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 뚫는 하산 길
우는 풀벌레
아랑곳하지 않고
풀이 시드네
鳴くむしの心ともなく草かれて
―― 이이오소기(飯尾宗祇, 1421~1502)
▶ 산행일시 : 2016년 8월 27일(토), 맑음, 폭염
▶ 참석인원 : 14명(버들, 악수, 챔프, 소백, 상고대, 사계, 두루, 맑은, 신가이버, 해마, 승연,
대포, 마초, 메아리)
※ 전날 치킨을 갖고 오겠다고 한 해피 님을 4분 더 기다려주고 출발했다.
신가이버 님은 치킨 때문에 오늘 산행을 참석했다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산행거리 : GPS 도상 13.2km(1부 4.6km, 2부 8.6km)
▶ 산행시간 : 8시간 7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56 - 횡성군 둔내면 조항리 히미기재, 산행시작
10 : 10 - 796.4m봉
10 : 23 - 주봉(周峰, 827.3m)
10 : 57 - 웰리힐리 골프장 앞 도로
11 : 15 ~ 11: 45 - 양지말, 1부 산행종료, 점심, 동박골로 이동
12 : 18 - 능선마루
12 : 34 - △778.7m봉
13 : 20 - 781.1m봉
13 : 38 - △835.7m봉
14 : 22 - 송전탑, 임도
14 : 45 - ┳자 능선 갈림길, 1,037m봉, 헬기장
15 : 40 - Y자 능선 분기봉(960m), 오른쪽으로 감
16 : 00 - Y자 능선 분기봉(885m), 오른쪽으로 감
16 : 36 - 임도
17 : 03 -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방의동 앞, 세아가족수련원 입구, 산행종료
17 : 52 ~ 19 : 30 - 횡성, 목욕, 저녁
21 : 56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주봉 정상에서, 사계 님의 사진 찍는 폼은 여러 사람 웃게 하는 일품이었다
2. 오음산, 2부 산행 중에
▶ 주봉(周峰, 827.3m)
계절이 하루 사이에 바뀌었다. 불과 하루사이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막연하게 예상은
하였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그 맹렬하던 여름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버스 에어컨을 켜지 않
고 서울을 빠져나간다. 서울의 온 시민이 가만있지 않는 것 같다. 해방을 맞이한 기분이 아닐
까? 잠실대교 건너 88올림픽대로가 차량행렬로 빡빡하다. 나들이 겸하여 추석 즈음한 벌초
하러 가는 행렬이리라 판단한다.
횡성 가는 길. T맵은 우선 서울춘천고속도로로 갈 것을 권한다. 여기도 거대한 주차장이다.
서종IC를 지나도 별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가평휴게소 지나서 풀린다. 중앙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한강기맥 만대산, 오음산의 당당한 모습을 바라보고 삼마치터널을 지난다. 횡성. 조
항천을 조항1교로 건너고 산기슭 좁은 농로를 위태롭게 돌아 멈춘다.
여기 오는 동안 차안에서 산행준비는 마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산행이다. 당귀밭 사이 농
로를 지나 히미기재(?) 오르기 전 오른쪽 묵은 임도를 간다. 풀숲 이슬 헤친다. 이슬의 차디
찬 감촉이 상쾌하다. 임도 끝은 묵밭이다. 밭두렁에는 뚱딴지가 무성하다. 뚱딴지 헤치고 산
기슭 덤불숲 뚫어 생사면에 붙는다. 산 기운이 삽상하다. 이런 날은 정처 없이도 걷고 싶다.
살랑살랑 이는 바람에 새 시절의 도래를 느껴 초목은 춤을 추고 풀벌레는 다투어 찬양한다.
한 피치 올라 능선마루, 히미기재에서 오는 능선과 만난다. 등로의 인적은 흐릿하다. 적적한
소나무 숲길이다. 그러나 오솔길이 아니라 잡목이 우거졌다. 특히 개옻나무가 많다. 그 검문
을 피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개옻나무가 진(陣)을 친 데 이르러서는 에라 하고 육탄으
로 뚫는다.
796.4m봉. 여전히 하늘을 가린 숲속이다. 좌우 사면을 누벼보지만 해찰부릴 일이 생기지 않
는다. 796.4m봉에서 완만하게 내렸다가 가파른 오르막 한 피치를 바짝 힘쓰면 주봉이다. 우
리가 초등이 아닌가 싶다. 정상 표지석이나 표지기 등 아무런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지명유래집』(중부편)에서 설명하고 있는 주봉이 고도가 턱없이 달라 이 주봉인지 의문이
다. 이 주봉은 고도가 827.3m이다.
“횡성군 둔내면 두원리·우용리·조항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612m). 봉우리가 둥글고
수려하여 두루봉 혹은 주봉(周峯)이라고 부른다.”
