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마술은, 어릴 적 천막극장 서커스를 보러 가면 구경하던 마술이 전부 이었다, 그때 이후 TV를 통해 간간히 마술을 접하면서도 마술이란?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보여 주는 손장난 눈속임 수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세계적인 마술사 ‘프란츠 하라리 일루전’은 일부러 찾아서 관람 했다기보다는 1961년에 ‘필리핀’ 기술자들에 의하여 지어져, 작년에 대 보수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마술 공연장 장충체육관 모습이 궁금하여, 선물 받은 티켓이 가져다 준 기쁨이요, 즐거움이었고 고정 관념을 깨트려 준 시간 이었다.
프란츠 하라리(Franz Harary)는 1962년생으로 전 세계 공연 퍼포머(Performer:연예인) 중 기네스북에 최고의 수상자로 등재되어 있고, 올해의 일루져니스트상을 받은 미국인 마술사 이다. 신체분리와 시공간을 초월 하는 고난도의 탈출 마술쇼를 보여주며, 마이클 잭슨의 무대 연출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날 무대에도, 이때 마이클 잭슨을 무대 위 아주 좁은 닫힌 공간에 가둔 후 수많은 창에 찔리게 하였지만 어디 한군데 다친데 없이 환생 시킨 마술 도구를 가져와 본인이 직접 무대에서 시연으로 보여 주었다.
무대 전면 커다란 스크린과 좌우에 설치한 대형 CCTV 화면에는 “NASA의 우주왕복선,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런던브릿지,”를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지게 했던 ‘프란츠하라리’의 마술쇼 영상이 펼쳐지며 시작을 알렸다. 쉬지 않고 변하는 화려한 조명과 환상 속으로 빨아드리는 거대한 영상, 이 영상을 하나의 도구로 더 하여 극대화 시키는 마술쇼에 몰입하여 희열을 느끼게 하는 거대한 포퍼먼스(performance)가 약 2시간 정도 펼쳐졌지만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하였고, 감탄과 감동을 연속적으로 터트리게 하였다.
우주선 같은 캡슐에 5명의 미녀를 태운 후 공중으로 끌어 올린 후 몇 바퀴 회전 시켜 열어보니 미녀들은 사라져 버리고 빈 캡슐뿐이었고, 사각 철제 상자에 ‘프란츠하라리’ 자신이 갇힌 채 구멍을 통해 두 팔을 밖으로 뻗어 쇠사슬로 묶은 후 열쇠를 채운 상태로 공중으로 끌어 올려 허공에 띄어놓자, 스스로 쇠사슬을 풀어 손을 상자 안으로 가져가자 상자는 한쪽이 부서지며 발이 노출 되어 허우적거리며 외마디 비명은 이어지고 상자가 완전히 부서졌는데 ‘프란츠하라리’는 공간이동을 하여 객석 맨 뒤에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서 있었다.
객석의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내, 베드(bed)에 눕힌 후 베드를 받치고 있던 구조물을 제거 하자, 베드는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고 ‘프란츠 하라리’ 손동작에 따라 베드가 서서히 공중 부양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감탄사를 내뱉게 했다. 좁고 긴 상자 안에 사람을 눕혀 놓고 날렵하고 넓적한 칼로 상자 위에서 아래로 여러 칸을 만들며 절단 한 후 도막내 길게 늘어 트려는데, 도막난 상자를 다시 합쳐 칼을 빼내자, 상자 속의 사람은 말짱하게 살아 있는 등, 지금 까지 알고 있던 무대 위 작은 마술이 아니라 거대하고 화려하며 상상을 뛰어 넘는 판타스틱(fantastic)한 놀라움 이었다.
게스트로 함께 출연하여 각각 독립된 마술을 펼쳐 보인, 독일인 마술사 ‘티모마크(TIMO MARC)’는 작은 보드(board)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 보드 안에서 글씨가 저절로 움직이고 나비는 날아 다녔으며, 글씨와 그림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글씨는 형체를 이루었고, 나뭇잎은 수 없이 낙엽처럼 떨어졌다. 일본인 여성 마술사 마유코(MAYUKO)는 어릴 때 보았던 핑퐁 마술을 더 업그레드(upgrade)하여 눈을 호강시켜 주었으며, 세계 여러 마술대회에서 최연소로 1등을 한 한국마술사 ‘한설희’는 CD의 색깔을 변하게 하고, 크기를 줄였다 키우고, 그의 손이 스치는 곳마다 CD가 나타났으며, 두 손 깍지를 끼고 벌리기만 하는 쏟아지는 CD를 셀 수 없게 하여 마술의 궁금증을 넘어 신비롭게 하였다.
서커스 공연장에서 마술을 처음 구경하고 50년 넘는 세월이 지나 직접 체험한 ‘프란츠 하라리’마술은 그동안의 긴 세월만큼 변화하고 진보 되어 있었으며, 마술의 세계가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 과학이며 최고의 기술의 집합체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사실 같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달게 해 주었다. 또한 눈앞에서 벌어진 사실이 거짓이라는 걸 알지만 속으면서도 밝혀내지 못하는 허전함이 밀려드는 씁쓸함도 여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