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리산은 고을 (보은 현) 동쪽 44리에 있다. 봉우리 아홉이 뾰죽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 이라고도 한다. 산마루에 문장대가 있는데, 층이 쌓인 것이 천연으로 이루어져 높게 공중에 솟았고,그 높이가 몇길인지 알지 못한다.그 넓이는 사람 3천명이 앉을만하고 대위에 구덩이가 가마솥만한 것이 있어 그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줄지않고 비가와도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줄기로 나뉘어서 반공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또 한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으로 들어간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은속리산 문장대에서 흘러내리는 세가닥의 물에 관해서 적었다. 예로부터 이 물은 '속리산 삼파수'라하여 좋은 물의 으뜸으로 일컬어져 왔다. 여말 선초의 문신 이 행은 달밤에 술통을 실은 소를 타고 산수를 노닐어 기우자 라는 호를 얻은 사람인데, 충주 달천의 물맛을 으뜸으로 치고 속리산 삼파수를 그다음 으로 꼽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 적힌 바와 같이 달천 역시 속리산 삼파수의 한 가닥이니 속리산 삼파수야 말로 우리나라 좋은 물의 으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 오대산 우통수
"오대산에는 서대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곧 한강의 근원이다.
물 빛깔과 맛이 딴 물보다 훌륭하고 물을 삼가함도 또한 그러하니 우통수(于 水)라 한다.
서쪽으로 수백리를 흘러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한강은 비록 여러곳에서 흐르는 물이 모인 것이나 우통물이 복판줄기가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은 중국에 양자강이 있는 것과 같으니 한강이라는 명칭도 이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기록이다.
그 옛날 사람들은 그 높은 오대산 중턱 한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실오리같은 물줄기를 찾아내고 헬리콥터도 없던 시절에 그것이 흘러가는 수백리 길을 탐색해 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우통수가 한강의 복판줄기가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이 물장수가 길어오는 한양물을 사서 먹었는데 강물의 가장 한복판 중간에 흐르는 물을 '한중수'라고 하여 다른 물보다 세배나 비싸게 쳤다고 한다.
□ 백두대간의 중추 태백산 꼭대기 '용정수'
태백은 한밝이니 대광명이다. 태백산은 한반도의 요추인 백두대간의 중추에 우뚝 솟아 반도 이남의 산맥을 거느리고 강하를 발원하니 우리국토의 뿌리다. 태백의 검용수는 한강의 근원으로 반도 중서와 수도 서울의 젖줄을 이루고, 천황(황지)은 낙동강의 원천으로 반도남부의 생명수를 이룬다.
'태백산 비문'에 적혀있는 글이다. 태백산 꼭대기로부터 67m 아래인 1,500m 지점에 있는 산샘(山井)으로서 가뭄과 장마에도 수량에 변화가 없다. 이 샘물은 전혀 오염될 염려가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최고급 생수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자연보호협회의 '한국의 명수 100선'중 뛰어난 물로 선정.
□ 다산의 숨소리 다산초당 '약천'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 해남 두륜산 대둔사 일지암과 함께 우리 차(茶)의 성지이다.
다산초당은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뒷산(다산)에 깃들여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귀양살이를 하며 그의 학문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은 '목민심서' '경세유표'의 저서를 남긴 큰 학자로 실학사상의 거두라 할 수 있다. 산에 차나무가 많아서 '다산'이 되었고, 정약용의 호까지 '다산'이 되었다.
정다산은 이곳에서 소나무 숯불에 차를 끓여 마시면서 일지암의 초의 선사와 실사구시를 논했다.
□ 초의 선사가 자랑한 대둔사 일지암 '유천'
초의선사(1786∼1866)와 정약용(1762∼1836), 당대의 두 선승, 거학이 차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과 평정을 지키며 학문의 깊이를 일궈어 갔다.
초의는 다도에 대해 '동다송'에서 "차잎을 따는데 그 묘를 다하고, 만드는데 그 정을 다하고, 물은 진수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을 얻으면 체( )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 할 것이다"라고 했다.
빛깔, 냄새, 맛의 3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차는 잎따는 시기, 물과 불의 선택, 우려내는 방법들이 매우 중요하다. 물은 차의 몸이다. 차인들은 물맛의 우열을 평하곤 했는데 이를 '품천'(品泉)이라고 했다. 초의는 좋은 물의 여덟가지 덕으로 가볍고, 맑고, 차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또 급히 흐르는 물과 고여있는 물은 좋지 않으며 맛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유천'의 물은 초의의 말대로 여덟가지 덕을 그대로 갖췄다.