하산. 태극문양(신가이버 님은 오늘 산행을 태극종주 같다고 했다)을 그리며 크게 돈다.
메아리 대장님의 향도로 나무숲 우거진 밀림을 간다. 다래나무의 축축 늘어진 덩굴은 밀림의
운치를 더한다. 몇 걸음만 뒤처지면 일행들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연호한 응답으로 방향 잡
는다. 풀숲 헤치고 머리 내미니 웰리힐리 골프장(지도에는 오스타골프장이다) 앞 대로다.
대로 따라 양지말로 내리고 조항2리 경로당 앞마당에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경로당은 휴
관 중이다. 그래도 화단에는 과꽃, 맨드라미, 금불초가 환히 피었다. 과꽃을 보면 장모님 생
각이 난다. 장모님은 과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옛날 이사가 6개월 도리로 잦던 시절 장
모님의 이삿짐 중 빠지지 않는 것이 과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화단에는 가을이면 과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장모님이 저 세상으로 가시고 과꽃도 소원하게 되었다.
3. 만대산, 삼마치터널 지나기 전에
4. 주봉 들머리인 히미기재(?) 가는 길
5. 주봉 가는 길
6. 웰리힐리 골프장
7. 조항2리 경로당 화단에 핀 과꽃
8. 조항2리 경로당 화단에 핀 금불초(金佛草)
▶ 1,038.2m봉, 헬기장
2부 산행. 차로 동박골 입구까지 이동한다. 500m 거리다. Y자 갈림길에서 오른쪽 농로 따라
가다 부추밭 농가 지나고 산모퉁이에서 풀숲 헤치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늘 벗어난 가파른
오르막은 숨 가쁜 한여름이다. 그렇지만 온몸 적시는 땀방울이 시원한 느낌이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을 벌목하여 변발한 모습의 산등성이를 오른다.
33분 올라 능선마루다. 일부 일행은 산판 길 따라 사면 질러가서 봉봉을 넘지만 일로직등 한
다. 능선에 서면 산들바람이 감미롭다. 나뭇가지로 원경을 살핀다. 매화산, 치악산 비로봉이
가깝고 백운봉, 용문산, 봉미산이 뚜렷하다. 금물산, 오음산, 만대산이 분명하지만 바위 슬랩
이 보이는 삼봉은 산경표를 들이대도 모르겠다.
△778.7m봉. 풀숲과 흙에 묻혀 있는 삼각점은 ‘425 재설, 77.8 건설부’이다. 송전철탑 지나
고 벌목지대에서 벗어난다. ‘표때봉 가는 길’이라 쓴 표지판이 땅에 놓여 있지만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능선마루는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져 감히 뚫지 못하고 사면으로 비
켜간다. 봉봉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상당히 심하다.
781.1m봉 오르고 능선이 합류하는 면계(둔내면, 안흥면)를 간다. 오늘은 그 성가시던 하루
살이와 파리는 물론 모기도 없다. 도리어 심심하다. 봉우리 2개 넘고 △835.7m봉이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표지기는 4개가 매달려 있다. 그중 하나는 문정남 님의
11,111개 산 등정기념 11,714번째 산 표지기다. 오래 휴식한다. 오늘도 얼음물은 아주 맛
있다.
이런 산행 속도이면 하산시간이 너무 이를 것 같아 속도조절을 당부하는데 일단 배낭 매면
관성의 줄달음이다. 발걸음으로 태극문양의 아랫부분을 그리는 중이다. 송전철탑 지나고 산
허리 도는 임도와 만난다. 능선마루 절개지는 높은 절벽이다. 오른쪽 산모롱이로 돌아가서
덤빈다. 거의 수직사면이다. 비로소 산을 가는 것 같다. 암벽 볼더링 흉내하여 잡목 붙들고
오른다.
1,037m봉. 풀숲 헬기장이다. 가장자리에 ‘자유를 위하여’ 비가 있다.
“1951년 3월 5일,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펼쳐진 1037고지 전투에서 유엔군 소
속 프랑스 대대원 28명이 전사하고 1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혹한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
운 프랑스 대대는 값진 승리를 거두었지만, 문재터널까지 전사자 및 부상자들을 후송해야 하
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늘 우리의 이 즐거운 산행은 오로지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 묵념한다.
9. 능선을 태극문양으로 돌아 저 앞 능선을 간다. 가운데 봉우리는 문재 가기 전 오봉산
10. 아름드리 잣나무 숲을 벌목한 사면
11. 전경은 웰리힐리 골프장
12. 능선을 태극문양으로 돌아 저 앞 능선을 간다. 가운데 봉우리는 문재 가기 전 오봉산
13. 앞 왼쪽은 죽림산
14. 멀리 오른쪽은 오음산, 왼쪽은 금물산, 성지봉
15. 가운데 바위 슬랩이 보이는 산은?
