갑자기 왜 마음을 바꿔!
준혁, 침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혁을 노려보는 최이사.
<시간 경과>
준혁과 최이사, 테이블에 앉아 있다.
최이사 : 그러니까...네가 날 갖고 논 거란 말이냐?
준혁 : 정확한 표현은 이용한 거죠.
최이사 : (탁자 치며) 뭐라구, 이 자식아!
준혁 : 최이사님이 제 아버지를 이용한 것처럼요.
최이사 : !
준혁 : 모를 줄 알았습니까.
최이사 : !
준혁 : 제 아버지는 회사 내 비리를 알아내 그걸 빌미로 회사 오너를 협박할만한 분이 못됩니다. 그럴 배짱도 없고, 용기도 없고,
그만큼 약지도 못한 분이셨죠.
최이사 : .....
준혁 : 빚에 못 이겨 최이사님의 유혹을 받았다면 모를까.
최이사 : (피식 웃는) 너 아주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준혁 : 아무도 모르는 차회장과 제 아버지의 약속장소를 최이사님이 알고 있었다는 거. 제 아버지 성품을 잘 아는 마당에
그거면 심증은 충분합니다.
최이사 : !
준혁 : 감히 그 아들까지 이용하려고 하다니. 날 너무 얕보셨어요.
최이사 : !
준혁 : 그만 돌아가세요. 아무리 분해도 일대일 비긴 거고, 그나마 그 쪽은 목숨은 유지하고 있잖습니까.
최이사, 분한 듯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준혁,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S#27. 준혁의 오피스텔 (밤)
들어서는 준혁. 불이 켜진 실내에 의아해 하는데
잠시 후 주방에서 앞치마 차림의 은수가 나온다.
준혁 : (반가운) 언제 왔어요, 연락도 없이.
은수 : (엷게 웃는다) 저녁 준비 했어요. 씻고 오세요.
S#28. 동, 주방
식사하는 준혁과 은수.
준혁, 은수를 본다.
준혁 : 고마워.
은수 : .....
준혁 : 와줘서 고마워요.
은수 : ...당연한 건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준혁 : 아직도 얼굴이 안 좋아. 몸은 괜찮은 거예요?
은수 : (끄덕인다)
준혁 : ...곧... 회사 그만 둘 거예요.
은수 : ?
준혁 : 미국에 있을 때부터 그곳 오리건 주에 있는 스타몰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거든요. 다 정리하고 그 쪽으로 가려구요.
은수 : ! 미국이요?
준혁 : (끄덕인다)
은수 : .....
준혁 :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항상 그런 생각 하고 있었던 거 같아.
은수씨랑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
은수 : .....
준혁 : 다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요, 우리. 멀리 떨어져 있으면 다 괜찮아질 거야.
은수 : .....
준혁 : 분명히 좋아질 거예요.
은수, 말없이 밥을 먹는다.
준혁,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음식을 먹는 은수를 바라본다.
S#29. 동, 침실
잠자는 준혁. 문득 잠이 깬다. 옆자리를 보면 은수가 보이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S#30. 동, 거실
은수,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나오다가 그런 은수를 바라보는 준혁. 한참을 멍하니 있는 은수를 바라본다.
S#31. 바B (다른 날, 밤)
혜린, 술을 마시고 있다.
잠시 후 준혁이가 들어와 옆에 앉는다.
혜린 : 오랜만이야.
준혁 : 응.
혜린 : 아빠랑 화해했다며?
준혁 : .....
혜린 :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얘기 안해줄 거야?
준혁 : 응, 안해줄 거야.
혜린 : (본다) 고집도 진짜 세.
준혁 : 그냥 아버님이랑 내 일로 덮어두고 싶어.
혜린 : ...회사 그만 두기로 했다며.
준혁 : 응, 오리건 스타몰에 들어가기로 했어.
혜린 :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솔직히 마음 놓여. 오빠네 멀리 떠난다니까.
준혁 : (본다)
혜린 : 불안했거든. 결혼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계속 불안했어. 그 사람 마음 못 잡을 까봐.
준혁 : 바로 옆에 있어도 천길만길 떨어져 있는 기분, 그거 보통 고문이 아니야.
혜린 : 그게 무슨 소리야?
준혁 : 생각보다 힘들어, 그거.
혜린 : ...은수씨랑 안 좋아?
준혁 : .....
혜린 : 오빠.
준혁 : 내 사람 만들면 나도 다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러고나서가 더 문제더라구.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자꾸 욕심을 내게 되거든.
혜린 : 오빠 생각보다 센티멘탈 하다? ...난 그런 감정적인 거, 기분, 다 상관없어. 그냥 그 사람만 옆에 있으면 돼. (술을 마신다)
준혁 : 나 같은 잘못 되풀이하지 말란 얘기야.
혜린 : 후회하는 거야?
준혁 : ...후회 하면서도...놓치고 싶지가 않아. 이게 네가 말한 그 오기라는 건가 봐.
혜린 : 그럼 놓치지 마. 복잡하게 고민할 거 뭐 있어. 살다보면 다 무뎌지고 괜찮아져. 지금 힘들어도 그냥 참어.
혜린, 초조한 듯 급히 술을 마신다.
