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시청-
“경시청의 메구레경부를 소개하겠습니다.”
갈색 바바리 코트와 모자를 쓰고 등장한 뚱뚱한 수염 아저씨는 매스컴의 집중을 받으며 자리에 착석하였다.
“고등학생 탐정의 힘을 빌린 이 사건은, 이 탐정의 뛰어난 추리력으로 본 사건을 조기수사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단(데이탄) 고등학교-
도쿄에 있는 제단(데이탄) 고등학교. 학교 앞이지만 경시청과 마찬가지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기자들이 떼거지로 모여들어 한 인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쿠도 신이치씨죠?”
“며칠 전의 인기 만화가 살인사건에 대한 괴기 트릭을 풀다니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하실 말씀이라도.”
“신이치군, 여기 좀 봐줘요!”
카메라의 플래쉬는 연속해서 터졌고 신이치라고 불리는 소년은 오른손에 축구공을 올려놓은 채 친절하게 기자들의 답변에 응했다.
“그렇게 소란을 떨만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탐정이니까요. 게다가, 제가 경애하는 홈즈라면 제가 사건을 푼 반만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사건을 해결했을 겁니다. 그럼 실례.”
소년은 왼손으로 기자들을 살짝 밀치면서 학교 정문으로 들어갔다.
이 소년의 정식 이름은 쿠도 신이치 (工藤 新一). 21세기의 홈즈라고 불리며 도쿄 내에서는 꽤나 유면한 고등학생 탐정이다. 그 명성에 따른 인기도 쑥쑥 올라 지금은 학교에서 신이치를 모르면 간첩이라 불릴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신이치는 학교 건물 내부로 들어가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있는 한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팬티 보여 란.”
“에엣?!”
순간 당황한 듯 여자아이는 뒤로 돌아 얼굴이 붉혀진 채로 신이치를 보았다.
“엷은 분홍색.”
“?!”
이 여자아이의 이름은 모리 란(毛利 蘭). 신이치의 소꿉친구이며 동급생이다. 하지만 지금은 소꿉친구라는 개념은 안드로메다 은하의 옆집에 머물러 있는 듯 조금이라도 건들이면 폭발할 기세였다.
“하하, 거짓말이야. 안 봤어 안 봤어.”
“그럼 색깔은 어떻게 안 거야?”
신이치는 발 밑에 있던 공을 다시 왼손으로 잡아 올리고선 말했다.
“간단한 추리야.”
신이치는 오른손의 검지를 치켜올렸다.
“그 첫 번째. 어제는 란의 17번째 생일이었다. 그 두 번째 별거중인 란의 엄마가 보내온 선물, 너희 아빠가 맘대로 열어보고 있었어.”
“아빠가?”
“응, 너희 집 아래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주인에게 선물을 꺼내 보이며 불평을 하는 걸 들었거든. ‘이런 야한 속옷은 아직 란에겐 일러.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라고 말이야.”
란은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은 아닌 듯 하였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엄마를 좋아하는 란이니 생일 다음날인 오늘, 그 속옷을 입을게 틀림없지.”
마지막 세 번째까지 들은 란의 얼굴은 ‘이건 토마토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곧 폭발하였다.
‘쾅’
란은 신발장 옆의 약간 튀어 나온 콘크리트 벽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냥 오른손으로 세게 친 것 뿐이지만 벽에는 약 2m정도 금이 가 있었다. 란은 공수(가라데)부 주장. 따라서 주먹의 파괴력은 상상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
“그게 무슨 추리야! 아빠하고 주인 언니하고 하는 말 듣고 말하는 것 뿐이잖아. 끝에만 약간 추리지. 아빠는 쓸데없는 짓을 잘도 하고.”
“뭐, 뭐 그렇게 화내지는 마. 아저씨도 나쁜 의도는 없었을 거야.”
라는 말을 하며 신이치는 자신의 신발장을 열었다. 하지만 곧 ‘으악’이라는 소리와 함께 신이치는 뒤로 넘어졌다. 수십통이 넘는 러브레터가 신발장 안에 들어있었고 신발장을 여는 순간과 함께 신이치의 몸을 이불처럼 덮어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머리로 떨어진 편지들 중에는 금속으로 된 상자도 있어 신이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여전히 인기는 폭발적이네.”
“좀 도와 달라고 란.”
“자기가 정리하면 될 것이지. 그런 편지 몇 통쯤은.”
란은 한쪽 구석으로 들어가 팔짱을 끼고 편지를 주섬주섬 줍고 있는 신이치를 내려보았다.
“냉정하네...”
“냉정한 건 신이치의 쪽이잖아.”
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을 하였다.
“요즘은 주지도 안잖아. 생일선물. 어릴 때에는 잊지 않고 주더니. 셜록홈즈의 사전이라던가, 셜록홈즈의... ”
“모르겠단 말이야. 고등학생인 여자가 갖고 싶어 할만한 것 따위.”