16. 매화산 너머 치악산 비로봉
17. 멀리 왼쪽은 백운봉, 가운데는 용문산
▶ 하산, 방의동 앞, 세아가족수련원 입구
1,037m봉은 ┳자 능선 분기봉이다. 오른쪽은 오봉산 넘어 문재로 간다. 우리는 왼쪽으로 간
다. 전인미답의 길처럼 가시덤불 섞인 풀숲이 우거졌다. 허리를 넘는 풀숲이다. 더구나 풀숲
밑바닥에는 예전에 간벌한 나뭇가지가 덫으로 깔려 있다. 쭉쭉 내려야 하는 길이 풀숲 헤치
느라 더디다. Y자 능선 분기봉인 960m봉에서 군계(횡성군, 평창군)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간다.
한참 선두인 신가이버, 챔프, 소백 님 등이 이 Y자 능선 분기봉인 960m봉에서 군계 따라 왼
쪽으로 잘못 갈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즐거워 할 준비를 마쳤는데 아쉽게도 올바르게 갔다.
그들이 풀숲 뚫은 길을 따라 간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대단한 잡
목과 풀숲이다. 미리 도상으로 산행할 때는 여기가 손맛 좀 볼 수 있는 대목이다고 확신했다.
웬걸, 당장 등로 개척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역줄나무덩굴 숲이 환상적이다. 순전히 팔심으로 간다. 그래도 912.9m봉 넘어 쭈욱 내린
Y자 능선 분기봉인 885m봉에서는 더 긴 오른쪽으로 간다. 울창한 풀숲은 계속 이어진다. 능
선마루 임도 절개지는 절벽일지 몰라 미리 왼쪽 사면을 지쳐 내린다. 임도에서 잠시 숨 고르
고 다시 능선을 잡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청태산이 바로 눈앞에 장벽으로 보인다. 낮은 자세
하여 잡목 숲을 헤치고 개울 건너 가드레일 넘으니 산행종점인 방의동 입구 대로다.
(부기 #1)
입방정을 떠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간 성할 때가 없었던 산행이 오늘은 모처럼 멀쩡했
다. 독나방이나 독충, 모기 등에 물리지 않았고, 쐐기나 벌에 쏘이지도 않았다. 나무 그루터
기나 바위에 정강이를 부딪치지도 않았다. 챔프 님이 벌에 쏘이고 정강이가 피나게 부딪치며
내 대신했다. 엎어지거나 넘어지지도 않았다. (발목인대가 늘어나) 험로와 상관없이 시도 때
도 없이 접질리는 오른쪽 발목이 오늘은 한 번도 접질리지 않았다.
(부기 #2)
며칠 전에 걸린 장염이 낫지 않아 약간 고전한 산행이었다. 산행 중 잠깐씩의 복통에 시달려
야 했고 화장실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난제는 산행을 마친 횡성 외곽의 음
식점에서 있었다. 생더덕주를 마셔도 괜찮을까 이었다. 악우(岳友)가 아니라 악우(惡友)였
다. 괜히 술을, 그것도 찬 술을 마셨다가는 절대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느니, 드시라, 죽어 때
깔도 고울 테니. 더덕주를 따뜻하게 데워 주랴 하는 등 온통 내 곤혹스런 상황을 즐기는 데
재미 들렸다.
그러나 마셨다. 장을 알코올로 소독하는 셈 치고 마셨다. 며칠간 술을 참았던 탓도 있겠지만
생더덕주가 여느 때보다 더 맛있었다. 흔히 횡성의 특산물로 산더덕과 한우를 꼽는데 다 그
근거가 있었다. 이튿날 어땠을까? 가뿐하게 장염이 다 나았다!
18. 1,037m봉 헬기장
19. 1,037m봉 헬기장에 세운 ‘자유를 위하여’ 비
20. 하산 길에 미역줄나무덩굴 숲을 뚫는 중
21. 죽림산
22. 죽림산
23. 풀숲 뚫는 하산 길
24. 자작나무 숲
25. 임도에서 휴식 중
26. 횡성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바라본 봉화산(670m, 왼쪽)과 덕고산(705m)(?)
첫댓글 악수님 날 같네요.
-다리도 짱짱하게
-벌레들도 피해가주고
-술도 장염을 데려가준 ..최고의 날입니다!
---생신날?---
축하드립니다.
14년8월30일 오도산 두무산행이후 좋은 날씨였습니다.
가뿐하게 장염이 다 나았다
주입니다.
이튿날 어땠을까
명약은 역시
수고하셨습니다.
악수님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 여전하시군요 ^^ 근데 마지막 사진은 치악산과 매화산 줄기 같은데요.
구름재 님 반갑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그렇네요. 역시 그 동네에 사시니.^^
왼쪽은 천지봉, 오른쪽은 비로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