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 장단에 영혼을 담다
김영화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한여름이다. 아침부터 카톡이 울린다. 부산시민 회관에서 108회 “한국의 명인 명무전”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진도북춤, 교방굿거리, 살풀이, 지전춤, 태평무, 전통춤이 소개되었다.
가슴이 설랬다. 십여 년 전, ‘명인 명무전’을 보고 기회가 있으면 꼭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본 그날의 무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진중하고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명무들의 춤사위는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웠던가. 잔잔하던 가슴에 환희심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내 마음은 일곱 빛깔의 무지개로 채색 되었고 우리 전통예술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 한국무용반이 있었다. 평소 관심이 있어 배우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웃 사람들과 노래방에 갔는데,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영화씨, 끼가 있어 보이네, 무용 한 번 배워봐.” 그 말에 용기를 내어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긴치마를 입고 하얀 버선을 신는 게 어색했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하나, 둘, 셋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 한발 한발 동작을 익혀 나갔다. 발뒤꿈치부터 걸어가며 무릎을 굴신하는 것도 적응이 안 되었고, 단순하게 보이는 팔 동작도 쉬운 게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빙그르르 도는 동작이 많아 중심이 잡히지 않아서 휘청거리기도 했다. 하루라도 결석을 하면 따라잡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도 민요가락에 몸을 실으면 흥도 나고 재미가 있었다.
국악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다. 마침 이웃에 무용반 선배가 있어 함께 다니곤 했다. 어찌나 춤을 좋아하는지 그를, 단원들은 춤실이라고 불렀다. 좋은 공연이 있으면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까지 올라가는 열정파였다. 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며, 전통무용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느 날, 부산시립무용단 공연을 보고 집으로 오는 날이었다. 형형색색의 무용복을 입은 단원들이 얼마나 예쁜지 눈에 계속 삼삼거렸다. 살을 에이는 겨울 날씨인데도 추운 줄 몰랐다.
“형님, 오늘 시립단원들 춤 참 잘 추지요, 나는 살풀이 추던 사람이 제일 잘하는 것 같데요.”
내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직 멀었어~~ 아직도, 마이~~ 닦아야 돼.”
선배는 늘 그렇게 말했다. 같이 공연을 많이 봤지만 한 번도 칭찬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만하면 잘 하더마는 그럼 얼만큼해야 잘 하는건가, 자기는 얼마나 잘한다고 참말로 욕심도 많네.’
어느 날, 무용선생님께서 티켓을 가져오셨다.
“이 공연은 꼭 봐야 합니다. 일부러라도 봐야 하는 공연입니다.”
평소 같지 않게 강력하게 권유하셨다. 그래서 본 공연이 ‘명인 명무전’이었다. 나름으로 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명인 명무들의 무대는 처음이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명의 인간문화재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엄옥자의 살풀이, 박경랑의 교방굿거리춤, 김진홍의 한량무, 강선영의 태평무, 우리 전통춤의 정수들이 무대에 올려졌다.
살풀이 춤이 시작되었다. 구슬픈 장단이 흘러 나온다. 영혼을 울리는 절절한 가락에 몸을 싣고, 하얀 발 사뿐히 천년의 세월을 딛는다, 어디 갔다 지금에야 오셨는가. 동백기름 바른 고운 쪽머리, 은비녀 단장하고, 백옥 같은 치마저고리, 자주색 옷고름, 청아한 옷 맵씨가 곱기도 하다. 하얀 명주 수건 어깨에 드리우고, 덩기덕, 쿵, 덕, 장단에 영혼을 싣는다. 때로는 어르고 때로는 뿌리치며 한이 가득 찬 슬픔을 춤으로 승화한다. 가슴을 저미는 살풀이장단이 더해진, 아름답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겹겹의 춤사위는,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 고요가 어우러져 예술의 극치를 보여 준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은 숙연하다. 무대와 관객이 한 마음이 되었다. 죽은 영혼도 살아 있는 사람도 하나 된 듯하다.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옆의 선배도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직 멀었다’는 선배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춤이라고 다 같은 춤이 아니었다. 영혼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마음의 정화를 이끌어 내고 예술적 미감을 전달한다. 평생을 바쳐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른 명무들의 춤사위는 얼마나 위대한가.
무용을 십 년 정도 했다. 한량무, 살풀이, 교방굿거리를 배웠지만, 늦게 시작한 춤은 욕심만큼 느는 것도 아니었다. 의욕만 앞선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예술의 길은 멀고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용을 감상하는 능력은 생긴 것 같다. 우리전통 예술을 자주 대하면서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도 배웠다.
다시, 그날의 감동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