란은 이 대답을 듣고선 뛸 듯이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 유원지 가고 싶어. 트로피컬 랜드.”
“트로피컬 랜드?”
“그거, 저번에 말했었잖아. 내가 공수(가라데)대회에서 승리하면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나 트로피컬 랜드에 가고 싶어.”
“싫어. 어린애도 아니고.”
신이치는 생각해 보면 꽤나 상처를 줄 수 있는 소리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란에게 쏘았다. 란의 표정은 웃음을 지을 때 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찡그려졌다.
“잠깐, 잠깐. 아침부터 부부싸움이야?”
“좀 하지마. 이상한 말 하는 거.”
신이치와 란이 티격태격 하는 중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채 끼어든 이 사람은 란의 동급생 그러니 역시 신이치의 동급생도 되는 스즈키 소노코(鈴木 園子)다. 갈색 단발에 붉은 머리띠를 맨 소노코는 촐랑거리게 생긴 것과는 달리 스즈키 재벌의 딸이다. 즉 엄청난 부자란 거다.
“아, 소노코. 란이 너랑 같이 트로피컬 랜드에 가고 싶다고 하던데.”
신이치는 란의 공격을 굴절시켜 소노코에게 돌렸다.
“나는...”
“나는?”
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노코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는 소노코랑 갈래. 가자 소노코. 수업에 늦겠다.”
란의 속마음은 절대 신이치에게 전달되지 않는 듯 하였다. 게다가 란을 삐치게 하였다. 공수(가라데) 부장에게 저렇게 반심을 보였다가 어쩌다 밤에 퉁퉁 부어 있는 채로 학교 앞에서 발견되면 그건 99.9% 신이치의 잘못이다.
“란 녀석 왜 화를 내는 거지?”
아니 100%다. 100% 신이치의 잘못이다.
[모리탐정사무소]
라고 창문에 흰색으로 페인트칠을 해둔 사립 탐정 사무소. 이곳은 란의 아버지인 모리 코고로(毛利 小五郎)가 하는 탐정 사무소이다. 하지만 간판만 탐정 사무소지 실은 지금 이런 사건이나 맡고 있다.
“알겠습니다. 슌사쿠의 행방은 반드시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큰 붕어에 타신 것처럼. 아니 큰 배에 타신 것처럼 안심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슌사쿠를.”
뭐, 의뢰는 있는지 한 30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모리탐정사무소에서 사건을 의뢰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 유괴사건이나 행방불명이 된 사건인 것 같았다.
그 여자는 핸드백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서 모리탐정에게 내밀었다.
“이게 슌사쿠와 제 사진이에요.”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모리는 여성을 친절하게 내보내고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사진을 보았다.
“슌사쿠는...”
“슌사쿠는 뭐가 슌사쿠야! 이따위 일이 이 모리 코고로님이 받을 사건일 것 같냐! 정말이지.”
책상위에 내팽겨져 있는 슌사쿠의 얼굴에는 털이 많았다. 흰색 털이었다. 눈은 카메라 플래쉬 때문인지 반사광 때문에 만화 캐릭터 같았다. 코는 검고 수분이 많아 보였고 수염도 꽤 있었다.
아주 튼실한 ‘강아지’다.
모리는 책상을 한바퀴 돌아 20인치 TV만한 냉장고로 가서 허리를 숙여 맥주를 2캔을 꺼냈다. 그리고 허리를 폈다. 그때 모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이돌의 포스터. 바로 모리가 광팬인 요즘 뜨고 있는 아이돌 ‘오키노 요코’였다.
“헉, 나란 녀석은. 요코가 나올 시간이 아닌가.”
이런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모리는 책상위에 앉아 TV를 켰다. 마침 TV에서는 오키노 요코의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신작 드라마의 촬영 중이라고 들었는데요.]
[네 저 오키노 요코가 처음으로 탐정역에 도전합니다. 그러니까 잘 지켜봐 주세요.]
이런 진행자의 말과 동시에 오른쪽 위에는 ‘화제선취(특종) 명탐정 코인’ 이라는 문구가 떴다.
“에~에~에~! 요코가 탐정역?”
[탐정역을 준비하는데에 있어서 참고가 되신 분이 있으세요?]
진행자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모리는 맥주 한 모금으로 TV에 취해 있었다.
“응, 응, 응. 역준비.”
“그 분은.”
[그 분은.]
“명탐정이신.”
[명탐정이신.]
여기까진 맞았다. 역시 명탐정 모리 답게 요코가 하는 말을 2초 앞에서 다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는 알아 맞출 리가 없었다.
“모리 코고로씨 입니다.”
[쿠도 신이치군이에요.]
얼굴이 붉어져 웃고 있던 모리는 눈썹을 깔고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빈 캔들을 책상 밖으로 밀쳐냈다.
