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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퓰리처상·전미도서상 수상 역사학자
미일 관계 전문가 존 다우어,
미국과 일본, 두 제국의 전쟁문화를 해부하다
- 현대 전쟁의 역학과 병리학
-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지적·역사적 뿌리
- 미국과 일본의 군사주의 비교연구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존 다우어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관점에서 전쟁의 근원과 결과를 다루어 왔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논픽션)을 수상한 『무자비한 전쟁(War without Mercy)』(1986)에서는 태평양전쟁의 잔혹성, 비인도적인 양상을 세세하게 분석했다. 퓰리처상(논픽션), 전미도서상(논픽션), 페어뱅크스상(아시아사) 등 수많은 영예를 안은 『패배를 껴안고』(1999)는 태평양전쟁 직후 패전국 일본이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의 점령하에 폐허가 된 땅에서 새출발하기 위해 겪은 고투를 역사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해 다루었다.
이제 더 큰 캔버스로 눈을 돌려, 존 다우어는 『전쟁의 문화: 미국과 일본의 선택적 기억, 집단적 망각(Cultures of War: Pearl Harbor/Hiroshima/9-11/Iraq)』(필로스 시리즈 34번)에서 현대전의 역학과 병리학에 대한 야심 찬 연구 프로젝트의 비교연구물을 내놓았다.
“진주만공격, 히로시마 폭격, 9·11 테러,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이라크 침공”이라는 네 사건을 통해 드러난 전쟁의 문화를 검토하며, 현대 전쟁의 문화적 패턴을 분석한다. 저자가 ‘전쟁의 문화’로 검토하는 쟁점과 주제는 다음과 같다. 정보와 상상력의 실패, 선택적 기억과 집단적 망각, “전략적 멍청함(Strategic imbecility)”, 군사적·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세속적 사고, 민주주의와 제왕적 대통령제 간 모순(“일원적 집행권”), 더욱더 노골화되는 성전(聖戰)의 수사, 비전투원 표적화(거부할 수 없는 대량 살상 논리) 등이다.
존 다우어의 『전쟁의 문화』는 전쟁계획가의 오만과 위선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표면상 “합리적 선택권”의 행사가 실제로는 어떻게 비합리와 무책임의 상징으로 나아가는지, 그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전쟁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지속하는지를 밝힌다. 말미에는 “평화와 화해의 공유된 문화들”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전쟁의 문화를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을 모색한다. 저자는 이를 개인과 제도의 행태와 그 병리를 넘어서는 성찰로서 제공한다.
“나는 악을 진지하게 다루고자 한다. 이중 잣대와 위선은 되풀이되는 또 다른 테마이며, 기억과 비탄의 강력한 역할도 중요 테마다. 비극은 사회과학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개념이 아닌데 (양가적인 모호성과 비합리성처럼) 쉽게 모델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인문학으로 출발해 역사를 전공하게 됐고, 내게 비극은 악처럼 우리의 전쟁문화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 듯하다. 역사의 이용과 오용, 그리고 말 그대로의 무시는 또 다른 서브텍스트가 됐다.” -서문 「탐구의 진화」에서(45~46쪽)
저자 소개
존 다우어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역사학 명예교수. 하버드대학교에서 미일 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의 대외관계, 근현대 문화 및 각 나라 정책 등의 비교연구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현재 MIT에서 설립한 온라인 기반의 ‘문화를 시각화하기(Visualizing Cultures)’ 프로젝트의 창립자 및 책임자로 2002년부터 활동해 오며, 현대 동아시아의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시각이미지 및 재현 이미지를 학술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전념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과 관계국의 역학 관계를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비교 분석해 오며, 전쟁의 뿌리와 그 결과, 군사·외교정책을 다루었다. 전쟁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냉전기에 벌인 미국의 대리전에서부터 걸프전, 9·11테러사건 이후의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자행한 전 지구적 폭력의 근원과 실체를 연구해 왔다.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수행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반민주적 패권을 휘둘렀다는 비판적 분석이다. 또한 일본사 연구자로서 일본이 주변 아시아 민족에게 가한 극악한 폭력과 학살의 행태를 파헤쳤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패전 직후 미 공습이 끝난 뒤에도 기밀문서를 소각하느라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일본 하늘을 묘사하며, 일본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연구해 왔다.
