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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능력에 충실한 성도는 진리의 성경말씀 연구에 더욱 매진함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정신력을 다 사용하고, 하나님의 오묘(奧妙:심오하고 미묘하신 창조주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의 이해력을 써야 한다. 그러나 어린아이같이 온순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배우는 자의 진정한 정신임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성경 상 어려운 문제들은, 철학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과학의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직(看直:곧게 지키는 마음작용)하는 것과, 동일(同一:같은 조건과 뜻으로)한 자부심(自負心:학문적 우월적 소신)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경건(敬虔:정성껏 공경숭배)하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하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정신으로 나가서, 위대하신 영원하신 자존자(自存者:영원 전부터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에게서 지식을 얻고자 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악한 천사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리 마음을 굳어지게 함으로, 진리의 감동(感動:성령인도로 마음의 깊은 움직임)을 받지 못하게 할 것이다.(GC 599.1) 학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라고 선고해 버리거나, 별로 중요하지 아니한 것으로 지나쳐 버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慰勞:고난슬픔을 안정된 격려)의 교훈(敎訓:진리의 가르침에 성령)으로 충만(充滿:믿음의 소망으로 만족)해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실천하기를 원치 않는 진리에 대하여, 그들의 눈을 감아 버리기 때문이다.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 연구에 사용되는 지성의 능력에 의존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전심전력(全心全力: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연구) 하는 태도, 곧 의(義:“그리스도 우리의 의”)를 열렬히 사모(思慕:우러러 받들고 간절히 숭경)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GC 599.2)
성경은 기도 없이 연구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령께서만 우리를 그처럼 중요한 것들을, 이해할 필요를 쉽게 느끼게 하시고, 이해하기 어려운 진리를 곡해(曲解:왜곡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지도해 주실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리고, 그 말씀의 경고로 경계를 받고 그 약속으로, 새로움과 활기를 얻게 하는 것이 천사들의 직무[하늘의 사자들]이다.
우리는 시편 기자의 기원(祈願)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이따금 유혹(誘惑:악한 일을 꾀고 미혹)을 저항(抵抗:악에 대항)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기도와 성경연구를 게을리 함으로, 하나님의 허락을 쉽게 기억할 수 없고, 성경을 무기로 삼아 사단을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신령(神靈:거룩하신 성령에 의)한 사물(事物:천국의 모든 은혜의 선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위에 둘러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바로 그 진리를, 기억나게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사59:19)이다.(GC 599.3) 예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훈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미리 쌓아 두어야 위태한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교훈들을 우리의 기억에 떠오르게 해주신다. ‘다윗’은 “내가 주께 범죄 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고 말하였다.(GC 600.1) 성경에 대한 참된 지식은 말씀을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생활에 실천(믿음으로 그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여 생애에서 순종)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모두 다 순종해야 한다. 그 말씀에 있는 모든 허락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생애를 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그대로 살아야 한다. 성경을 이처럼 지지할 때만, 그 연구가 실효를 거두게 된다.(Ed 189.2)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는 가장 부지런한 노력과, 인내성 있는 사고가 요구된다. 마치 광부가 땅 속의 금광을 찾아 파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물을 [성령의 인도하심과 깨우치심으로] 열심히 끈기 있게 찾아야 한다.(Ed 189.3)
매일의 연구에 있어서, 성경을 절절이 배워 가는 방법은 매우 유익하다. 성경을 연구하는 자는 성경의 한 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그 속에 어떤 사상을 두셨는지, 확실히 알기 위하여 모든 생각을 계속 집중하여, 그 사상이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한 절씩 연구해 가는 것은, 일정한 목적도 없이 적극적으로 어떤 교훈을 얻으려는, 생각도 없이 다만 여러 장의 성경을 통독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Ed 189.4)