□ 덕숭산 수덕사 정혜사 '돌샘물'
국토의 등줄기 태백산이 국토의 반쪽을 가르며 차령산맥을 만들고 비산비야 내포땅에 지맥을 뻗어 우뚝 솟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덕숭산이었다.
덕숭산은 조선말에 스러져가던 한국 선종(禪宗)을 일으킨 경허·만공스님 등 큰 스님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고 문인 김일엽 스님의 거처 '환희대'가 있는 곳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거쳐 돌계단을 따라 정상을 향하면 최정상 사찰 정혜사에 다다르게 되는데 6백고지의 돌사이에서 나오는 돌샘물이 세속의 번뇌를 씻어준다. 돌샘물이 고이는 돌항아리는 60년전쯤 만공스님이 산허리의 큰 바위를 깍아 만든 석조이다. 이 약수를 덮고 있는 보호각에는 '부처님의 젖'이라는 뜻의 불유(佛乳)각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 보림사 약수
- 장흥 보림사는 동양 3보림 중의 하나로서 신라 선문구산 가운데 제일 먼저 문을 연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이었다. 이절은 체징에 의해 860년에창건되었고, 그 뒤 오랜 세월 중창과 중수를 거쳐 6 .25전까지는 20여동의전각을 갖춘 큰절이었다. 그러나 6 .25때 공산당 유격대들이 이 절을 본거지로 삼다가 도주하면서 불을 질러 국보 204호였던 대웅전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천왕문과 사천왕, 외호문만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대웅전은 1984년에 복원돼 옛 대웅전에 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 어찌됐든 동양 3보림중의 하나였으며 그규모와 법맥으로 이름을 떨쳤던 보림사는 오늘날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림사의 옛 자존심을 지켜주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 것은 절마당 한가운데서 펑펑 솟는 샘물이다.
- 이제는 '보림사' 보다는 '보림사 약수' 란 말이 사람들의 발길을 더 끄는 요소가 되었다. 이 샘물은 어느 절물과는 달리 마당 한가운데 얕은 땅속에서 수량이 늘 일정하게 솟고 있다.
말하자면 지맥에서 솟는 샘이어서 좋은 물중의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세월의 변화에 아랑곳 않고 천년이 넘게 늘 한결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그 물줄기는 보림사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물에 입을 대는 사람들은 세월의 켜켜에서 역시 이 물로 정신을 일궜던 수많은 고승.명승들과 생명줄이 닿아 있음을 느껴볼 만하다.
- 보림사 약수는 절물로는 드물게 80년대초 한국자연보호협회에 의해 '한국의 명수'로 지정됐다. 좋은 샘물이 다 그렇듯 보림사 약수는 가뭄에 마르거나 장마에 넘치는 법이 없고 한모금만 마셔도 온 몸이 개운해지는가 하면 겨울에는 김이 난다. 혀끝을 쏜다거나 별난 맛을 내는 것이 아니므로 '약수'보다는 그냥 '샘물' 또는 '생수'라고 해야 옳다
- 광주 ↔ 장흥 간의 직행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장흥읍에서 보림사까지 군내버스로 25분 소요. 보림사 앞 숙박단지에 '푸른산장'과 '가지산장' 등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 방아다리 약수
- 위치 : 강원도 평창군 진부령 척척리
- 영동고속도로 하진부 버스정류장에서 북쪽으로 12에 있는 이 약수터는 조선의 숙종조 이래 역
사 깊은 약수터로서 약수에는 탄산, 철분 등 30여종의 무기질이 들어있어 속병에 특효가 있다.
강원도 평창군 하진부에서 북쪽으로 12㎞ 되는 곳. 이조 숙종 때 발견된 탄산약수터이다. 철분이 섞여있다.
□ 화암약수(畵岩藥水)
강원도 정선 동면 면사무소에서 서남 1.2㎞지점에 있다. 입구의 강변에 용마소, 거북바위(뒷면에 귀암사 절터가 있다) 등의 명소가 있고, 도중에 독수리바위, 삼신바위 등의 기암절벽이 이채롭다. 약수는 동자바위 암벽 밑에 있다. 철분이 섞인 탄산수이다.
숙박시설 : 옥산장여관(정선군 북면 여량리 149-30) ☎ (0398) 62-0739, 0547
□ 미천골 불바라기 약수
강원도 양양군 서면 미천골에 있는 불바라기 약수는 우리나라의 약수나 샘물 가운데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이다. 불바라기 약수는 폭포가 떨어지는 바위절벽 중간의 작은 구멍에서 실오라기처럼 흘러내린다. 오랜 가뭄이나 땡볕에도 마르지 않고 불바라기 약수는 실낱처럼 호흡한다. 불바라기 약수는 예로부터 심마니들 사이에 '신령스런 물'로 여겨져 왔다. 산에 오르기 앞서 심마니들은 산삼 캐는 일보다 어렵게 불바라기에 올라 물을 마시는 일로 몸을 정갈히하고 운을 빌었다. 우리나라 약수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품고 있어 톡 쏘는 맛이 제일이다.