준혁, 불안한 시선으로 혜린을 본다.
S#32. 혜린네 집 거실
차회장과 윤여사, 혜린과 태주가 앉아 있다.
태주, 어두운 얼굴이다.
차회장 : 갑자기 책임이 무거워지겠지만, 워낙 경영진들이 탄탄하니 널 잘 보좌할 수 있을 거다.
태주 : 네...
윤여사 : 아무리 그래도 결혼부터 먼저 하는 게...
혜린 : 어차피 날짜 얼마 남지 않은 결혼식 며칠 더 앞당긴다고 뭐가 달라져요.
윤여사 : 그러니까 그 결혼 하고 나서 맡기라는 거 아냐. 그게 순리에 맞지 않니?
혜린 : 준혁 오빠 갑자기 그만 두게 돼서 공석이 생겼잖아. 회사 사정이라는 게 있어, 엄마.
윤여사 : 그래.. 언제 내가 발언권 있었나..
혜린 : 또 삐지신다.
차회장 : 지난 번 일 때문에 너에 대해 말이 좀 있겠다만... 그건 내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걸로 일단락 될 수 있을 거야.
태주 : .....
차회장 : 다음 임원회의 때 보고 올리는 걸로 하자.
혜린 : 네.
차회장 : 난 참석하지 않을테니 그건 네가 잘 알아서 하고.
혜린 : 알았어요, 아빠.
태주 : .....
S#33. 백화점 사무실B, 혜린의 사무실 (다른 날, 낮)
혜린, 업무를 보고 있다.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태주가 들어선다.
혜린 : 웬일이야?
태주, 테이블에 앉고 혜린도 마주 앉는다.
혜린 : 무슨 일 있어?
태주 : ...(잠시 혜린을 보다가)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혜린 : 뭐가?
태주 : 너랑 나...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혜린 : 뜬금없이 갑자기 왜 이래? 우리 관계가 뭐가 어때서? 지금 다 잘 되고 있잖아.
당신 원하던 대로 아빠가 회사 일 당신한테 맡긴다고 그러고...
태주 : 너랑 나 사이 유지될 수 있는 게 고작 그런 거라는 게 말이 돼?
혜린 : ! 말이 안되면... 지금 무슨 말 하고 싶은 거야? 처음부터 당신은...
태주 : 그 처음부터가 잘못됐어.
혜린 : !...뭐야, 이제 와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는 거야? 너, 그거 하나도 안어울리거든.
태주 : 네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게 부담스러워.
혜린 : 부담스러우면 부담스럽지 않게 하면 될 거 아니야.
태주 : (본다)
혜린 : 날 사랑해. 그럼 되잖아. 그렇게 연애 잘하던 사람이 그게 뭐가 어려워서.
태주 : 혜린아...
혜린 : 준혁 오빠 미국 간대.
태주 : !
혜린 : 미국에 있는 유통회사로 들어간대.
태주 : .....
혜린 : 물론, 한은수랑 같이 떠나는 거고. 곧 출국하게 될 거야.
태주 : .....
혜린 : 당신 이제 그 사람들 볼 일 없다구. 한은수... 이제 네 눈 앞에 없어!
태주 : !
혜린 : 누구보다 약은 사람이잖아. 자기 이익 찾아야지. 감정에 허우적대지 말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네 인생이나 생각하란 말이야!
태주 : .....
혜린 : 나한테 전혀 정 없는 거 아니잖아. 안 그래? 살다보면 정으로 살게 돼. 다 그렇게 살아.
태주 : .....
혜린 :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거야, 태주씨. 그리고 나 지금, 어느 때보다도 당신 필요해.
아빠도 당신 많이 의지하고 계신 거 알잖아. 잘해 보자. 우리 같이 잘 할 수 있을 거야.
태주, 은수가 떠난다는 사실에 충격이다.
S#34. 동,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오는 태주. 힘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은수가 떠난다는 생각에 아득하다.
S#35. 준혁의 오피스텔 안방
준혁과 함께 커다란 여행가방에 짐을 챙기고 있는 은수.
은수, 한참 챙기다가 문득 손길을 멈추고 멍하니 있는다.
은수에게 가방에 넣을 짐을 넘겨주다가 그런 은수를 보는 준혁.
은수, 정신 차리고 준혁이 넘겨준 것을 가방 안에 급히 챙겨 넣는다.
준혁, 그런 은수를 쓸쓸한 눈길로 바라본다.
S#36. 지수의 병실 (다른 날, 낮)
지수, 서운한 눈으로 은수를 본다.
지수 : 나 퇴원하는 것도 못 보고 간단 말이야?
은수 : (끄덕)
지수 : 형부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은수 : 거기 회사 일정 때문에 그렇대. 그리고 너도 이제 많이 괜찮아졌잖아.
지수 : .....(울먹인다)
은수 : 지수야.
지수 : 나 건강하게 되면 언니랑 여기저기 놀러도 많이 다니고 진짜로 신나게 지내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은수 : 미국으로 놀러 와. 내가 재밌는 구경 많이 시켜줄께.
지수 : .....
은수 : 언니 잘 둔 덕분에 미국 구경도 하고 얼마나 좋니?
