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의 마라의 죽음과 드보라의 마라의 죽음
김광한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과 폴 자크 에메 보드리(Paul Jacuus Aime Baudry)
“샤를로트 코르데” 1860년 낭트 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루불 박물관에 가면 다비드란 화가가 그린 여러점의 대형 그림이 걸려있는 것을 볼수가 있다. 다비드는 당시 이름 높은 화가였는데 그는 노틀담 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식을 대형화폭에 담아 2개를 그렸다. 지금 그 한점이 루블 박물관에 있고 또 한점은 베르시이유 궁전 로비에 전시되어있다. 루불 박물관에 전시된 마라의 죽음에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의 역사가 배경이 되어있다.1792년, 루이 16세의 폐위 후 프랑스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된다.설상가상, 급진적 공화제를 주창하는 자코뱅(Jacobins)과 이에 반대하는 온건파 지롱드(Gironde)의 대립은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전체를 공포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프랑스 전역에서는 급진파와 온건파를 지지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생겨나 그들간의 무력 충돌은 하루도 빠질 날이 없었다.
당시 프랑스는 내부적인 문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국경 지역에서는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의 군대가 호시탐탐 프랑스 내부로의 진격을 노리고 있었고 전의를 상실한 프랑스 혁명부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불안, 외부적으로는 프로이센의 침략에 허덕이고 있던 프랑스는 곧 침몰하고 말 배의 형국이었다.
이때, 정치적 일간지 '인민의 벗'의 창간자이며 급진적 자코뱅파인 장 폴 마라(Jean-Paul Marat)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천 여명 이상의 정치범들을 즉각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한다. 대내외적 불안 요소를 반대세력의 제거를 통해 해소하고자 했던 계획이었다. 결국 루이 16세를 비록한 수 많은 정치범들이 길로틴에 의해 목이 잘리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피의 살육'이 자행되었다.이때 등장한 것이 목을 한번에 자르는 길로틴, 즉 교수대였던 것이다.교수대 아래는 매일 정적이나 반대파 사람들의 목이 잘려 딩굴고 있었다.자코빙 당의 당수인 로베스피엘은 개혁을 한답시고 수많은 정적을 개혁의 이름으로 살해를 한 것이다.이때 살육의 뒤에 숨어있던 인물이 바로 인민의 벗의 창간자인 장 폴 마라였던 것이다.마라는 죽음을 선동하는 수많은 글을 써서 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던 것이다.로베스피엘은 정국이 안정이 되자 정적의 손에 의해 역시 단두대로 끌려가 목이 잘려졌다.
수 많은 이들의 황망한 죽음 뒤 찾아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라의 바람대로 프랑스는 안정을 되찾는 듯 하다 다시금 자코뱅과 지롱드의 더 큰 대립으로 결과 없는 일이 되고야 말았다.오히려 사회적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이에 대한 책임은 '피의 살육', 그 시발점에 있었던 마라에게 쏠리게 된다.온건파인 지롱드의 열렬한 지원자인 25세의 여성 샬로테(Charlotte Corday) 역시 이러한 생각을 품었고 오직 마라에 대한 응징이 파리와 프랑스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샬로테는 거짓 청원서를 꾸며 마라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심한 피부병을 앓던 마라는 자주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했으며 바쁠 때는 욕조에서 업무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경비가 매우 허술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마라와 대면한 샬로테는 방심한 틈을 타 그의 가슴에 단도를 꽂는다.프랑스 역사가 새롭게 씌여지는 순간이었다.그럼 화가들은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 보았을까?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마라의 친구인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는 누구보다 그의 죽음에 애통해 했다. 죽음의 순간에도 놓치 않은 오른손의 펜은 그가 진정한 지식인임을 나타내고 소박한 나무 상자는 그의 검약한 정신을 표현한다.그리고 거기에 쓰여있는 '다비드가 마라에게(바친다)'라는 글귀는 작가의 마라에 대한 경외마저 배어있다.그러나 다른 화가 보드라의 그림에는 범인 샤롯데가 들어있고 샤롯데의 정의로운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드보라는 정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죄없이 죽인 마라를 용서할수가 없었던 것이다.개혁이란 이름으로 애국자들을 감옥에 처넣고 형법에도 없는 무제한 형량을 선고하게 만든 문씨와 판사의 얼굴은 나중에 어떻게 묘사될까? <부접(浮蝶)의 화사(火死)>란 제목으로 문씨와 헌재 이정미를 비롯한 반역도당 8명 그리고 김세윤 같은 자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모습이 뭉크(화가)가 그린 공포처럼 화폭에 담겨져 있지 않을까?분명 저들의 즐거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부접이란 부나비를 말한다.
오직 개혁만이 최선이다란 생각에서 억울한 죽음을 양산했던 마라,그러나 그는 거짓은 없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손석희란 자의 데불릿 피씨를 근거로한 허위 날조 방송으로 대통령이 탄핵이 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고 그 가운데 손석희란 자가 양심도 없이 오늘도 차분한 목소리로 거짓을 뇌까리는 방송을 하고 있다.마치 폴란드 소재 아슈비치 수용소 소장이어었던 헤스란 자가 태연하게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고 근무처인 수용소로 나와 수많은 유대인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스실로 보내 죽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만족해 하는 그런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이 우리 사회를 휘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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