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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Claude Monet 1840.11.14 ~ 1926.12.5)
자료 1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파리 출생. 소년시절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세 때 그곳에서 조각가 로댕을 만나, 외광(外光) 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사귀었다. 2년간 병역을 치르고 1862년 파리로 귀환, 글레르 밑에서 A.르누아르, A.시슬레, F.바질 등과 사귀며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G.쿠르베나, E.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으나, 점차 밝은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런던으로 피신, 이때 J.터너, J.콘스터블 등의 영국 풍경화파의 작품들에 접했다. 이것은 명쾌한 색채표현이란 점에서 커다란 기술적 향상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72년 귀국,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살면서 센 강변의 밝은 풍경을 그려, 인상파양식을 개척하였다. 74년 파리에서‘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 협회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12점의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출품된 작품 [인상 : 일출(日出)]이란 작품 제명에서 인상파란 이름이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 이후 86년까지 8회 계속된 인상파전에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편 78년에는 센 강변의 베퇴유, 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작품은 외광(外光)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 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倂置)’를 이행하는 등, 인상파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하려는 그의 작화(作畵)의도는 [루앙 대성당],[수련(睡蓮)]등에서 보듯이 동일주제를 아침, 낮, 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소풍:The Picnic],[강:The River]등의 작품도 유명하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다가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자료 2 빛의 느낌을 그대로 클라우드 모네 인상파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화가가 모네이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빛의 흐름을 그는 일순간에 포착해 캔버스 위로 옮겼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빛의 화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빛의 마술에 걸려 일평생 빛만을 찾아 헤맸던 모네의 작품 세계를 엿본다.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모네에게서 출발했다. 어느 신문기자가 모네의 작품 ‘인상, 해 뜨는 광경'을 본 후 그가 느꼈던 시각적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 용어의 의미가 내포하는 뜻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전통적인 회화 양식의 표현 수단을 상실한 모네를 비롯해 많은 인상주의 예술가들을 공격하기 위한 반감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네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모네만큼 빛을 사랑하고 동경한 화가는 일찌감치 없었다. 희뿌연 아침 안개와 빛으로 물드는 일출의 바다, 수많은 은비늘처럼 태양의 빛에 반짝거리는 포플러 가로수, 신이 내리는 빛의 변화에 시시각각으로 옷을 갈아입는 자연의 모습은 모네에게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마법을 걸고 말았다. 그는 언제나 사물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창조보다 빛에 의해 변화되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가족과 함께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주어진 어린 시절의 주위 환경은 자연 속에서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의 빛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모네는 동네에서도 그 실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고, 당시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던 화가 부댕에 의해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모네를 훌륭한 화가로 만든 대부분의 특질들은 이 때부터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는 종교적인 것을 믿지 않았고,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다른 어떤 것도 믿지 않는 고집쟁이였다. 모네는 화가란 대상의 존재를 단지 실제적이고, 현존하는 것만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상상력에 의한 변화란 그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용납되지 않았다.
모네의 작품 속에는 찬란한 빛과 풍부한 색채가 살아 숨쉰다. 비평가들은 모네의 거친 밑그림과 색채에 대해 회화의 기초도 모르는 초보자라며 맹렬한 비난을 일삼기도 했다. 하지만 모네는 사회적인 명예나 권위보다는 적의와 역경에 자극을 받는 성격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네에게 빛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었고, 그는 이 집념을 고집스럽게 지켜 나갔다. 모네는 자연의 변화에 민감했고, 자연이야말로 빛과 색채의 변화를 표현하는 최상의 소재라고 생각했다. 86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모네는 오직 자연의 빛만을 찾아 헤맸다. 수시로 변화하는 일순간의 빛들을 담기 위해 끊임없이 화폭을 메워 갔다. 그래서 모네에겐 어떤 주제를 그릴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빛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과제였다. 1868년부터 모네는 세느강을 그의 회화에 중앙 무대로 끌어들이게 된다. 세느강은 모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고, 세느강을 통해 들어오는 형태와 색조, 리듬과 빛에 의해 투영되는 물살의 움직임에 그는 감동했다. 모네는 인상파의 거장답게 놀라울 정도의 정확한 눈과 손놀림을 갖고 있었다. 집념 어린 관찰을 통해 그는 촌음을 다투는 자연의 변화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른 것이었다. 세느강변에 앉아 모네는 순간적인 이미지를 포착하며 자연의 떨림을 재현해 내기 위해 그에 어울리는 붓터치를 터득해 나갔다. 거칠고 강한 붓터치, 극심한 색조의 굴곡은 바로 이 같은 모네의 경험적 토대 위에 형성되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모네의 이 같은 작업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같은 사물을 대하면서도 빛에 의해 변화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그가 보았던 순간의 빛, 그리고 그 빛에 의해 반사되는 사물의 형태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상태를 포착하기 위한 그의 눈과 손은 항상 자연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수련]을 통해서 보는 모네의 회화기법 1890년, 노년의 모네는 지베르니에 머물면서 노년기의 예술혼을 불태운다. 이때부터 사망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모네가 그렸던 주제는 연못 위에 피어 있는 ‘수련'이었다. 모네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수련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하나의 주제를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시간의 움직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빛과 색채를 그대로 그리고 싶어했고, 그것을 위해서 모네는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관찰하며 연작을 그렸던 것이다. [수련]을 통해 우리는 모네가 갖고 있는 몇 가지 회화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첫째, 모네는 붓놀림이 매우 빠른 화가였다. 철저하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모네는 그가 붓질을 시작한 첫 장소에서 무조건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일단 시작한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에겐 내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일의 빛은 또다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붓놀림은 필연적으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팔레트에서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서 직접 색을 혼합했다. 이는 빠른 속도로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한 까닭이기도 하다. 또 색조의 선명한 효과를 위한 의도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셋째, 풍부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햇빛으로부터 생동감을 부여받은 사물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밝고 풍부한 색감을 사용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