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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제작 / 국내미개봉 / 115분 / 미성년자관람불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샘 페킨파
출연 : 제임스 코번 &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 밥 딜런
'폭력의 피카소'라 불리는 거장 샘 페킨파 감독의 연출과 제임스 코번,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빛나는 명연기
무법자 빌리 더 키드와 보안관 팻 가렛의 숙명적인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비극적 종말
전설적인 포크 가수 밥 딜런의 명곡 'Knockin’ on Heaven’s Door'
1881년 미국의 뉴멕시코주. 당대의 카우보이 빌리 더 키드와 팻 가렛은 나이 차이는 많지만 막역한 친구 사이다. 빌리는 팻을 따르고 팻은 빌리를 아낀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지금 악화일로에 있다. 빌리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자유롭고 다소 방탕하기까지 한 총잡이의 삶에 만족한다. 반면에 팻은 변했다. 그는 거대 지주의 앞잡이에 불과한 허수아비 보안관으로 전락했고 또 한편으로는 나이를 의식한 나머지 안정적인 삶에 기대고 싶어 한다.
별안간 빌리와 팻의 관계는 동지에서 적으로 변모한다. 지주들의 명령에 따라 팻은 빌리를 마을에서 내쫓아야만 하고 빌리는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팻에게 체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빌리. 둘의 관계는 마침내 비극적 결말을 향해 간다.
작품 해설
1. 서부극의 대가, 샘 페킨파 감독
1925년생 샘 페킨파는 2차대전 발발과 동시에 해병대에 입대해 전쟁에 출정했고 돌아와서는 방송 및 영화계에 몸담기 시작했다. 영화감독으로는 〈데들리 컴퍼니온〉(1961)을 연출하면서 데뷔했다. 1971년에 연출한 불안증적인 심리극 〈어둠 속의 표적〉으로 흥행사의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페킨파는 그의 영화 인생 내내 비난받는 동시에 찬사받기를 거듭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영화 속 폭력성이 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점이 바로 그의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심지어 페킨파의 별명은 ‘블러디 샘’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참한 폭력 장면들로 당대의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얻은 별명이다. 그의 대표적인 서부극 〈와일드 번치〉는 “영화 사상 가장 폭력적이며 잔인한 서부극”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피의 잔치를 벌이는 서부극만 만들었던 건 아니다. 관객이 〈와일드 번치〉처럼 피의 영화를 기대하고 있을 때 그는 보기 좋게 배반하며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1970)와 같은 느슨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서부극을 만들었다. 일찍이 페킨파가 만든 첫 번째 서부극 〈대평원〉(1962)도 사실은 자신들의 전성기를 지난 늙은 총잡이들의 말년에 관한 서정적 분위기로 가득한 영화였다. 서부 시대가 아닌 동시대의 별 볼 일 없는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한 〈주니어 보너〉(1972)의 경우, 개봉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 뛰어난 서정성과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몇몇 눈 밝은 평자에 의해서는 이미 걸작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페킨파는 범죄극, 서부극, 전쟁영화까지 다양하게 연출했는데 그중에서도 〈관계의 종말〉을 포함한 일련의 서부극들이 그의 영화적 진수를 보여준 작품으로 지금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페킨파는 남들보다 힘든 말년을 보냈다. 영화에 뛰어든 이후로는 줄곧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마찰을 겪었고,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정신이상 증세 등으로 험난한 개인사를 살기도 했던 이 반골의 사나이는 59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2. ‘전장’으로 표현되는 제작 과정
〈관계의 종말〉의 제작 과정은 온갖 불화로 유명하다. 처음에 이 영화를 연출하기로 되어 있었던 건 페킨파가 아니라 몬티 헬만이었다. 하지만 몬티 헬만의 연출작 〈자유의 이차선〉(1971)이 흥행에서 실패하자 페킨파에게 바통이 넘어갔다. 기회를 잡은 페킨파는 이 영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중 하나가 각본의 수정이었다. 애초 각본에는 없었던, 이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등이 전부 페킨파의 머리에서 나왔다. 원래 각본에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빌리와 팻이 만나는 장면이 없었지만 페킨파는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이 만나는 것으로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각본에 수정을 가했다는 이유 때문에 페킨파는 〈관계의 종말〉의 각본을 쓴 루디 워리처와 적잖이 불화를 겪어야만 했다.
페킨파는 캐스팅에서도 자신의 비전을 밀고 나갔다. 배우 보 홉킨스로 내정되어 있었던 빌리 역에 파격적이게도 컨트리 뮤직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을 기용했다. 실존 인물 빌리 더 키드(본명 윌리엄 보니)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해야 21살이었지만 크리스토퍼슨은 당시 36살의 나이로 빌리 역할을 맡은 것이다. 한편 주·조연급에 속하는 엘리어스 역은 전설의 포크 뮤지션 밥 딜런이 연기했다. 〈관계의 종말〉의 프로듀서 고든 캐롤이 D. A. 페니베이커가 연출한 밥 딜런 다큐멘터리 〈돌아보지 마라〉(1967)와 관련이 있었던 덕분이다. 밥 딜런은 단순히 연기하는 것을 넘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음악 〈노킹 온 헤븐스 도어〉까지도 만들었다.
촬영은 멕시코의 듀랑고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제작사는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고 했고 페킨파는 원하는 영화를 찍고자 했다. CBS 회장이었다가 1969년에 MGM(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스튜디오 회장으로 부임한, 일명 “웃는 코브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던 냉혹한 사업가 제임스 오브리와 페킨파의 불화는 영화제작 내내 멈추지 않았다. 거대 스튜디오의 사업적 영향력이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오브리는 영화제작보다는 MGM의 브랜드를 앞세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사업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고 그 이유로 영화제작쪽 재정을 대폭 줄였다.
