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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남 창원시 동읍 | |
높이 | 567m | |
주봉 | 봉림산 |
고려시대 웅천지방(현재의 진해시)에 왜구의 침입이 잦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군사를 훈련하였던 곳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 야포부대가 이곳에서 훈련하고, 6·25전쟁 중에는 미군이 우수
령에 방어선을 쌓은 적이 있어 군대와 관련이 많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봉림산 또는 징산이라고도 부르며, 옛날
에는 전단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정상에 이르기까지 봉우리가 5개나 겹쳐 있어 정상을 찾기 힘든데, 한자로 봉림산이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는 곳
이 정상이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용추고개·비음산·대암산을 거쳐 용지봉까지 이어지며 정상에서 바라
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한때 봉림산·전단산·징산이라 부르게 된 유래가 전한다.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文)》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진경대사가 이곳에 봉림이라는 절을 지었고, 통일신라 말기에는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봉림산파의 중심사찰 봉림사와 그에 딸린 사찰이 여럿 들어서 불교가 융성하자 고려시대 이후에 불교의 요람이라
는 뜻으로 전단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문헌상의 봉림사터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한편 창원시가 펴낸 《창원의 전설》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이 산은 본래 봉림산이라 불렸고 지금의 이름은 1920년
에 일제가 5만분의 1 군사 작전지도를 작성할 때 고친 것이다. 또 징산이라는 이름은 천지개벽 때 산 정상에 징 하
나를 얹을 정도만 남겨 놓고 모두 물에 잠긴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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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의 경남도청사 뒤편에 있는 정병산(일명 봉림산)은 산꼭대기가 국도와 부마고속도로변에 치우쳐 있어 마산
이나 그 부근을 통행할 경우 이 산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널찍하고 툭트인 도로와 바둑판 같이 구획
정리가 된 주택가 부근 곳곳에 숲지대가 있어 창원시는 독특한 도시의 멋을 풍긴다. 도심의 용지(龍池)가 물에 뜬
집들을 품고 있음을 정상에서도 볼 수 있다. 도시의 남쪽 끝간 하늘엔 신기루처럼 남쪽바다와 섬들이 떠 오를 것
같다.
산속에서는 물을 구할 수가 없으니 미리 준비를 하야하고 오름길을 잘못선택하면 된비알에 기력을 억수로 쏟아부
어야 한다. 정병산으로 알고 올라가보면 바위덩어리 위에다 세운 정상비에는 鳳林山(봉림산)으로 적혀있다. 그러
면 산밑에서 처다볼 적에는 정병산이라고 부르고 산꼭대기를 올라가면 봉림산이라고 불러야 하나보다.
봉림산에서 북쪽으로 내려다 보면 동서로 가로지르는 물줄기 못미처 두개의 물웅덩이가 보이는데 동서로 가로질
러 흐르는 낙동강하류에 뚝방을 막는 바람에 철새들의 물고기가 오고가지를 못하여 씨가마르는 바람에 그곳에서
쉼터를 잡고 놀던 철새들이 몽땅 다른곳으로 이사가고 일부만 바로 앞에보이는 조남저수지로 몰려든다. 때를 잘
택하여 산행후 철새도래지인 조남저수지에서 철새들의 날개짓도 구경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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