지수 : 한은수..! 너 시집은 왜 갔냐?
지수,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눕는다.
은수, 안쓰러운 듯 본다.
S#37. 준혁의 오피스텔 (밤)
거실로 나오는 준혁.
은수, 창가에 서 있다.
준혁, 은수에게 다가간다.
은수, 준혁을 본다.
은수 : 신혼살림 차린 지 얼마 안됐는데 이 집을 떠난다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준혁 : 섭섭해요?
은수 : (웃는다) 조금... 그래도 정 들었는데.
준혁 : 어머니랑 동생, 많이 서운해 하죠?
은수 : (끄덕인다) 특히 지수가... 퇴원하는 거 보고, 좀 놀아주기도 하고 갔으면 좋을텐데... 마음이 좀 그래요.
준혁 : 그거 말고는 괜찮아요?
은수 : ?
준혁 : 떠나는 거, 은수씨도 괜찮냐구요.
은수 : 그럼요.
준혁 :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요.
은수 : 서운하긴 한데... 한편으로는 좋아요.
준혁 : .....
은수 : 당신 말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 가는 거...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좋아요.
준혁 : .....
은수 : (창에 시선 둔 채) 이제 진짜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다 잘 될 거예요.
준혁, 은수를 본다. 은수의 얼굴이 쓸쓸히 슬픔에 젖어 있다.
S#38. 백화점 사무실B, 혜린의 사무실 (다른 날, 낮)
혜린, 통화 중이다.
혜린 : 준비 다 했어? ...무슨 준비라니, 곧 임원회의 열리는 거 몰라? 당신 정식으로 영업본 부장으로 나서는 자리잖아.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야지.
S#39. 백화점 사무실
태주 : .....
혜린(f) : 난 매장 들렀다 갈 거니까, 조금 이따 회의실에서 보자.
태주 : .....
태주, 전화 끊는다. 시계를 본다.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S#40. 대회의실
임원들이 하나 둘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 자리가 거의 차고 혜린이가 들어와 임원들에게 인사하고 앉는다.
혜린, 자리를 둘러보지만 태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임원 : 시간이 지났는데 강차장은...
혜린 : 금방 올 거예요.
혜린, 핸드폰을 누른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혜린의 표정이 초조해진다.
임원, 의아한 듯 혜린을 본다.
혜린, 전화기를 내린다.
혜린 : 오는 중인가 봐요.
혜린, 지루하게 앉아 있는 임원들을 불안한 시선으로 본다.
S#41. 동, 회의실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 태주. 문득 걸음을 멈춘다. 망설이듯 복잡한 심정이다.
태주,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다. 결심한 듯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S#42. 백화점 건물 앞
백화점에서 나오는 태주. 길을 걸어간다.
한참 걸어가다가 택시를 잡아타는 태주.
S#43. 대회의실
임원들,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난다.
혜린, 홀로 남아 있다.
S#44. 도로 / 택시 안
태주,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어딘가 가뿐한 기색이다.
S#45. 지수네 오피스텔 복도 (밤)
복도에 들어서는 혜린. 굳은 얼굴로 태주의 오피스텔로 향한다.
태주 오피스텔 초인종을 누르는 혜린. 문도 쾅쾅 두드린다.
잠시 후, 태주가 문을 연다.
혜린 : 역시, 여기 있었네.
태주 : .....
S#46. 태주의 오피스텔
혜린, 실내를 둘러보며 소파에 앉는다.
혜린 : 그동안 틈만 나면 여기 왔었니? 그래서 매일 늦었던 거야?
태주 : (냉장고 향하며) 뭐 좀 마실래?
혜린 : 내가 지금 뭐 마시게 생겼어?
태주, 혜린에게 다가온다.
혜린 : 너 뭐야?
태주 : 아무리해도 안되겠어서... 그 자리에 갈 수가 없었어.
혜린, 일어나 태주의 가슴을 치고 민다.
태주, 혜린을 만류하며 혜린의 팔을 잡는다.
태주 : 혜린아... 널 위해서도 안 좋아.
혜린 : 네가 언제부터 날 위했다구!
태주 :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까짓 마음...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그게 안돼. 마음을 이길 수가 없어.
혜린 : !.....그래서...뭘 어쩌겠다구? 한은수가 너한테 온대? 당장 미국 떠나기로 한 여자가 너한테 오기라도 한대?
태주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혜린 : 그럼 뭐가 중요해?
태주 : 너한테 할 짓이 아니야, 이건.
혜린 : !
태주 : 네가 믿건 말건... 너 때문에 안돼.
혜린 : 핑계대지 마.
태주 : 핑계 아니야. 네 마음 아니까... 나에 대한 마음 어떤 건지 아니까...그래서 더...널 속이고 살 자신이 없어.
혜린 : ! .....자신 없어도 해! 내가 너한테 바란 거 있니? 그냥 옆에만 있어 달라잖아. 그게 뭐가 어려워?
당신 원하던 인생도 살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거 다 이뤄졌는데 왜 이제와서 난리야!
태주 : 이게 끝이 아니잖아!... 너랑 나, 앞으로 살 날 많고 앞으로 기다리는 거 많아.