저자는 이 책 『전쟁의 문화』에서 전쟁문화의 제도적·지적·심리적 병리를 중심으로 제국주의 지배 논리인 근대화와 문명화, 폭력과 침략의 정당화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를 각종 기록물과 시각이미지를 토대로 역사적·사회학적으로 고찰한다.
또 다른 저서로는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 『패배를 껴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 『무자비한 전쟁: 태평양전쟁의 인종과 무력(War without Mercy: Race and Power in the Pacific War)』 등이 있으며, 『무자비한 전쟁』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논픽션)을, 『패배를 껴안고』로 퓰리처상(논픽션), 전미도서상(논픽션), 밴크로프트상(미국사), 페어뱅크스상(아시아사) 등을 수상했다.
https://visualizingcultures.mit.edu
목차
해제 『전쟁의 문화』가 조명하는 미일 관계와 한반도의 과제(김동춘)
서문 탐구의 진화
1부
코드로서의 “진주만”
-선택한 전쟁과 정보 실패
1장 오욕 그리고 금이 간 역사의 거울
코드로서의 “진주만”
“진주만”의 부메랑
2장 정보 실패
진주만의 전주곡
9ㆍ11로 가는 전주곡
사후 부검: 진주만
사후 부검: 9ㆍ11
3장 상상력의 실패
“쪼그만 노란 개자식들”
합리성, 절박함, 리스크
적을 방조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이 하찮은 테러리스트”
4장 무고함, 악, 기억상실
파국과 무고함의 전이
악과 악의 전이
기억상실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악
5장 선택한 전쟁들과 전략적 바보짓들
진주만과 “이라크자유작전”
천황제와 제왕적 대통령제
전쟁 선택
전략적 멍청함
기만과 망상
승리병과 지옥문
6장 천행으로서의 “진주만”
2부
1945년의 그라운드제로와 2001년의 그라운드제로
-테러와 대량 살상
7장 코드로서의 ”히로시마“
8장 제2차세계대전의 공중전과 테러 폭격
유령도시들
“비전투원” 제거
독일에서의 “테러 증대”
일본 표적화
대도시 소이탄 폭격
“태우는 일”과 “이차적 표적”
사기, 충격, 심리전
9장 “세계사에서 가장 끔찍한 폭탄”
그라운드제로, 1945
제로를 예상하기
죽음이 되기
전쟁 종식과 미국인의 목숨 구하기
10장 거부할 수 없는 대량 살상 논리
무력
1945년 8월과 거부된 대안들
무조건항복
힘의 정치와 냉전
당파 정치
11장 달콤함, 아름다움, 그리고 이상주의적 절멸
과학적 달콤함과 기술적 요청
기술관료적 모멘텀과 전쟁 기계
대량 살상의 미학
복수
이상주의적 절멸
12장 세상의 새로운 악들: 1945/2001
돌이킬 수 없는 악
신을 자처하다
서구에 맞선 성전: 세이센과 지하드
그라운드제로들: 국가 테러와 비국가 테러
야만성을 관리하기
3부
전쟁과 점령
-평화를 얻기, 평화를 잃기
13장 점령지 일본과 점령지 이라크
전쟁에서 이기고 평화를 잃기
점령지 일본과 제 눈에 안경
공통분모가 없는 세계들
전후 일본에 대한 계획 수립
질끈 감은 눈: 이라크 점령
국가 건설 거부
바그다드는 불타고 있다
14장 일종의 수렴: 법과 정의 그리고 위반
법에 부당하게 간섭하기
합법적ㆍ불법적 점령
전쟁범죄 그리고 승자 정의의 반동
세력권과 패전 군대의 림보
무형자산 허비
15장 국가 건설과 시장근본주의
통제와 자본주의
부패와 범죄
성공적이고 처참한 탈군사화
“일반 행정가” 대 “지역 전문가”
국가 건설 민영화
이라크를 “사업에 열려” 있게 만들기
두 시대의 원조
한탕주의를 막기 위한 앞선 시대의 싸움
망각의 시대에 엇갈린 유산들
에필로그 헛고생과 빛 좋은 개살구
세속의 사제들과 믿음 기반의 정책
헛수고
빛 좋은 개살구
주석
감사의 말
도판 목록
찾아보기
책 속으로
“진주만”은 알고 보니 다른 것들-예를 들어 미국의 무고함, 희생자화, “예외주의”의 신화와 더불어 상상력과 상식의 실패-의 코드이기도 한 까닭이다. 편견과 선입견은 구조적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보통 인정하는 것보다 잠재적 적들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평가를 왜곡한다. 인종, 문화, 종교의 차이들이 개입하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게다가 그러한 편향들은 적대자들이 품은 불만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들이 그런 불만을 호소해 지지를 동원하는데도 말이다.(67쪽)
뒤집어 보면 비합리적인 동양인이라는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이성, 질서, 문명화된 행위의 계몽주의 이상들이 실제로 현대 서양인의 사고와 행위를 이끌어 왔다는 변치 않는 가정을 반영한다. 서양인들은 때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며 근대 전쟁과 평화의 역사만큼 이 점이 더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다. 도덕적 쟁점들은 차치하고라도, 과학기술적이고 기술 관료주의적인 정교한 사고가 수뇌부의 희망적 사고와 망상, 무리 행위와 나란히 가는 경우는 허다하다.(73쪽)
