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서 평교사로 아름답게 늙어간 어떤 남교사가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립학교에 아주 오래 전에 정년 퇴직한 영어과 노교사이다. 땅딸막한 체구에 하얀 피부, 크고 단단하고도 큰 대머리, 안경을 끼셨다. 그 당시 나는 30대 초반의 나이였고, 그 분은 정년을 몇 년 앞 둔 60대 초반이었다. 그 분은 특이한 습관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코 안을 후빌 때 손가락을 흔히 사용한다. 그래서 온갖 것을 만진 손과 손톱을 통해 더러운 균이 들어가 코와 관련된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그는 화장지를 똘똘 뭉쳐서 코 안으로 밀어 넣고 빙빙 돌리면서 닦아내고 뽑아 버리기를 서너 번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 똘똘 뭉쳐진 하얀 화장지가 콧구멍 안을 서너 번 들어갔다 나왔다하면서 콧망울이 울퉁불퉁 움직여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게 느껴졌었지만 그러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왠 일일까? 내가 늙어가면서 그 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도 그 분처럼 늙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오늘날에 와서 비로소 감지한 것은 그의 특이한 건강관리의 한 모습에서 청결한 삶의 태도와 방식을 유추한 것이다. 그는 멋진 생활인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잡담을 피하고 쓸데없이 이석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자리에서 독서를 하셨다. 주변의 젊은 교사들과 담소하실 때는 거리감도, 소외감도 초월하시고 진실하고, 유익하고, 미래지향적인 화제거리로 유쾌히 대응하시면서도 그 도를 지나치시는 법이 없었다. 학교를 관리하는 교장,교감이 되지 못하여도 마치 직장 상사를 오징어 씹듯 하지 않았고, 동료 교사를 험담하지 않았으며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퇴근 시간을 엄수하시고, 퇴직 즈음의 누수 현상인 적당주의, 실의에 찬 근무 태도, 귄위의식을 가진 편익 추구를 하지 않고 언제나 밝고, 명랑하시고 천진하신 표정으로 생활하셨다.
내 나이 50대 초반, 언제부터인지 아주 쪼끄만 아이를 보기만 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르면서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자연을 대하면 자연이 나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을 느끼며 자연이 곧 음악이며, 미술이며, 문학인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냉장고와 캐비넷 문을 열어 놓고는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잦아졌다. 이 같은 노화 현상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뭐니뭐니해도 수많은 타인에게서 “머리가 희였군요!.”하고 수없이 받는 인사말에 기(氣)가 꺾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늙음, 그 자체를 소중히 인식해야 할 것 같다.
늙음의 미학, 바로 풍부한 감성을 선물 받는다. 나무에서 숲을, 바다에서 우주를, 어린아이에게서 인생을 읽어내는 놀라운 감성이 생긴다. 또한 늙음의 미학은 관조이며, 달관이고 관용이다. 늙었기에 더 어리석어지고, 더 탐욕스러워지고, 화를 더 잘 내기 쉽고 더 속물스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관조의 능력과 달관의 안목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또한 관용을 통해서 평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늙음의 특권이다.
이렇듯 ‘늙음’은 살아온 생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발을 디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확인 수단이 된다. 허옇게 희어진 머리털을 비쳐주는 거울처럼, 내 인생을 반사해 주는 늙음, 그 늙음이 주는 비애와 절망, 한탄을 수용하고 풍부한 감성으로 관조하며 달관하고 평화를 구가한다면 앞으로의 남은 여생이 한결 품위와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이형기 님의 시 ‘낙화(洛花)’에서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고 사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평생 화두로 삼아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