[대 팬이에요. 꼭 만나 보고 싶어요.]
라는 말고 함께 또다시 오른쪽 가운데에는 신이치의 사진과 -쿠도 신이치 17세- 라고 떴다.
“제길, 그 꼬마 녀석.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욱 주목받다니...”
모리가 남아있는 한캔의 맥주를 땄다. 그러나 모리의 입에 들어가기 싫은 맥주들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앗, 차거 차거. 으앗 단벌양복이 다 젖었잖아!”
그리고 다시 제단(데이탄)고등학교.
한명의 교사와 30명의 학생들이 2-B 교실 안에 있었다.
“잊은 물건은 없도록 해주세요. 아, 그리고 예정 외로 담임선생님이신 타츠미 선생님의 입원기간이 길어진 관계로 내일부터인 수학여행도 임시교사인 제가 인솔하게 되었으니 뭐, 잘 부탁 드립니다.”
담임선생님은 착실해 보였다. 하지만 나대기 좋아하는 고등학생 2학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키타지마 선생님이 우리를 인솔한다니 초~불안!”
한 여자아이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깔깔거렸다.
“저기 뭐, 어쨌든 여러분들도 제단(데이탄) 고등학교의 학생으로써 책임을 갖고 즐거운 수학여행이 되도록 합시다.”
“다행이다.”
란이 한쪽에서 수학여행 정보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나중에 배운 것을 보고서로 작성해아 되니까 잘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착실한 키타지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었다.
란은 왼쪽 창가에 앉아 있는 신이치를 봤다. 신이치는 정보지로 비행기를 접어서 창 밖으로 날렸다. 그리곤 입을 쩌억 벌려 크게 하품을 하였다. 지겨운 모양이다. 란의 표정도 안쓰러워졌다.
“이상입니다. 뭔가 질문 있으세요?”
말은 학생들 모두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경이 빛이 났다. 신이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뭐, 하품을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는 것 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키타지마 선생님은 하교명령을 내렸다. 아이들도 이 명령정도는 잘 듣는 듯 했다.
탁 타닥 탁 타다닥.
같은 시각 어디선가 들려오는 컴퓨터 자판을 치는 소리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두운 방에서는 수족관의 금붕어 4마리만이 자유가 허용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손에 장갑을 낀 채로 컴퓨터의 자판을 계속 두드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러 가지 반도체들과 쿠도 신이치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컴퓨터에는 워드가 열려 있었고 이렇게 쓰여 있었다.
-쿠도 신이치에게의 도전장 (工藤 新一への 挑戦状)-
그리고 컴퓨터 옆에 있는 신이치의 사진에는 왼쪽 볼에는 나이프가 꽂혔다.
“아, 기대된다.”
란이 앞서가고 있는 신이치를 따라 잡으며 말했다.
“같이 여행 가는 거 초등학교 졸업여행 이후로 처음이지?”
란의 양손에는 수학여행 정보지가 들려 있었다.
“내일은 도착하고 미술관 돌고, 그다음엔 아시호수. 밤에 자유시간은 음~ 아, 신이치 특별히 가보고 싶은데 있어?”
“......”
무시당했다.
“신이치, 듣고 있어?”
“응, 나 말이야 내일 수학여행 패스니까.”
“에... 어째서?”
“시간이 아까우니까.”
란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그 때문에 정보지는 약간 구겨졌다.
“그런 것 보단 실제의 사건 쪽이 훨씬 더 공부가 되거든. 인간이나, 이 세계에 대한 것들 말이야. 자, 그럼 재미있게 놀다가 와.”
“신이치...”
란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쿠도]
신이치의 아버지의 이름이 걸린 문패가 달린 이 거대한 저택은 신이치의 집이다. 너무 넓어 3사람이 살기에도 넓지만 지금은 신이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외국에 나가 있어 신이치는 혼자 이 집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다.
해가 떨어지고 기온이 점점 내려가자 신이치가 집의 대문 앞으로 걸어왔다. 신이치가 대문 앞으로 다가왔을때 문 틈 사이에 끼인 종이가 바람에 날려 신이치의 발 밑에 떨어졌다. 편지였다. 신이치는 허리를 굽혀 편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적혀 있는 걸 읽었다.
눈동자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편지의 맨 앞장에 인쇄된 글씨체로 -쿠도 신이치에게의 도전장- 이라고 적혀 있어도 말이다.
그때였다. 뒤쪽 풀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신이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인기척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큰 바람이 불었다. 땅에 떨어진 풀잎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거리로 날아갔다. 그제서야 신이치는 입을 떼었다.
“재미있겠구만.”
신이치의 입꼬리는 왼쪽으로 약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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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편 완결
(아 여기서 發은 발단의 '발'자 입니다. 소설의 5전개식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쓰려고 합니다. 잘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