텃밭 싸움, “연통형 정보 전달”, 강박적 비밀 유지, 단순한 개인적 오만과 무책임은 문제의 일부였을 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9월 11일과 12월 7일에 불시에 당한 것처럼 이라크를 해방하는 대신 결국 갈가리 찢어 놓은 2003년의 정보 대참사는 역시 상상력의 거대한 실패, 즉 9월 11일 이후 몇 달 동안 줄어들기는커녕 확대한 실패를 반영했다.(100쪽)
상상력의 실패에 관한 사후 부검의 진단적인 언어는 오래전 진주만과 직면하여 관계자들이 보인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묘사하면서 분석가들이 사용한 언어, 즉 심리적인 미비 상태, 편견과 선입견, 적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와 동일하다. 거의 동일한 증상을 설명하며,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병리학자의 진단 서류철을 보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로버타 월스테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9월 11일 이전에 미국의 분석가들과 (일부 주변적인 예외들은 제외하고) 정책결정자들은 한마디로 “적의 대담성과 창의성을 예상”하지 못했다.(123쪽)
종교 책자들은 필리핀 정복을 “올바른 전쟁”으로 옹호한 한편, 엘리후 루트(Elihu Root) 전쟁장관은 “행복과 평화, 번영”을 촉진할 식민 행정부 수립을 더 세속적인 표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필리핀이 “민주주의의 전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들은 조지 W. 부시의 유령 작가들〔연설문 대필작가들〕뒤에 있는 유령들이었다. 이라크 침공 준비 기간에 그리고 이후로 수년 동안 대통령의 문장가들과 지지자들이 쏟아 낸 말의 향연에 진정으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자애로운 글로벌 헤게모니”가 “자애로운 동화”를 대체했다. “백인의 짐” 같은 가부장적인 수사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빼고 그냥 미국의 “짐”이 됐다. “제국”은 “가벼운 제국”이 됐지만 미국만의 독특한 선(善), 사명, 명백한 운명의 신비는 여전했다.(150쪽)
진주만은 큰 전쟁(Big War)을 가리키는 하나의 코드나 상징 또는 제유가 됐다. 이는 1970년대에 쓰인 표준적인 군사사 서술이 “전멸 전략”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으로서, 제2차세계대전 훨씬 전부터 “특징적인 미국식 전쟁 방식”이 된 것이다. 그것은 9ㆍ11에 대한 럼즈펠드의 즉각적인 반응(“크게 가자-싹 정리하자-유관한 사 안과 무관한 사안 전부를”)을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큰 전쟁은 테러리즘이나 반군 활동과 맞서 싸울 때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239쪽)
9월 11일 이후로 이러한 제2차세계대전의 역사는 점차 의식에서 밀려났다. 그라운드제로는 사악한 세력들, 다시 말해 “우리와 달리” 인명의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고 무고한 남녀노소 민간인을 살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질적인 민족과 문화들의 희생자가 된 미국을 가리키는 코드가 됐다. 그러한 이슬람주의 야만성은 서구적 가치관과 비서구적 가치관 간의 심오한 차이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예시로서, 문명 충돌의 소명된 〔반증이 없는 한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채택되었다는 뜻〕 증거로 제시됐다. “그라운드제로 2001”이 과거로부터 그 이름을 가져옴과 동시에 그 이름이 유래한 장소와 대상에 도달하는 모든 시선을 차단하는 하나의 벽이 되어 버렸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256쪽)
새로운 폭탄을 시험할 준비가 되기 두 달 전인 5월 중순에 “맨해튼계획(Manhattan Project)”의 과학 감독으로 미 육군의 후원하에 그 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는 다른 방향에서 폭격기 탑승원만이 직면할 수 있는 특별한 위험을 다루었다. 오펜하이머가 “장치(The Gadget)의 방사선학적 영향들에 관해” 군사 계획가들에게 발표한 내용은 회의록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1) 방사선학적 이유에서 어떤 항공기도 기폭 지점으로부터 2½ 마일〔 4킬로미터〕보다 더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되며(폭발 기류상의 이유로 거리는 그보다 더 멀어야 한다) (2) 항공기는 방사능물질 구름을 피해야 한다.”(“장치”는 프로토타입 폭탄에 널리 쓰이는 암호명이었다.) 나중에 다른 기회에 오펜하이머는 임시위원회에 방사능이 “최소 3분의 2마일〔1.07 킬로미터〕 반경 이내에……위험할 것”이라고 알렸다.(312쪽)