오브리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몇 장면의 촬영을 제한했음에도 페킨파는 영화에 필요하다 생각되는 장면의 촬영을 마치기 위해 스태프들을 데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몰래 촬영’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스태프들에게 찾아온 강력한 유행성 독감과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들까지 겹쳐 상황은 최악으로 몰렸다. 고든 캐롤은 한마디로 〈관계의 종말〉의 현장을 “전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3. 감독판 및 여러 버전
편집실에서도 스튜디오와 페킨파 사이의 분쟁은 계속됐다. 온전히 페킨파의 의도대로 편집하여 완성된 버전은 124분이었다. 이 버전으로 열린 첫 번째 시사회에서 〈관계의 종말〉을 본, 당시 〈비열한 거리〉를 막 연출했던 마틴 스코시즈는 “〈와일드 번치〉 이후 페킨파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스튜디오에 의해 106분짜리 개봉 버전으로 편집됐고, 개봉되자마자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후 페킨파의 감독 버전은 페킨파가 사망한 지 4년 뒤인 1988년이 되어서야 비디오와 레이저 디스크로 복원 출시되었고 서부극의 명작 반열에 복권되었다. 2005년에는 샘 페킨파 연구자들의 주도하에 115분짜리 스페셜 에디션 버전이 DVD로 제작되기도 했다.
4. 영화의 주제
미국의 뛰어난 비평가 로빈 우드는 페킨파를 두고 “존 포드의 적자”라고 불렀다. “페킨파의 작품은 확실히 미국영화의 위대한 전통 안에 놓여 있다”고도 평했다. 미국의 감독에게, 그리고 서부극을 만든 감독에게 존 포드의 적자라는 말 이상의 값진 찬사는 드물다. 우리는 그 표현 안에서 〈관계의 종말〉의 지위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의 종말〉은 서부 시대의 어떤 우수와 서정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담아내고 있다. 그 이미지의 황홀함이 말하자면 이 영화의 영상적 주제에 해당할 것이다. 이때 강조되는 특별한 형식도 있다. ‘페킨파의 슬로모션’이라고 흔히 불리는 슬로모션의 형식이 이 영화의 영상적 주제에 큰 몫을 발휘한다. 전투나 대결 장면에서 그리고 주인공들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화면은 느리고 비장하게 흐른다. 그 흐름을 따라 인물들이 처한 운명의 비애감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오랫동안 친구였지만 이제는 적으로 돌아서버린 한 시대의 두 영웅인 빌리와 팻의 운명과 우정이 이 영화의 서사적 주제이기도 하다. 빌리와 팻은 시종일관 서로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상대를 아끼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빌리와 팻의 운명과 우정의 엇갈린 드라마를 가리키는 적절하고도 유명한 문구가 있었다. 그러니까 빌리와 팻은 바로 이런 사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적, 치명적인 친구.”
주요 등장인물
빌리 더 키드(크리스 크리스토퍼슨) : 영원한 자유인, 단독적인 영혼의 총잡이. 자기의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바라지만 그 때문에 존경하는 친구인 팻과는 등을 돌리게 된다.
팻 가렛(제임스 코번) : 빌리의 스승 또는 가장 애틋한 친구. 하지만 늙은 총잡이. 그래서 이제는 안정적이고 편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보안관을 맡으면서 빌리를 내쫓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엘리어스(밥 딜런) : 작지만 날쌔게 칼을 던지는 칼잡이. 어느 날인가 빌리의 곁에 등장한 그의 말수 적은 조력자.
명장면 명대사
빌리와 팻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팻이 빌리를 설득하기 위해 말한다. “세상이 변했어”. 그러자 빌리가 명대사로 받아친다. “그래. 하지만 난 변하지 않았어.”
세상의 통념과 무관하게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빌리의 생각을 대변하는 대사다.
관련 정보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은 엘리어스 역으로 출연한 밥 딜런이 맡았다. 대부분 밥 딜런이 직접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연주한 연주곡들이다. 물론 가장 유명한 곡은 〈Knockin’ on Heaven’s Door〉다.
이 노래는 팻 가렛이 베이커 보안관, 그의 아내와 함께 빌리 일당을 소탕하러 갔다가 베이커 보안관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처음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 dark, too dark to see/ I feel I'm knockin' on heaven's door”(마마, 이 배지를 떼어줘/ 더 이상 쓸 수가 없어/ 점점 어두워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내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나봐)라는 첫 소절로 시작하는데, 베이커 보안관이 아내를 ‘마마’라고 부른 것을 보면 이 곡은 베이커 보안관을 위한 것인 듯하다. 〈Knockin’ on Heaven’s Door〉는 빌리가 보안관이 된 알라모사 빌을 죽인 뒤에도 흘러나온다. 빌리가 죽은 뒤 영화의 엔딩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노래는 빌리에 관한 여러 주제곡 중 하나인 〈Billy 4〉이다.
연관 영화
〈대평원〉(1962, 샘 페킨파) : 저물어가는 어느 한 시대의 마지막에 놓인 인물들의 우수를 표현하는 서부극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 Billy the Kid] (세계영화작품사전 : 고전 & 현대의 웨스턴 영화, 씨네21)
첫댓글 밥 딜런의 불후의 명곡 <knockin' on heaven's door>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대중 앞에 선을 보였다고 합니다...정규 앨범 발매 이전에 영화 사운드 트랙 음반으로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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