여기서 인생 다 끝날 것처럼 악다구니 쓸 거 뭐 있어?
혜린 : 난 싫어, 못해!
태주 : 사람 진심 팔아버린 나도 잘못이고, 진심 따위 필요 없다고 어거지 쓴 너도 잘못이야. 그 잘못 알았으면 그만 둬야지.
더 이상 가다간 너나 나나...좋을 거 없어.
혜린 : (분에 못 이겨 태주를 친다)
태주 : (혜린을 끌어안는다) 너처럼 사랑 많은 애가, 너처럼 열정 가득한 애가... 왜 나 아니면 인생 끝날 것처럼 구는 거야.
너무 아깝잖아, 그건. 앞으로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데 왜 막다른 데 서있는 사람처럼 이러냐구.
나.., 그거 못하겠어. 숨이 막혀서...더 이상 못하겠어.
혜린 : (태주의 품에서 나와 울먹이며 본다) 그래서 맨날 이 집에 왔니? 그렇게 숨이 막혀서?
태주 : .....
혜린 : 이 나쁜 자식아!
태주 : 네가 예전에 만나던 가벼운 연애상대라면 나도 이러지 않아. 그런데.....네 진심을 견뎌낼 만큼 나 그렇게 뻔뻔스럽지가 못해.
혜린 : (눈물을 흘리며 태주를 본다)
태주, 부드럽게 혜린을 포옹한다.
태주 : 그만하자. 우리. 이 질긴 싸움 그만하자구. 빠져나올 수 있을 때...지금이라도...빠져 나오자. 그렇게 해야 돼. 혜린아.
혜린, 태주의 품에 안긴 채 오열한다.
S#47. 인천공항 (다른 날, 낮)
커다란 짐가방을 옆에 두고 공항 벤치에 앉아 있는 은수.
티케팅을 마친 준혁, 두 장의 티켓을 내려다보다가 망설이듯 먼발치의 은수를 본다.
은수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준혁.
은수 : 다 끝났어요?
준혁 : .....(은수에게 티켓을 내민다)
은수 : (티켓을 받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정말 떠나는 구나.
준혁 : .....
은수 : (웃는다) 이제 진짜 실감이 나는 거 같아.
은수, 잠시 티켓을 만지작거리다가.
은수 : 잠깐...시간 돼죠?
준혁 : 왜요?
은수 : 지수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싶어서요.
준혁 : 아직 시간 있어요. 전화해요.
은수, 티켓을 의자 위에 내려놓고 떨어진 한 쪽으로 간다.
전화 통화를 하는 은수를 지켜보는 준혁. 간혹 웃다가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은수를 바라본다.
은수가 내려놓은 티켓에 시선이 간다.
티켓을 집어 드는 준혁. 은수와 티켓을 한동안 번갈아 보다가 결심한 듯 안주머니에 티켓을 넣는다.
잠시 후에 통화를 마친 은수가 다가온다.
은수 : 가요, 이제.
준혁 : 통화 잘 했어요?
은수 : (끄덕이며 가방을 드는데)
준혁 : 고마워요.
은수 : ? 뭐가요?
준혁 : 여기까지 와줘서.
은수 : 네?
준혁 : 이걸로 만족할래요. 이렇게 은수씨 배웅 받는 걸로.
은수 : ! 무슨 말이에요?
준혁 : 은수씨 애쓰고 있는 거 알아요, 그걸로 만족하겠다구요.
은수 : !
준혁 : 바로 조금 전까지도 계속 망설였어요. 그냥 눈 딱 감고 은수씨 데려갈까 하고.
그런데... 역시 날 위해서나 은수씨를 위해서나 그건 아닌 거 같아.
은수 : ...상무님... 왜 이러세요?
준혁 : 나, 계산 속 밝은 사람이라고 했죠? 은수씨 등 보면서 외롭게 살 자신이 없어요. 그거 너무 손해잖아.
은수 : ...나 노력할께요.
준혁 :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우리 두 사람 다,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태평양을 건너도 그건 계속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 거야.
은수 : (눈물이 핑 돈다)
준혁 : 은수씨가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은수씨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한 생각 갖지 말아요.
은수 : .....
준혁 : 여기까지 나와 준 걸로... 끔찍하게 여기는 동생까지 떨쳐버리고 끝까지 날 따라와준 걸로, 그걸로 만족할께요.
은수 : .....
준혁 :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나, 은수씨 볼 자신이 없으니까... 또 언제 약해져서 은수씨 붙잡겠다고 할지 모르잖아.
은수 : .....
준혁 : (은수를 보며 웃는다) 그러니까 어디서 보면... 나 아는 척도 하지 말아요.
은수 : !
준혁, 가려는데 은수, 준혁을 포옹한다.
은수 : 미안해요... 외롭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아프게 해서... 상처만 줘서 너무 미안해요.
울먹이는 은수. 설움에 복받쳐 흐느낀다.
은수와 준혁, 서로 깊이 오래도록 포옹한다.
S#48. 백화점 매장 (2년 후, 낮)
몇몇 직원들과 함께 앞장서서 매장을 돌고 있는 혜린.
뭐라 지시를 내리고 직원의 설명을 듣는 듯 매우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다.