“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이 주는 능력이 그 자체로 인류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당신이 지식의 확산을 돕는 데 그 능력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과를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과학자가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고상한 수사이자, “죽음, 파괴자”에 관한 오펜하이머의 더 섬뜩한 성찰의 이면이었다.(378쪽)
개인을 뛰어넘는 거대 기계(mega-machine)는 또한 특히 현대 첨단 전쟁에서 두드러지는, 문자 그대로의 거리 두기나 추상성을 상기시킨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군인 대다수는 실제로 적과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을, 폭격기들이 폭발물과 소이탄을 투하할 때 목표물 위로 아주 높이(이른바 저고도 공습일 때도 대략 1.5킬로미터 이상이었다) 떠 있었다는 것을, “수 제곱마일의 파괴” 지역을 확인하기 위해 공중정찰 사진들에 의존하는 것이 시가지 폭격의 실제 참상을 무균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을, 워싱턴의 계획가들과 로스앨러모스, 시카고, 오크리지(Oak Ridge), 핸퍼드(Hanford)의 폭탄 제조자들이 “인간의 공포와 고통, 죽음”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거리 두기는 비유적인 것, 즉 전체적 그림 속에서 고립과 소외, 의문 제기에 적대적이 고 반대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제도적 기후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 포기에 이르는 개인과 소집단의 종속과 자기 몰입도 의미하게 됐다.(384쪽)
현대전은 여전히 대체로 대량 살상이다. 관료조직들은 영역 다툼을 하는 세력권들의 집합이다. 정치적 도덕성이란 흔히 모순어법이다. 그리고 부시 임기 마지막 몇 달에서 드러났듯이 “시장 합리적인” 자본주의는 상당 부분 신화다. 전통적인 종교와 상관없는 믿음과 행위가 세속의 사제들에 의해 설파되고 강요되면서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611쪽)
“진주만”은 알고 보니 다른 것들-예를 들어 미국의 무고함, 희생자화, “예외주의”의 신화와 더불어 상상력과 상식의 실패-의 코드이기도 한 까닭이다. 편견과 선입견은 구조적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보통 인정하는 것보다 잠재적 적들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평가를 왜곡한다. 인종, 문화, 종교의 차이들이 개입하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게다가 그러한 편향들은 적대자들이 품은 불만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들이 그런 불만을 호소해 지지를 동원하는데도 말이다.(67쪽)
뒤집어 보면 비합리적인 동양인이라는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이성, 질서, 문명화된 행위의 계몽주의 이상들이 실제로 현대 서양인의 사고와 행위를 이끌어 왔다는 변치 않는 가정을 반영한다. 서양인들은 때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며 근대 전쟁과 평화의 역사만큼 이 점이 더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다. 도덕적 쟁점들은 차치하고라도, 과학기술적이고 기술 관료주의적인 정교한 사고가 수뇌부의 희망적 사고와 망상, 무리 행위와 나란히 가는 경우는 허다하다.(73쪽)
텃밭 싸움, “연통형 정보 전달”, 강박적 비밀 유지, 단순한 개인적 오만과 무책임은 문제의 일부였을 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9월 11일과 12월 7일에 불시에 당한 것처럼 이라크를 해방하는 대신 결국 갈가리 찢어 놓은 2003년의 정보 대참사는 역시 상상력의 거대한 실패, 즉 9월 11일 이후 몇 달 동안 줄어들기는커녕 확대한 실패를 반영했다.(100쪽)
상상력의 실패에 관한 사후 부검의 진단적인 언어는 오래전 진주만과 직면하여 관계자들이 보인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묘사하면서 분석가들이 사용한 언어, 즉 심리적인 미비 상태, 편견과 선입견, 적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와 동일하다. 거의 동일한 증상을 설명하며,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병리학자의 진단 서류철을 보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로버타 월스테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9월 11일 이전에 미국의 분석가들과 (일부 주변적인 예외들은 제외하고) 정책결정자들은 한마디로 “적의 대담성과 창의성을 예상”하지 못했다.(123쪽)
