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가격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들은, 조작 지시를 받고 거짓 통계를 만들어내야 했던 한국부동산원 조사원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원은 부동산원 조사원들이 속한 부동산원 노동조합이 2019년 가을 경찰 정보관에게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가격 통계에 외압을 가하고 있다’고 제보한 정황을 입수했다고 17일 밝혔습니다.
그러나 제보를 전달받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실질적으로 외압을 막는 조치를 했다고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관련 부서에 “부동산원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공무원·조사원들은 청와대와 국토부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원치 않게 통계를 조작하면서도, 그 불법성을 거듭 지적하는 한편으로 조작의 내막을 보여주는 기록들을 남겼다고 합니다.
감사원 관계자는 “국토부 실무자들과 부동산원 직원들로부터 확보한 진술과 기록이 수천 쪽 분량”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청와대와 국토부 고위층이 통계 조작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압력을 넣으면서 한 말들을 온라인 메신저 등에 적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전 보고한 아파트 가격 상승률 통계 중간 집계값에 대한 고위층의 반응과 분위기, 하달된 지시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각 고위 관리가 통계 조작과 관련해 어느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5일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 중간감사 결과를 발표한 감사원은 보도자료에서 청와대와 국토부,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들이 지난 정부 당시 주고받은 카톡과 대화 메시지 다수를 날짜까지 특정해 공개했다.
“뭐라도 분석해야 한다. 자료 다 들고 와라”거나 “협조 안 하면 예산과 조직을 날려버리겠다”“한 주만 더 마이너스로 해달라. 이대로면 저희 다 죽는다” 등 감사원이 확보한 은밀한 대화들은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쓰였다.
감사원은 언론 브리핑에서도 “로그 기록과 카톡 등 구체적 증거로 확인한 통계조작 횟수만 94회”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같은 증거 자료의 대부분은 실무진들이 동의서와 함께 제출한 휴대폰에서 확보됐다. 실무진들은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윗선을 가리켰다.
별다른 증거 인멸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청와대와 국토부 압박에 시달렸던 일부 부동산원 직원은 감사원에 “의혹을 밝혀줘 고맙다”는 말까지 전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그렇게 한 단계씩 밟아가며 의혹의 정점으로 불리는 장하성·김상조 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전 경제수석,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조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실무진과 달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조작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휴대폰도 내지 않았다. 조사 과정에서 직업 공무원 출신인 ‘늘공(늘 공무원)’과 정치인 및 학자 출신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입장이 갈렸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감사원과 관가 내부에선 이런 차이에 대해 “월성원전 사태의 영향”이란 말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2019년 10월부터 1년 가까이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당시 공공기관 감사국장으로 원전 감사를 지휘했던 게 유병호 현 감사원 사무총장이다.
감사 과정에선 백운규 전 장관이 월성 1호기 폐쇄 직전인 2018년 4월, 한시적 가동 필요성을 주장한 산자부 공무원에게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냐, 너 죽을래”라고 말한 사실도 공개됐다. 이후 백 전 장관과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원전 조기폐쇄 압력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세종 관가에서 주목했던 건 이런 윗선이 아닌 원전 업무를 담당했던 산자부 국장과 과장, 서기관의 구속이었다.
이들은 감사원 조사 직전 원전 관련 자료 수백 개를 삭제한 혐의로 2020년 12월 구속됐고, 올해 1월 1심에서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까지 유죄가 확정되면 공직이 박탈되고 연금도 절반으로 깎이게 된다.
감사원이 이번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국토부 실무진의 대화 중엔 통계조작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판 원전 사태가 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산자부 공무원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며, 국토부 내 분위기도 술렁였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과 국토부 및 부동산원 실무진들이 통계조작 의혹과 관련해 여러 증거를 보존해둔 것도, 결국 자신들 역시 부당한 지시를 받은 피해자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 보고 있다.
세종시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문재인 정부 원전 사태를 보며 공직 사회가 느낀 것이 두 가지 있다”며 “하나는 어차피 다 드러난다는 것이며, 둘째는 부당한 지시를 따르면 피해는 결국 늘공이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박태인 기자
출처 : 중앙일보. 주고받은 은밀한 대화 남겨뒀다…'어공' 뒤흔든 '늘공'의 증거
어쩌다 공무원이 되 ‘어공’들은 자신들의 임기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늘 공무원으로 정년을 채워야 하는 ‘늘공’은 자신의 문제가 언제 어디서 들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윗선의 지시에 쉽게 응할 수가 없습니다.
시킬 때는 다 책임을 지고 할 것처럼 하다가도 일이 발생하면 아래로 떠미는 것이 공직사회의 한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사람들이 감사원의 발표를 ‘정치 공작’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명백한 증거들이 있는 한 그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