잠시 후, 혜린의 핸드폰이 울린다.
혜린 : (반가운) 뭐야, 벌써 도착했어?
S#49. 인천공항 앞
밖으로 나오며 통화하고 있는 준혁.
준혁 : 응, 방금 공항에서 나왔어. 바쁘니?
S#50. 백화점 매장
통화 중인 혜린.
혜린 : 맨날 이렇지 뭐. 오빠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야.
그래, 언제쯤 도착할 거 같아? .....알았어. 거기서 보자.
전화 끊는 혜린. 직원들에게로 다가가 다시 뭔가 지시를 한다.
S#51. 이벤트 회사 사무실
서성이며 서류를 뒤적이며 통화 중인 태주.
태주 : 행사에 참여하는 모델 프로필까지 사전에 드리긴 힘들 거 같은데요..... 예, 예, 말씀하시는 뜻은 알겠는데
저희도 그 부분은 관련 업체를 통해서 하는 거라서요, 일정 수준 이상은 제가 책임지고 보장하니까...
네? 물론 변동 사항이야 항상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전화가 끊겼는지 황당한 듯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태주 : 뭐 이런 자식이... 개업행사 하나에 아예 패션쇼를 기획해라!
전화벨이 울린다. 태주, 전화 받는다.
태주 : 네, 퍼니룸입니다. (씩 웃는)..... 당연히 바쁘지. (시계 보며) 이젠 백화점에도 들어가 봐야 돼. 내가 가서 점검 좀 해야지.....
알아. 많이 늦진 않을 거야.....응.
태주, 전화를 끊고 서류를 챙겨 옷을 들고 나간다.
S#52. 호텔 바 (밤)
준혁과 혜린, 술을 마시며 마주 앉아 있다.
혜린 : 출장은 언제까지야?
준혁 : 금요일.
혜린 : 한번 집에 올 시간은 있지?
준혁 : 아버님 어머님한테 인사 드려야지.
혜린 : .....은수씨랑 그렇게 된 거 한참 나중에 들었어.
준혁 : 그래?
혜린 : 왜 갑자기 그런 거야?
준혁 : 말했잖아. 마음 멀리 있는 사람 옆에 두고 있는 거 피곤하다고. 그래서... 내가 찼어.
혜린 : 역시 오빤 차는 거 전문이네. 그것도 타이밍 잘 맞춰야 한다던데.
준혁 : 내가 워낙 계산속이 밝으니까.
혜린 : 난 그 계산속이 어두운가 봐.
준혁 : (웃는다)
혜린 : 그래서 두 번이나 채였잖아. 타이밍 잘 맞춰서 내가 선수 쳤어야 했는데. 아까워.
준혁 : 네가 원래 실속이 없긴 하지. 은근히 순진해.
혜린 : 은수씨 소식은 알아?
준혁 : 아니.
혜린 : 궁금하진 않고?
준혁 : 궁금하지 않으려구.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혜린 : 난 궁금해. 강태주랑 한은수, 어떻게 됐는지.
준혁 : .....
혜린 : 둘이 그렇게 난리를 쪼개놓고 우리 인생까지 영향 끼쳤는데 도대체 어떻게 됐는지 결판을 봐야할 거 아냐.
준혁 : 그래서?
혜린 : 강태주 불렀어.
준혁 : 악취미다. 나 만나는 자리에 꼭 그 자식 불러야겠냐?
혜린 : 아직도 감정 안 좋네.
준혁 : 좋을 리 있어? 그 자식 재수 없어.
혜린 : 재수는 없어도 재미는 있잖아.
준혁 : 그렇게 궁금한 걸 왜 이제야 알아본다 그래?
혜린 : 그동안은 궁금하지 않으려고 했었거든. 오빠처럼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준혁 : ....
혜린 : 사실은... 나 혼자 그 사람 만날 자신도 없었어. 오빠 온 김에 용기 낸 거야.
준혁 : 그 자식은 흔쾌히 나오겠대?
혜린 : 워낙 뻔뻔하잖아.
준혁 : 어련하겠냐.
이때, 홀에 태주가 들어선다. 혜린을 찾듯 주변을 둘러본다.
혜린, 먼발치로 태주를 본다.
혜린 : 왔다.
준혁 : (본다)
혜린 : (혼잣말하듯) 여전히 멋지다... 신경질 나게.
태주, 혜린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다가와 앉는다.
태주 : 오랜만이네? (준혁을 본다) 그 쪽두요.
준혁 : .....
혜린 : 일은 어때?
태주 : 잘 진행되고 있어.
혜린 : (준혁에게) 우리 백화점 12주년 기념 이벤트, 이 사람 회사에 맡겼거든.
태주 : 이거... (준혁과 혜린을 보며) 오랜만에 보니까 좀 어색하네.
혜린 : (태주에게 잔을 내주며 술을 따라준다) 당신도 어색해할 줄 아는 거 보니까 인간미 넘쳐 좋다.
태주 : 그거 말고도 인간미 넘치는 건 많을텐데?
혜린 : 여전히 자뻑이야.
준혁 : 이벤트 회사에서 일하나 보지?
태주 : 네...