종교 책자들은 필리핀 정복을 “올바른 전쟁”으로 옹호한 한편, 엘리후 루트(Elihu Root) 전쟁장관은 “행복과 평화, 번영”을 촉진할 식민 행정부 수립을 더 세속적인 표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필리핀이 “민주주의의 전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들은 조지 W. 부시의 유령 작가들〔연설문 대필작가들〕뒤에 있는 유령들이었다. 이라크 침공 준비 기간에 그리고 이후로 수년 동안 대통령의 문장가들과 지지자들이 쏟아 낸 말의 향연에 진정으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자애로운 글로벌 헤게모니”가 “자애로운 동화”를 대체했다. “백인의 짐” 같은 가부장적인 수사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빼고 그냥 미국의 “짐”이 됐다. “제국”은 “가벼운 제국”이 됐지만 미국만의 독특한 선(善), 사명, 명백한 운명의 신비는 여전했다.(150쪽)
진주만은 큰 전쟁(Big War)을 가리키는 하나의 코드나 상징 또는 제유가 됐다. 이는 1970년대에 쓰인 표준적인 군사사 서술이 “전멸 전략”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으로서, 제2차세계대전 훨씬 전부터 “특징적인 미국식 전쟁 방식”이 된 것이다. 그것은 9ㆍ11에 대한 럼즈펠드의 즉각적인 반응(“크게 가자-싹 정리하자-유관한 사 안과 무관한 사안 전부를”)을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큰 전쟁은 테러리즘이나 반군 활동과 맞서 싸울 때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239쪽)
9월 11일 이후로 이러한 제2차세계대전의 역사는 점차 의식에서 밀려났다. 그라운드제로는 사악한 세력들, 다시 말해 “우리와 달리” 인명의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고 무고한 남녀노소 민간인을 살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질적인 민족과 문화들의 희생자가 된 미국을 가리키는 코드가 됐다. 그러한 이슬람주의 야만성은 서구적 가치관과 비서구적 가치관 간의 심오한 차이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예시로서, 문명 충돌의 소명된 〔반증이 없는 한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채택되었다는 뜻〕 증거로 제시됐다. “그라운드제로 2001”이 과거로부터 그 이름을 가져옴과 동시에 그 이름이 유래한 장소와 대상에 도달하는 모든 시선을 차단하는 하나의 벽이 되어 버렸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256쪽)
새로운 폭탄을 시험할 준비가 되기 두 달 전인 5월 중순에 “맨해튼계획(Manhattan Project)”의 과학 감독으로 미 육군의 후원하에 그 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는 다른 방향에서 폭격기 탑승원만이 직면할 수 있는 특별한 위험을 다루었다. 오펜하이머가 “장치(The Gadget)의 방사선학적 영향들에 관해” 군사 계획가들에게 발표한 내용은 회의록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1) 방사선학적 이유에서 어떤 항공기도 기폭 지점으로부터 2½ 마일〔 4킬로미터〕보다 더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되며(폭발 기류상의 이유로 거리는 그보다 더 멀어야 한다) (2) 항공기는 방사능물질 구름을 피해야 한다.”(“장치”는 프로토타입 폭탄에 널리 쓰이는 암호명이었다.) 나중에 다른 기회에 오펜하이머는 임시위원회에 방사능이 “최소 3분의 2마일〔1.07 킬로미터〕 반경 이내에……위험할 것”이라고 알렸다.(312쪽)
“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이 주는 능력이 그 자체로 인류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당신이 지식의 확산을 돕는 데 그 능력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과를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과학자가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고상한 수사이자, “죽음, 파괴자”에 관한 오펜하이머의 더 섬뜩한 성찰의 이면이었다.(378쪽)