하나님의 이름에도 숭경(崇敬:숭상하고 경외심으로 사모함)의 뜻을 보여야 한다. 그 이름을 가볍게 생각 없이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기도하는 중에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필요 없이,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십계명 제3항...,,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111:9). 천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에, 얼굴을 가린다. 하물며 타락한 죄인인 우리들은 얼마나 숭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입술로 말해야 할 것인가!(Ed 243.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숭(尊崇:존경하고 숭배하며 경외)히 여겨야 한다. 성경에 대해 숭경의 뜻을 나타내야 하며, 이를 범속(凡俗:평범하고 거룩하지 못한)한 일에 사용하거나, 조심성 없이 취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성구(聖句:성경의 글귀)를 농담으로 쓴다거나 무슨 약빠른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말씀을 고쳐 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잠30:5)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12:6).(Ed 244.1)
성령의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지만 유익이 없고 많은 경우에, 분명한 손해가 되는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과 기도 없이 펼 때, 사상과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거나,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마음은 의심으로 흐려지고, 바로 성경연구 자체가 회의론(懷疑論:절대적 진리의심)을 강화시킨다. 원수가 사상(思想:마음생각)을 사로잡고, 옳지 않은 해석을 하도록 시사(示唆:은근히 의심으로 미혹)한다.(CCh 88.3)
하나님께서는 빛과 진리를 정직하게 바라는, 자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빛을 주신다. 그러나 의심과 의문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것이, 그분의 목적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믿음을 세울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시고, 사람들에게 그 증거를 받아들이고, 믿음을 행사하도록 요구하신다.(5T 303.1)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성경이 틀림없이 정확하게 생명의 길을 가리켜 주는, 확실한 지침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대들의 성경연구가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그 거룩한 책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계시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깊어지면 질수록, 우리는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하신 음성으로, 더욱 크게 인정하게 될 것이다.(5T 303.2)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안식일 학교는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주기 때문에서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 거룩한 진리에 대한 사랑과 그 진리를, 스스로 연구할 욕망을 깨우쳐 주기 때문에, 선교사업의 중요한 한 분야이다. 더욱이 그 학교는 그들에게 그 말씀의 거룩한 교훈에 의하여, 그들의 생애를 통제하도록 가르쳐 준다.(5T 389.1)
하나님의 말씀을 생애의 법칙으로 삼는 모든 사람은, 피차간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성경은 그들을 묶는 끈이다. 거룩한 말씀을 분명한 안내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그들과의 교제를 구하거나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믿음과 행동에 있어서, 다 같이 상치(相馳:서로 어긋 지게)된다. 그들 사이에는 조화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일치될 수가 없다. 우리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 관습이나 전통을 떠나“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분명한 말씀에 호소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사람의 교훈과 계명을 가르치고 따르는, 많은 무리들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5T 389.2) 하나님에게서 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마5:13). 만일 우리가 믿노라고 공언하는 신앙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애를, 거룩하게 하지 못하면 그것이 어떻게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세상에 회개시키는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신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것을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더욱 좋다. 그것은 무력한 것이고 가짜이기 때문이다.(5T 389.3)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그분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라.