준혁 : 백화점 일 한다면서 두 사람 처음 보는 거야?
혜린 : 이 사람 회사에 일 맡긴 건 처음이거든. 백화점 경영자랑 일개 이벤트 회사 사람이랑 마주칠 일도 없고. 노는 물이 다르잖아.
태주 : 말하는 본새 하곤. 여전히 건방이 뚝뚝이야.
혜린 : (웃으며) 사람 변하기 힘들지.
태주 : (웃으며) 잘 지냈어?
혜린 : 보다시피.
태주 : 신준혁씨는 미국 생활 할만해요?
준혁 : (본다)
태주 : 설마 형님 소리 들을 생각 한건 아니죠? 이제 우리 그런 관계 아니잖아요.
준혁 : 잘 지내고 있어.
태주 : (준혁과 혜린 보며) 왜 나한테는 아무도 잘 지내냐는 말을 안 물어 보냐.
준혁 : 너야 오죽이나 잘 지내겠냐.
태주 : 여전히 까칠하시긴. 그렇게 살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아요?
준혁 : 너한테만 그런 거니까 걱정 마.
혜린 : 나한테 빚진 거는 알아?
태주 : 무슨?
혜린 : 아빠가 당신 앞길 막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어. 당신 딸이랑 약혼까지 하고 그렇게 줄행랑 쳤는데 가만히 계셨겠어?
태주 : 목숨 부지하는 것도 다행인 거야?
혜린 : 맘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 알지? 다 내 덕분인 줄 알아.
태주 : ...아버님 어머님은 안녕하시지?
혜린 : 응. 당신 얘기만 안 나오면.
태주 : .....
혜린 : 하는 일은 괜찮아?
태주 : 역시 난 여기 저기 다니며 몸 놀리면서 사는 게 적성에 맞는 거 같아. 재밌어, 좋아.
혜린 : 백화점 아깝단 생각은?
태주 : 가끔. 돈 궁할 때? (웃는다) 내가 맡았으면 백화점 쫄딱 망했을 거다. 회사 경영은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혜린 : 양심은 있어.
태주 : 주제 파악을 하는 거지.
혜린 : 오빠랑 당신 얘기 하고 있었어.
태주 : 내 얘기 뭐?
혜린 : 한은수랑 어떻게 됐나.
태주 : .....
혜린 : 어떻게 지내?
태주 : (준혁을 한번 보고) 몰라...
혜린 : 안 만나?
태주 : 그 식구들 군산에 내려간 다음부턴 전혀.
혜린 : (준혁을 보며) 의외네?
준혁 : .....
혜린 : 기분은 진짜 좋다. 두 사람 연결 안됐다니까. 그치, 오빠.
준혁 : 소식 전혀 몰라?
태주 : 한은수씨는... 나중에 서울에 있는 무슨 인터넷 쇼핑몰에 다닌다던데, 정확힌 몰라요.
혜린 : 그건 어떻게 알아?
태주 : 아는 형이 은수씨 동생이랑 계속 연락 하거든. 지수, 기억하지?
혜린 : 그런데 한번도 안 봤다구?
태주 : 응.
혜린 : 왜?
태주 : 내 얼굴 보기 싫다더라구. 지나가도 아는 척 하지 말아달라는데 마지막 부탁은 들어줘야겠다 싶어서. (술 마신다)
준혁 : .....
세 사람, 잠시 침묵한다.
태주 : 그거 궁금해서 나 부른 거야?
혜린 : 겸사겸사. 당신 얼굴도 보고 싶었고. 물론, 준혁 오빠는 아니야. 오빠는 여전히 당신 싫대.
태주 : (준혁보며 웃는) 나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죠? (혜린에게 다정하게) 애인은 있어?
혜린 : 고르는 중이야. 당신은?
태주 : 여자야 계속 꼬이는데 나도 이제 신중해야지.
혜린 : 당신이 그런 말 하니까 웃긴다.
태주 : 철 들은 거지..... (준혁에게) 애인 없죠?
준혁 : (본다)
태주 : 괜히 물어봤네. 당연한 걸 가지고.
준혁 : 넌 뭘 먹고 살아서 그렇게 속이 편하냐?
태주 : 가끔 마인드 컨트롤 하거든요. 정신 건강을 위해서.
혜린 : (웃는다)
태주 : 한번 해봐요, 신준혁씨도. 까칠한 세상이 훨씬 부드러워질테니까.
준혁 : (못마땅한 듯 태주를 본다)
태주 : 나이도 먹었는데 이제 그만 좀 합시다. 애들도 아니구.
준혁 : (기가 막힌 듯 피식 웃는다)
S#53. 동, 복도 / 엘리베이터
바에서 나와 걸어가는 세 사람.
혜린 : 우리 백화점 이벤트 담당자, 내일 당장 당신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
태주 : 뭐?
혜린 : 아무리 노는 물이 다르다지만 행여라도 백화점에서 당신 마주칠까 봐 싫거든.
태주 : 왜 또 갑자기 변덕이냐?
혜린 : 당신 만나는 거 망설였던 거 알아?
태주 : ?
혜린 : 이제는 괜찮겠다 싶었는데 만나보니 아니야. 아직 더 있어야겠어.