개인을 뛰어넘는 거대 기계(mega-machine)는 또한 특히 현대 첨단 전쟁에서 두드러지는, 문자 그대로의 거리 두기나 추상성을 상기시킨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군인 대다수는 실제로 적과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을, 폭격기들이 폭발물과 소이탄을 투하할 때 목표물 위로 아주 높이(이른바 저고도 공습일 때도 대략 1.5킬로미터 이상이었다) 떠 있었다는 것을, “수 제곱마일의 파괴” 지역을 확인하기 위해 공중정찰 사진들에 의존하는 것이 시가지 폭격의 실제 참상을 무균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을, 워싱턴의 계획가들과 로스앨러모스, 시카고, 오크리지(Oak Ridge), 핸퍼드(Hanford)의 폭탄 제조자들이 “인간의 공포와 고통, 죽음”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거리 두기는 비유적인 것, 즉 전체적 그림 속에서 고립과 소외, 의문 제기에 적대적이 고 반대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제도적 기후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 포기에 이르는 개인과 소집단의 종속과 자기 몰입도 의미하게 됐다.(384쪽)
현대전은 여전히 대체로 대량 살상이다. 관료조직들은 영역 다툼을 하는 세력권들의 집합이다. 정치적 도덕성이란 흔히 모순어법이다. 그리고 부시 임기 마지막 몇 달에서 드러났듯이 “시장 합리적인” 자본주의는 상당 부분 신화다. 전통적인 종교와 상관없는 믿음과 행위가 세속의 사제들에 의해 설파되고 강요되면서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611쪽)
출판사 서평
★ 2010 전미도서상 ㆍ 로스엔젤레스타임스도서상 최종 후보작
★ 역사적 시각 자료 122컷으로 보는 전쟁의 문화
진주만, 히로시마, 9·11, 이라크
네 전쟁을 관통하는 기념비적 분석
“폭력과 침략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ㆍ 미국과 일본 지배층의 결탁으로 인한 선택적 기억과 의도적 망각의 결과, 그 희생은 한반도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미쳤다.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ㆍ 진주만공격부터 9·11 테러까지, 저자는 과거를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현재와의 대화로 바라본다. -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ㆍ 평생에 걸친 성찰과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현대 전쟁의 특징인 희망적 사고, 오만과 망상을 매우 예리하게 조명한다! - 전미도서상 후보 총평
『전쟁의 문화』는 현대 전쟁의 제도적·지적·심리적 병리를 중심으로 제국주의 지배 논리인 근대화와 문명화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폭력과 침략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역사적 시각 자료 122컷과 함께 고찰하는 중요한 연구물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를 통해 현대 전쟁의 구조를 드러내며, 정보 실패와 자기기만이 초래한 선제공격의 비극에서 시작해(1부), 테러와 보복으로 이어지는 대량 살상의 그림자를 추적한다(2부). 나아가 점령 통치 과정에서 드러나는 민주주의의 역설을 조명하며(3부), 이 세 가지 측면이 어떻게 제국주의적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는지 분석한다.
이러한 유기적 분석에 더해 저자가 씨줄로 엮은 것은 “언어”라는 점이다. 존 다우어는 전쟁의 수사가 어떻게 폭력을 옹호하는 덫이 되는지 분석하면서, 동시에 “평화, 자유, 정의”라는 언어가 진영을 막론하고 전쟁 수행의 도구가 되는 역설을 포착한다. 이는 냉소주의적 프로파간다를 넘어서는 것으로, 전쟁의 문화가 평화의 언어를 전유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 전쟁의 본질적 모순을 드러낸다.
제국주의의 오만과 망각을 해부하다
1부 「코드로서의 “진주만”-선택한 전쟁과 정보 실패」에서는 1941년과 2001년에 미국이 겪은 정보 실패와 기습 공격의 유사성을 분석한다. 저자는 이러한 파국적 사건이 권력자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부시 행정부의 위기 대응을 비교한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공격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보여 주는 “전략적 멍청함”의 유사성에 주목하는데, 양측 모두 전술적으로는 탁월했으나, 적의 심리와 능력을 심각하게 오판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분석은 2003년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이라는 “부시독트린”으로 확장되어, 1941년의 일본, 2001년의 알카에다, 그리고 2003년의 미국이 보여 준 “스스로 선택한 전쟁”의 비극적 패턴을 드러내고 있음을 해설한다.