찾아가는 길 : 양양에서 시내버스가 하루 4번 황이까지 간다. 황이에서 내려서 걸어간다. 황이에서 민박 가능 ☎ (0396) 671-7980
□ 등명 낙가사(洛伽寺) 약수
강원도 강릉 동남쪽 14㎞지점, 화비령(花飛嶺)동쪽 기슭 괘방산 중턱에 낙가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에 있는 오층석탑(강원도유형문화재 37호) 바로 앞에 약수가 있다. 최근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영산전에 오백나한을 봉안한 뒤 발견되었다 한다. 이 약수의 물맛은 신맛과 떪은맛이 함께 느껴지고 아무리 오래 두어도 물이 썩지 않는다고 한다. 등명낙가사는 동해시와 강릉시의 중간에 있어서 두타산 무릉계곡과 경포대 등을 둘러볼 만하다.
찾아가는 길 : 강릉에서 정동진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정동진에서 약수터까지 걸어서 10분 걸린다.
□ 삼봉약수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는 삼봉약수는 가칠봉(1,240m)아래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탄산약수이다. 가칠봉을 중심으로 좌봉인 응봉산(1,000m), 우봉인 사삼봉(1,170m) 등 3개 봉우리의 정기가 한 곳에 모였다는 뜻에서 유래된다. 불소이온이 많이 들어 있어 잇몸질환에 좋다고 한다. 약수를 그릇에 담가 놓으면 사이다처럼 공기방울이 올라오며 하루가 지나기 전에 붉게 변한다. 이 물로 밥을 지으면 파랗게 찰기를 띤다.
찾아가는 길 : 승용차로 홍천-어론-서석-율전리를 거쳐 양양으로 가는 국도로 가는 방법과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속사에서 좌회전해서 가다가 내면에서 청도행 56번 국도 양양가는 길로 가면된다. 주위에 있는 삼봉휴양림 안에는 야영장, 산막, 산장 등 숙박시설과 취사장,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0336)33-7705, (0371)42-4689
□ 영월 치랭이 약수
강원도 남단에 위치한 영월은 깊고 맑은 물굽이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오대산 정선 평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산굽이는 영월에 이르러 청령포라는 절경을 이루어 놓았다. 영월 치랭이골에 있는 치랭이 약수는 물의 질을 말해주는 전설이 있다. 옛날 슬하에 일곱자매를 둔 촌부가 이물을 생활용수로 썼다. 물이 좋아서 자식들이 모두 절세가인으로 성장해 좋은 배필을 만나 잘 살았다. 그래서 이 계곡을 '칠랑(七娘)이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영월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약수가 많다. 특히 지질이 주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물이 알칼리성이다. 영월에서 태백시쪽으로 나가는 국도변 오른쪽에 '약물내기', 동면 이목리에 '설영샘터', 덕포리에 있는 '큰골샘터' 등이 있다.
□ 민속주 빚는 샘물
'사삼주' 익어가는 낙안읍성
전남 승주군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에서 옛고을의 모습이 잘남아 있는 곳이다. 주위 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산과들에서 나는 더덕으로 만든 낙안읍성 사삼주(沙蔘酎)는 예로부터 전남지방의 토속주이다.
사삼주는 찹쌀 한말을 고들고들한 고두밥으로 쪄서 400리터 크기의 그릇에 담고 누룩 3㎏과 물 한말을 배합한 뒤 사흘동안 밑술을 담근다. 2차로 쌀 한말로 구두밥을 지어 물 너말과 함께 덧올린다. 여기에 더덕 20㎏을 잘 썰어넣고 섭씨20도에서 열흘동안 익히면 더덕 빛깔을 띤 사삼주가 우러난다. 예로부터 더덕은 거담과 간장에 약효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산모시 다듬고 '소곡주' 맛들이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한산모시'로 유명한 곳이다. 잠자리 날개같은 한산모시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빛깔 또한 기품있는 선비나 순박한 우리네 어머니처럼 보이는 흰색이다.
한산소곡주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된 뒤 백제유민들이 지금의 한산땅인 주류성에서 나라잃은 한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술이다.
한산소곡주는 <동국세시기>를 비롯한 옛문헌에 '술 중의 으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번 앉아서 마시다보면 그 맛에 취해서 일어날 줄 모른다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 불린다.