태주 : 무슨 말이야?
혜린 : 둔하기는. 아직도 설렌다구. 열받게시리. 그러니까 당신 얼굴 좀 안봐야겠다구.
태주 : !
혜린 : 백화점 오너로서 내리는 명령이니까 당장 담당자 바꿔. 알았지?
태주 : .....(쓴 웃음 짓는다)
엘리베이터 도착하는 신호음 들린다.
혜린 : 오빠 집에 올 때 연락하고 와.
준혁 : 응.
혜린 : (태주에게) 간다 그럼.
혜린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태주, 부드럽게 혜린의 손을 잡는다.
멈칫하는 혜린.
태주 : (다정하게 웃는) 잘 가. 잘 지내고.
혜린 : (태주를 보며) 네가 이러니까 자꾸 여자들이 꼬이는 거야. 조심 좀 해.
혜린, 태주의 손을 놓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준혁과 태주,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태주 : (준혁을 본다) 한 잔 더 할래요?
준혁 : (본다)
S#54. 다른 바
태주와 준혁. 태주, 준혁에게 술을 따라준다.
태주 : 미국에서 혼자 사는 거 심심하지 않아요?
준혁 : 별로.
태주 : 하긴, 사막에서도 혼자 잘 살게 생기긴 했어.
준혁 : (술 마신다) 혜린이랑은 왜 헤어진 거야?
태주 : 혜린이한테 못 할 짓이다 싶었어요. 좋은 사람 만나 얼마든지 사랑받고 살 애잖아요, 걔.
준혁 : .....
태주 : 그리구... 재벌 그거.. 겉에서 보기엔 휘황찬란하고 멋져 보이기만 했는데 속에 들어가 보니까 영, 내 취향이 아니더라구요.
너무 골치가 아파. 난 복잡한 건 딱 질색이거든요.
준혁 : .....
태주 : 은수랑은... 왜 헤어졌습니까.
준혁 : .....어거지로 끼워 맞춘 인연은 힘들다는 걸 알았어.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데 막막 하더라구. 내 욕심만 채울 순 없잖아.
태주 : .....
준혁 : 사람 부대끼고 사는 게 가장 힘든 거라는 걸 몰랐거든. 내가 오만했던 거지.
태주 : .....
준혁 : 너랑 은수씨... 다시 만났을 거라고 생각했어.
태주 : .....사랑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라.., 때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은수랑 나는... 그 때를 놓친 거구.
준혁 : 후회해?
태주 : (천천히 끄덕인다) 어리석었죠... 많이.
준혁 : 그래, 넌 어리석은 놈이야. 많이.
태주 : (본다)
준혁 : 지나가다 만나도 아는 척 하지 말라는 걸 곧이곧대로 믿었냐?
태주 : !
준혁 : 그건... 언제 어느 때, 어디서 보든지 자기를 알아봐달라는 거야... 이 멍청한 자식아.
태주 : ! (준혁을 본다)
준혁, 말없이 술을 마신다.
S#55. 도로 / 버스 안
생각에 잠겨 있는 태주.
은수(e) : 십년이 흐르고 이십년이 흘러도...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다 본다고 해도 아는 척도 하지 말아요, 우리.
태주, 쓸쓸한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본다.
S#56. 지수네 오피스텔 근처 거리 / 국밥집 앞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는 태주.
근처 국밥집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온다. 직원회식을 끝낸 듯한 분위기다.
태주,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그들 중 은수의 모습이 보이는 것.
태주의 얼어붙은 듯한 시선이 은수에게 박힌다.
은수,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헤어져 어디론가로 간다.
태주, 그 자리에 서서 망연히 그 모습을 보다가 언뜻 정신을 차리고 은수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잃은 듯 보이지 않던 은수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태주, 은수를 쫓는다.
S#57. 동, 근처 거리 / 버스정류장
은수를 쫓아왔지만 은수가 보이지 않는다.
태주, 체념하고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태주에게 다가온다.
태주, 고개 들어 보고 깜짝 놀란다. 은수가 서 있는 것.
잠시 말을 못 잇고 은수를 바라보기만 하는 태주.
태주 : 어...어떻게 이렇게 만나네.
은수 : 네.
태주 : .....
은수 : 근처에서 직원 회식이 있었어요.
태주 : 어...
은수 : .....
태주 : (씩 웃는다) 반갑다.
은수 : (웃으며 고개 끄덕인다)
태주 : 좋아 보이네. 나이도 더 먹은 거 같고.
은수 : 나이야 먹었으니까요.
태주 : 나이 들어 보인다는 건 아니고... 좋다구.
은수 : .....
태주 : 소식은 들었어. 서울에서 직장 다닌다는 거.
은수 : 나도 소식 들었어요. 이벤트 회사 한다면서요.
태주 : 응.
은수 : 잘 지내요?
태주 : 응..... 지수는 어때? 호영이 형 말이, 많이 건강해졌다면서?
은수 : 지금 수능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내년엔 대학 들어갈 거예요.
태주 : 많이 컸구나..... 어머니는?
은수 : 건강하세요. 군산에서 지금 미용실 해요. 아는 분이랑 같이.
