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라이벌: *청규
6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서울에서 터를 잡고 살던 2째 매형이
막내 처남인 내가 공부도 잘하니 서울 중학교에 시험을 치라고 해서
배재중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물론 불합격 이었다.
2차로 대광중학교에도 낙방하였다.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나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 수는 있었다.
용인 태성중학교 에서는 무시험으로 입학을 허락했지만
매형의 반대로 본의 아니게 재수를 하게 되었다.
홀로 계신 어머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며 재수 아닌 재수를 했다.
오히려 1년을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편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농사일이 끝난 후 마을회관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당시 배운 것은 사자성어 위주였고 간단한 명심보감이나 채근담 구절이었는데
나에겐 재미가 있어 열심히 배웠다.
9월경 어머니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시고 서울로 이사를 결행하셨고
둘째 누이가 살고 있는 장위동 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거의 공부를 못한 나를 매형은 동네 학원에 보내
2개월 과외 공부를 하였는데 실력이 괜찮다며
원장은 용산고에 접수를 시켰는데 불합격 통지를 받고
2차로 덕수중 2부(야간)에 합격하였다.
1학년이 6반으로 구성되었는데 덕수중학교 에서도 주판을 배웠다.
1달쯤 지난 후 내 옆에 앉은 친구가 엄청나게 주판을 잘 놓고 암산도 잘 했다.
물어보니 금호국민학교 때부터 주판을 놓았고
현재 실력은 주판과 암산이 1급이라고 하였다.
그 때부터 그 아이를 따라잡아야 겠다는 불타는 경쟁심이 발동하여
주산반에 가입하여 시간만 나면 주판을 놓고 그를 따라잡으려 하였다.
경쟁은 주판만이 아니라 일반 공부에서도 시작되어
1학기 중간고사에서만 많이 뒤지고 계속된 시험에서 1,2등을 다투게 되었으며
1학년 끝날 때 나도 주산 1급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청규는 2단으로 앞서 나갔다.
2학년 때는 반이 갈려 직접 공부대결은 없었고
전교 석차로 간접 비교하게 되었지만,
주판만은 주산반에서 계속 경쟁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를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공부을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내가 덕수상고로 진학한 반면,
청규가 인문학교인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대 고고학과에 입학,
현재는 고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유**선생님을 모시는 스승의 날 모임에서 자주 만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에 목숨을 건 중학교 생활이었던 것 같다.
덕수중 2부 학생들은 대부분 머리는 좋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 2시부터 공부를 했다.
나도 물론 새벽에 조간신문도 돌리고 주말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을 가르치며 중학교 학창생활을 했다.
그 때는 내 환경에 대해 어렵다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생활했던 것 같다.
다만 사춘기에 다른 학생들이 하교할 때 등교하는 것이
여학생들에게 부끄러워 하교시간 전에 학교에 등교해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라이벌(rival) 이라는 어원을 보면
강을 의미하는 리버(river )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부족은
같은 강물을 마시고 같은 강물로 농사를 짓고,
또 같은 공간에서 고기잡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뭄이 들어 강바닥이 갈라지면
서로가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라이벌이란 경쟁자이면서도 서로 도와야 하는 공동운명체다.
세상을 살다보면 원하든,원하지 않든 라이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라이벌과 이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라이벌과 경쟁이 버거워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두렵기도 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기도 한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다.
나 자신에게 자극을 주고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에…
그러나 진정한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바로 그것이 진정한 라이벌 의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