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의 유래
퇴계(退溪)라는 명칭은 흔한 명칭이 아니다.
보통 퇴계라 하면 조선시대 명종, 선조 때의
문신이면서 학자이신 이황(李滉)선생을 지칭한다.
우리나라 천원화폐의 주인공이시기도 하고,
도산서원의 창시자로 영남학파의 뿌리로 알려진
분이다. 하지만 퇴계원은 퇴계 이황선생과는
어떤관계일까? 그곳을 지날때마다 궁금해 하였던
사실이다. 내력을 알아보자
남양주시 퇴계원면 주민센터 홈페이지에 퇴계원의
유래에 대하여 이렇게 적어 놓았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할 때 매 사냥꾼을
따라 무의식중에 이곳 퇴계원까지 와서 보니
삼각산이 보여 ‘아차 내가 남재(조선의 개국공신)의
꾐에 속았구나.’ 하고 길을 돌이켜 내각리로 물러가
궁궐을 짓고 살았다. 태조가 도성 바깥 풍양궁에
머무니 조정의 신하들이 아침마다 태상왕에게 조례를
올리고 정사를 문의하려 했지만 얼씬도 못하게 해서
신하들은 서남쪽으로 몇 십리 떨어진 퇴계원 밖에서
풍양궁 쪽을 향해 절만 하고 물러갔다하여 퇴조원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내곡리에 연안이씨 월사
이정구(조선 중기 4대 문장가중 한 명.)의 후손에
조온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상민들이 ‘
'퇴조원’하고 부르니 꼭 자기 아비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퇴계원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 전해진다.
퇴계 이황선생이랑은 아무 연관이 없는 이야기 이다.
영조와 고종의 어필로 태조가 잠시머물었던곳이라는 유지비가있다.
또 다른 유래는 이렇다.
퇴계원에는 퇴계원이라는 지명 이외에도 도제원이
있었기 때문에 ‘도제원’, ‘토원’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퇴조원 또는 퇴계원이 되었다는 것.
지금도 퇴계원지역에는 도제원 초등학교가 있어
그 이름을 잇고 있다. 역시 두 번째 전설도
퇴계선생과는 무관하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전설은,
조선 8대 왕인 예종이 선왕이 잠들어 있는 광릉에 가는데,
길이 좋지 않아 새로 길을 내는데 냇가를 길로 닦기 위해
물길을 돌려 밖으로 물리쳤다. 여기에서 퇴계원이란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다른것에 비하여 합리적인 설명같은데
역시 세 번째 전설에도 퇴계선생은 등장하지 않는다.
수도권에 있고, 퇴계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 들어본 지명이지만,
퇴계원은 퇴계선생과는 아무연관이 없다고 말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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