우리의 행동의 가장 적은 부분도 “내가 네 행위를 아노”(계3:8) 라고 말씀하시는 분의 눈에서 숨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까지, 하나님의 살피시는 눈앞에 펼쳐져 있다. 모든 행동, 모든 목적, 모든 말은 마치 온 우주에서 오직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분명히 드러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살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율법을 주신 분의 눈앞에서, 그분의 율법 중 한 조항이라도 범하거나, 속임이나 주장이나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겠는가? 우리가 대 재판관의 바로 면전에서, 그 선고를 무릅쓸 것인가? 여기에는 가장 악한 인간의 주제넘음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철면피(鐵面皮:쇠로 만든 낯가죽의 얼굴같이, 뻔뻔하고 염치없는 자)가 있다. 심판의 날에 내가 만날 것으로 기대하는 나의 형제여, 나는 그대가 최근의 기만[속임]에 대하여 변명할 말이 없을 것으로 안다.(5T 627.2)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저자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자들이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신비들을 제시한다. 그것은“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딤전6:16) 거하시는, 창조주께 우리의 마음을 이끈다. 그것은 인간역사를 다 포함하고, 오직 끝없는 영원의 주기에서 성취될, 그분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부와 인간의 운명에 관련된 무한히 깊고, 주요한 주제들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5T 699.2) 우리는 진리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위하여, 가장 열렬하게 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위기의 때에, 감히 침묵을 지키지 못한다. 지금은 유혹의 시기이며, 낙담(落膽:너무 무섭고 놀라움으로 간이 떨어지는 듯한 두려움)의 시기이다. 각 사람이 사단의 간계(奸計:간사한 꾀임의 계략)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능력을 저항[구속주의 은혜로 대항]하기 위하여 함께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한마음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하며,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계획들을 성공적으로 확장(擴張:성령의 역사로 부흥)시키고, 부지런한 선교활동을 통하여 사업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5T 388.1) 진리의 빛은 선교활동을 통하여,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인쇄물은 목회활동으로 접촉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게 하는 도구이다. 성경말씀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제시할지라도, 큰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서, 분명한 그 말씀을 모든 사람의 양심에 강조하고, “성경을 상고하라”(요5:39)고 한 우리 구주의 명령을, 모든 사람에게 되풀이하라. 성경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거룩한 빛을 달라고 간원(懇願:간절히 기도)하고, 그 빛이 비출 때는 그 귀중한 빛을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두려움 없이 그 결과를 감수(監收:자세히 살펴 거둘 수 있게)하도록 그들을 권면하라.(5T 388.2)
하나님의 짓밟힌 율법은, 백성들 앞에 높이 들려야 한다. 그들이 열성과 존경의 마음으로 성경을 향하여 돌아가면, 즉시 하늘에서 온 빛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그들에게 계시해 줄 것이다. 미신과 거짓교리에 의하여 오랫동안 모호(模糊:분간하기 어렵게 혼탁)해져 온 위대한 진리는, 조명(照明:밝게 비취게)된 거룩한 말씀의 페이지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 산[살아있는 생명] 계시의 말씀은 그 보배를 새것과 옛 것으로 내어 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빛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이른바 죽음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빛과 생명을 받는다. 지적(知的:지식적) 거인(巨人:뛰어난 자)에게도 이해하기에 벅찬 것으로 입증되어 온 진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기들에게도 이해가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장 학식이 많은 말씀의 주석가(註釋家:낱말문장의 해석가)들의, 영적지각을 흐리게 한 것들이 분명하게 계시된다.
왜냐하면 옛날의 ‘사두개인’[부활을 믿지 않고 제사장 중심의 교단]들처럼 그 주석가들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무지(無知:아는 진리가 없게)해졌기 때문이다.(5T 388.3) 우리는 온갖 반대의 세력을 대항하여 전진하고,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아래 봉사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업은, 모든 물가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 사업에 각 사람이, 일익(一翼:많은 사업가운데 한쪽부분)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를 청지기로 삼아서 취리(取利:재물의 이자를 받게)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투자하여 증가시키게 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그분께서는, 변리(邊利:대여 이자)와 함께 그분 자신의 것을 받으실 수 있게 되어야 한다.(5T 389.4)
사도 ‘베드로’는 성경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고 한다. 회의론 자들은 성경의 어려움이 성경을 대적(對敵:적대)하는 논증(論證:논박의 증명)이 되는 것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렇기는커녕 그런 어려움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靈感:신령하신 심령의 창조적 신비함)으로 되었다는 강한 증거이다.