태주 : 그래, 잘됐다..... 일하는 건 재밌어?
은수 : (끄덕)
태주 : 가족이랑 떨어져 혼자 살려면 좀 힘들겠네.
은수 : 별루요..... 아직도 거기 사나 봐요?
태주 : 어... 난 거기가 편하더라구. 다른 덴 가기가 싫어.
은수 : .....
태주 : 거기도 많이 좋아졌어. 이제 엘리베이터 고장 같은 건 안나.
은수 : (웃는다)
태주 : (웃는다)
두 사람,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 있다.
태주 :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은수 : 강태주씨두요.
태주 : ...(웃으며 장난스레) 데이트 하는 사람은 있어?
은수 : (웃는다)
태주 : 네가 은근히 남자가 좀 따르는 편이잖아. 겉보기랑 다르게.
은수 : 내 겉보기가 어떤데요?
태주 : 그렇게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지.
은수 : .....(살짝 째려본다)
태주 : 기분 나뻐?
은수 : 만나자고 하는 사람은 있어요.
태주 : ...(살짝 끄덕이며) 그럴 줄 알았어... 잘 생겼냐?
은수 : 강태주씨 보단 못하긴 한데... 괜찮은 편이에요.
태주 : (웃으며) 원래 나만큼 생기긴 힘든 거야.
은수 : (웃으며) 사귀는 사람 있어요?
태주 : 인기야 아직 여전한데... (픽 웃는) 솔직히 말하면 이제 나이가 먹었는지 그것도 신통치 않아. 진짜 아저씨가 됐나 봐.
은수 : .....
태주 : 한 번 꼭 보고 싶었어.
은수 : .....
태주 : 이렇게 봤으니 됐다.
은수 : 네.
은수, 도로를 돌아본다.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은수 : 저거 막찬데.
태주 : 어...
은수 : 타야 돼요.
태주 : 어.
버스가 가까이 다가온다.
은수 : 갈께요. (돌아서는데)
태주 : ...저기...
은수 : ?
태주 : 고마워.
은수 : .....
태주 : 처음이었어..... 그래서 많이 당황스럽고 서툴렀던 거 같아.
은수 : .....
태주 : (담담하게 웃으며) 정말 고마워..... 이 말만은...꼭 해주고 싶었어.
은수, 끄덕이며 돌아선다. 도착한 버스에 타는 은수.
버스가 떠날 때까지 태주, 그 자리에 서 있다.
버스가 떠난 후, 터벅터벅 걸어가는 태주.
S#58. 버스 안
자리에 앉는 은수. 담담하고 일상적인 얼굴이다.
잠시 후, 은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S#59. 지수네 오피스텔 근처 길
길을 걸어가는 태주.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슬며시 태주의 손을 잡는다. 보면 은수다.
<인터컷- 5부>
은수 : 남자랑 데이트하게 되면 꼭 하고 싶었어요.
태주의 손을 잡고 흔드는 은수.
태주, 걸음을 멈춘다. 쓸쓸하게 미소 짓는다.
S#60. 버스 안
은수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은수, 조금씩 흐느끼듯 얼굴이 일그러진다.
S#61. 국밥집
태주, 국밥을 먹고 있다.
은수(e) : (진지한) 키스.., 많이 해보셨겠네요?
태주, 앞을 보면
<인터컷-4부>
은수 : 우리 사귀죠. 사귀어요. 나랑.
태주,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인터컷-4부>
은수 : 아무리 생각해도..., 아저씨 말고는 키스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현재, 태주의 눈 앞에는 아무도 없다.
S#62. 버스 안
은수의 흐느낌 더욱 고조되어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은수, 슬프게 울고 있다.
S#63. 지수네 오피스텔 앞 길
입구로 향하는 태주. 누군가 태주의 손을 잡아챈다.
<인터컷- 5부>
태주에게 손이 잡힌 채로 시계추처럼 주변을 비틀대며 빙빙 도는 은수.
태주, 은수를 잡아끌자 마주보는 자세가 되는 두 사람.
은수의 얼굴은 어느 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태주 : 야...
은수 : 아저씨가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태주, 다시 보면 은수의 모습은 없다.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는 태주.
S#64. 지수네 오피스텔 복도 / 태주의 오피스텔 앞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태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간다.
커브를 돌아 가다가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서는 태주.
태주의 집 앞에 은수가 쪼그리고 앉아 잠들어 있는 것.
태주, 놀란 마음에 잠시 멍하니 보다가 은수에게 다가간다.
은수를 내려다보는 태주. 가슴이 울컥한다.
쪼그리고 앉아 고개 숙여 잠들어 있는 은수를 바라본다.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은수의 머리를 톡톡 친다.
은수, 반응 없다. 다시 한번 쳐봐도 무반응이다.
세 번째 톡톡 치자 은수, 부스스 잠이 깨는데
그런 은수를 내려다보면서 다정하게 미소 짓는 태주의 얼굴.
화면에는 태주의 얼굴만 보인다.
그 은수가 지금껏 만났던 추억 속의 은수인지 현실의 은수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첫댓글 대본 감사합니다..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 있었는데 기다리고 있어요.
http://naver.me/57NtJN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