소곡주는 막걸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누룩을 온돌 아랫목에서 20여일간 뜨게 한 뒤 이틀정도 밤이슬을 맞혀 냄새를 없앤다. 이 누룩을 물에 담가 효소추출액을 만들고 여기에 묽은 멥쌀죽을 섞어 큰 독에 담고 엿기름 가루 3홉, 말린 들국화 한웅큼, 익은 고추 10개, 생강 10뿌리를 넣고 창호지로 독 입을 봉한 뒤 뚜껑을 덮고 석달 열흘간 익힌다.
소곡주는 그 빛이 샛노랗고 향긋하고 은은한 향기 혀끝을 감돈다.
경주 최부자집 교동법주
교동법주는 '경주 최부자집 가양주'로 전해 내려오는 술이다.
교동법주는 궁중술이라 불렸는데 조선 숙종때 경주최씨의 선대가 궁중의 간장, 된장 담그는 일을 맡은 사옹원의 관리로 일하면서 술 빚는 법을 집안에 전승시켰다고 한다.
교동법주는 찹쌀과 밀로 만든 누룩, 그리고 뜨락의 샘물로 만드는데 특히 이 샘물맛이 술맛을 좌우한다고 한다.
먼저 고두밥 분량의 10분의 1만큼 참쌀죽을 쑤어 누룩과 섞어서 7∼10일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여기에 찹쌀 고두밥을 말려서 섞은 뒤 석달 열흘정도 익혀내면 법주가 돼 나온다.
김천 과하천, '과하주'
경북 김천에서 나는 과하주(過夏酒)는 우리 민속주 가운데 물과 깊은 인연을 갖는 술이다. 과하주는 그 이름 자체가 과하천의 물로 빚어져 독특한 향취와 색깔을 내기 때문이다. 과학천은 임진왜란때 이 땅에 들어왔던 명나라 이영송이 이 샘물을 마시고 물맛이 뛰어난 중국 금릉의 과하천 물맛과 같다고 감탄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과하주는 과하천 샘물 10리터, 누룩 서되, 참쌀 1되의 배합비율로 빚는다. 우선 찹쌀을 샘물에 담갔다가 하루 뒤 건져내 고두밥을 찐다. 짚위에 쑥과 국화를 깔고 그 위에 고두밥을 넣어 잘 식힌다. 이 고두밥을 이틀간 누룩가루를 우려낸 샘물에 버무려 떡을 만든다. 이 떡을 독에 담고 창호지로 주둥이를 막아 붙여서 석달간 익힌 뒤 청주채 뜸질하면 과하주가 나온다.
해남 덕정마을 '진양주'
전남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에서 나는 진양주가 해남에 전해지게 된 것은 헌종때 궁중술을 빚던 궁녀가 폐출된 뒤 사간원 벼슬아치의 소실로 들어와 본처의 손녀에게 술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해남 덕정리에 시집온 손녀로부터 몇단계를 거쳐 비법이 전수되었다 한다.
진양주는 덕정마을의 샘물로 담가야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꿀처럼 끈적끈적한 맛이나고 과음해도 뒤 끝이 깨끗하다.
효심 단긴 충남 당진 '두견주'
충남 당진의 면천 두견주는 은은한 향취와 맛뿐만 아니라 효심지극한 효녀에 관한 전설을 담고 있다.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인 복지겸이 불치의 병이들자 15살난 딸 애랑이 아미산 봉우리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리던 중 마지막날에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아미산 진달래꽃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백일 뒤에 마시게 하고 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 정성을 들이면 아버지의 병이 나으리라...."
이로부터 1천년의 역사를 갖게되는 두견주는 1963년 곡주제조 금지조치이후 최근에 다시 빛을 보게 된다.
두견주의 독특한 맛은 다른 민속주와 마찬가지로 제조과정의 정성에서 우러난다.
먼저 찹쌀 1㎏을 잘쪄서 말린 고두밥에 누룩 300g과 안샘물 1리터를 섞어 1주일정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그 다음 다시 찹쌀 고두밥 1㎏, 누룩 300g, 안샘물 6리터에 4월∼5월 아미산 진달래꽃을 따다가 수술을 떼어내고 그늘에 일주일동안 말린 꽃잎 300g을 섞어 덧술을 만들어서 밑술과 섞는다.
이것을 섭씨 25도에서 50∼70일 익힌 뒤 걸러 그릇에 담고 20∼30일정도 익히면 두견주가 된다.
첫댓글 우와.. 여기서 마셔 본 물이 얼마나 될라나..
부곡온천은 아주 어릴 때 가본것 같고... 다른 곳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