만일 성경에 하나님께 대한 이야기가 없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뿐이라면, 만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을 유한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의 명백한 신임장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제시(提示:볼 수 있도록 증명)된 주제(主題:주요한 문제)들의 웅대(雄大:장엄하고 위대)함과 오묘(奧妙:깊고 기이한 신묘하고 미묘)함, 바로 그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고취(鼓吹:용기와 기운을 북돋음) 시켜야 한다.(5T 700.1)
성경은 단순하게 또한 인간의 마음의 필요와 소원에, 가장 적합한 진리를 나타내 주므로, 비천하고 교양 없는 자들도 구원의 길을 깨달을 수 있는가 하면, 가장 훌륭하게 교양을 쌓은 사람들도 놀라게 하고 매력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 단순하게 표현된 진리들이,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 너무 숭고하고 너무 원대(遠大:너무 크고 높아 결코 미치지 못)하고, 너무 무한(無限:시간공간을 초월한 영원)의 주제들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들을 선포하셨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속의 계획이 우리 앞에 제시되므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받기 위하여 회개로 하나님께 나가고,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 이르는 계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쉽게 깨닫게 되는 진리아래, 그분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오묘, 그것을 탐구하는 정신을 압도(壓倒:완전제압) 시키고 그러면서도, 진지한 진리의 탐구자를 존경과 믿음으로, 고무시키는 오묘가 놓여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계시의 위엄 앞에 머리를 숙인다.(5T 700.2) 하나님의 권위에 의거하여 살아있는 성경말씀을 즐겨 받아들이는 자들은, 가장 밝은 빛으로 축복을 받는다. 특정한 말씀들을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그들은 다만, “성경에 그렇게 제시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나 하나님의 지혜의 현현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주님께서 의도(意圖:설계로 뜻)하신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믿음으로 어떤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아를 발견한다. 이것을 인정하므로 유한한 마음은, 무한한 것을 파악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제한된 인간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전지(全知:전지전능)하신 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是認:모든 것을 인정)하게 된다.(5T 700.3) 하나님은 사람이 추리력(推理力:추리하는 힘)을 발휘(發揮:모든 재능을 펼쳐 창조주의 위대하고, 영원하신 능력을 알아 배우게)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연구는 어떤 다른 연구보다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향상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좋은 영적훈련인 동시에 지적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약점과 연약함에 예속(隸屬:그 의 지배지휘에 매이게) 되는, 이성(理性:타고난 성품)을 신격화(神格化:위대하신 신성화) 하는 일을 경계(警戒:잘못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일 성경이 인간의 이해력에 모호하게 되어, 가장 분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과 믿음을 가져야 하고, 배우고자 하며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깨닫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상태를 알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치 우리가 거룩한 경외심으로 그분의 면전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분의 말씀을 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이성은 그것을 초월한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마음과 지성은 스스로 계신 위대한 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5T 703.3) 우리 자신이 작다는 것과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영적지식 안에서 전진하게 될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정신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깨우침을 받을 것이다.
외관상 어렵고 모호해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고 단순하게 해주실 것이다.(5T 704.1) 새로 믿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문제들 중 하나는 의복에 관한 것이다. 새로 회심한 자들을 성실하게 다루도록 하라. 그들은 의복에 있어서 허영적(虛榮的:죄악세상 허세의 차림)이 아닌가? 그들은 마음의 교만을 품고 있지 않는가? 의복의 우상은 도덕적 질병이다. 그 질병은 새 생애로 옮겨져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복음의 요구에 순종하게 되면, 의복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가 요망될 것이다.(6T 96.1) 의복에 있어서 부주의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증거 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는 외모를 가장 올바르게 나타내야 한다. 성막제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 앞에서 봉사하는 자들의, 의복에 관하여 매우 세밀하게 지시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께서 그분을 섬기는 자들의 의복에 관하여, 원하시는 바가 있다는 교훈을 받고 있다.