2부는 「1945년의 그라운드제로와 2001년의 그라운드제로-테러와 대량 살상」을 다룬다. 세계무역센터의 테러 폭탄 공격 현장이 “그라운드제로”로 명명된 것에 주목해, 제2차세계대전 당시 국제연맹과 미국이 공중전에서 테러 폭격을 어떻게 표준적인 작전 절차로 채택했는지를 재고찰한다. 당시 연합군은 “총력전” 시대의 심리전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독일의 민간 시가지를 폭격했다.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점을 지칭하던 “그라운드제로”라는 용어가 9·11 이후 미국의 희생자 코드로 전유된 것은, 미국이 과거에 자행한 민간인 대량 살상에 대한 어떠한 자기성찰도 보여 주지 않은 것임을 통렬히 지적한다. 이를 통해 섬멸전식 “충격과 공포” 전략에 대한 반성,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이러한 충격과 공포 전략은 이후 이라크 침공에서도 재현되었다.
3부 「전쟁과 점령-평화를 얻기, 평화를 잃기」에서는 일본 점령과 이라크 점령을 비교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 점령의 ‘성공’과 이라크 점령의 ‘실패’가 단순한 대비가 아님을 강조한다. 일본 점령 시기 미국인 지배자들도 언어와 문화에 대한 무지, 자민족 중심주의, 오만 등의 문제를 보였으나, 이는 이라크에서와 달리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존 다우어는 일본과 이라크 점령 정책 사이에서 중요한 “수렴(convergences of a sort)” 지점을 발견한다. 군 해체나 공직자 숙청과 같은 정책들이 일본에서는 성공적으로 진행된 반면, 이라크에서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는 21세기 미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시장 근본주의적 접근을 택하고 국가 건설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집단사고는 관료들의 우려를 무시한 채 이라크를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실험장으로 만들었고, 이는 결국 점령 정책의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짚는다.
‘제국주의’에서 ‘현대 사회의 동역학’까지
통찰력 있는 비교연구물
존 다우어의 연구는 단순한 역사적 비교를 넘어선다. 그는 전통적인 지역연구나 “문명충돌”이라는 관점의 문화결정론적 접근을 지양하고, 근대성 자체의 다양한 문화를 비교하고 분석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전쟁의 문화』를 썼다. 즉, 폭력, 전쟁이라는 현상 자체가 만들어 내는 문화적 패턴에 주목한다.
특히 비대칭전쟁, 반군 활동, 국가적·초국가적 자부심, 스마트 파워 대 하드 파워, 오만과 태만이 가져오는 역풍 등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구체적 교훈들이 이라크 침공에서 무시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또 저자는 주목할 점으로, 2008년 금융 붕괴와 전쟁의 문화적 병리가 보여 주는 유사성을 언급한다. 세속의 사제들, 무리 행위, 위험 평가의 실패, 합리성으로 포장된 희망적 사고, 역사적 상상력의 결여 등이 전쟁과 금융 양쪽에서 동일하게 나타남을 발견한다. 표면상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전쟁꾼들(war makers)과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돈벌이꾼들(money makers)의 행태가 보여 주는 이러한 중첩은, 현대 사회의 동역학을 드러내는 중요한 분석으로서 개인의 행위 및 조직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존 다우어의 이러한 분석이 21세기 현재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해제에서 “19~20세기 내내 독자적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개입한 아시아 전쟁사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인들이 자신의 주체적 위치와 시선으로 20세기 전쟁사를 해석하고 쓸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의 논리와 수사가 어떻게 폭력을 용인하고 그 기억이 어떻게 선택적으로 구성되는지를 분석한 이 책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 한반도의 분단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쟁의 문화”를 성찰하는 깊이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또한 개인과 조직이 보이는 문화적 병리, 전쟁계획가의 오만과 독선, 비합리적 군국주의, 제왕적 통치자의 모순을 탁월하게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폭넓은 통찰을 제공하며,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