‘아론’의 의복에 관해 매우 특별한 기사가 주어졌다. 왜냐하면 그의 의복은 상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을 대표해야 한다.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의 외모는 단정, 정숙, 순결 등으로 특징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유행을 위하여서만, 의복을 바꾸어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고자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값진 치장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장식품으로 단장해서는 안 된다.(6T 96.2)
의복에 관하여 말한 성경말씀을,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몸을 꾸미는 의복까지도, 평가하신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찾는 일에 열렬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귀중한 교훈의 말씀에 유의할 것이다. 의복의 스타일까지도 복음의 진리를 나타낼 것이다.(6T 96.3)
그리스도의 생애를 연구하고 그분의 교훈을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다. 그들의 감화력은 그분의 감화력과 같아질 것이다. 그들은 건전한 품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이 겸손히 순종의 길을 걷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과 그분의 사업의 완전한 순결을 알려 주는, 감화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철저히 회개한 영혼들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품성에 작용하는 거룩한 진리의 능력을 목격하게 된다.(6T 96.4)
성품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하늘이나 땅에서 평가되는 어떤 것보다 더욱 고상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교육이다. 그것이 하늘도성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침례로써 그리스도를 옷 입는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높은 부르심의 특권을 이 영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6T 97.1) 이 시대를 위한 진리는 모든 복음을 포함한다.
바로 제시되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확실하게 나타나게 하는 변화들을 낳을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사업을 이루며, 완전한 인간을 계발시킬 것이다.
참된 의료선교사업과 복음사업 사이에, 아무 가름 줄이 없게 하자. 이 두 가지가 서로 섞여서, “오라 모든 것이 예비 되었다.”(눅14:17)라는 초청을 발하게 하자.
그들이 불가분(不可分:결코 나눌 수 없는 상태)의 연합, 마치 팔이 몸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 연합을 이루도록 하자.(6T 291.1) 죄 때문에 우리의 상태가 불가사의(不可思議:사람이 판단할 수 없게)해졌으므로, 우리를 회복시키는 능력은 초자연적(超自然的: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악의 세력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피를 통해서만[죄 사함 받으므로]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다.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本性:멸망으로 향하는 천성)의 경향[한쪽으로 기울어진 욕망]을 저항(抵抗:회개순종으로 이겨나가게)하고, 굴복(屈伏:성령의 도우심으로 복종)시킬 수 있게 한다. 이 능력은 하나님께 대한 강신술 적인 이론을 무익(無益:아무이익이 없도록) 하게 만든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천연계에 편만[두루두루 퍼져나가게]한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要所:주요한 기본요점이)라면,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 안에 거하실 것이고, 또한 성결에 이르기 위하여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능력을 계발시키기만 하면 된다. [창조주와 구속주를 완전히 형상화하는 우상숭배 적이며, (속죄의 피 흘림) 구속주 하나님 없이, 인간자신이 스스로 성결을 이룬다는 거짓 궤변의 극치다.](8T 291.3)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8:20). 이 말씀이 우리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장 귀중한 진리로 가득한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식의 알파와 오메가, 곧 시작에서 끝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 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딤후3:16,17) 한다. 성경을 그대의 교과서로 삼으라. 모든 사람이 그 교훈을 이해할 수 있다.(8T 299.2)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법칙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는 백성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교훈에 관하여, 그대에게 빛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상고(詳考:믿음으로 세밀하게 숙고)하라.
그대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말씀을 발견하거든 사람의 의견을 묻지 말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게 될지라도 즐겨 순종하라. 그때에 하나님의 축복은, 그대에게 임할 것이다....(TMK 297.3) 주께서는 우리가 구원의 큰 경륜의 가치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고상한 특권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순종하는 생애를 살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우리가 매일매일 기쁨에 넘친 새로운 생애로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고, 우리를 돌보시는 그분에게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겼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복받쳐 오르는 감사의 표정을 보고자 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주님의 유업이 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성도들의 흰 두루마기가 되기 때문에 기뻐할 뿐 아니라, 우리의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복된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명하신다.(COL 2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