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묘미
홍 영 택
죽는 날까지 사업을 한다는 그는
애인을 만나는 마음으로 출근한다나
휴일은 신바람이 난다네
휴식은 일하는 사람의 몫
정년 퇴임 후 빼앗긴 휴식
백수가 되어보니 알 듯하다
휴일을 기다리던 그 설렘 그 낭만
휴식의 즐거움은 수고에서 태어나고
휴식의 맛은 노력에서 나온다
밥값을 해야 밥맛을 안다.
그대들이 어이 알리
낭만의 달콤한
이 설렘을
----홍영택 시집 {오상}에서
일은 모든 생명체들의 먹이활동이며, 이 세상의 삶의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을 자고 휴식하는 것이 다 일에 의해서 결정되며, 따라서 모든 싸움과 질투와 시기와 중상모략과 심지어는 전쟁마저도 일자리를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도 밥그릇 싸움의 장소이며, 이 밥그릇 싸움의 최종적인 승자는 가장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많이 아는 자는 명령하는 자가 되고, 적게 아는 자는 복종하는 자가 된다. 많이 아는 자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창조자가 되고 타인들을 자기 자신의 가치창조에 복무시키지만, 적게 아는 자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창조는 커녕, 타인들의 명령에 복종하며 겨우 목구멍에 풀칠이나 하는 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일은 그의 육체성을 보존해주는 것은 물론, 그의 사회적 지위와 그의 미래의 행복까지도 다 보장을 해준다. 나무와 식물은 그 열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직업으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
홍영택 시인의 [휴식의 묘미]는 정년퇴직을 한 시인이 그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과 휴식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아주 진한 감동과 그 깊은 울림으로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죽는 날까지 사업을 한다는 그는/ 애인을 만나는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그 근면과 성실함의 끝에서 맞이하는 휴일을 어느 누구보다도 즐겁고 기쁘게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휴식은 근면 성실한 사람의 몫이지, 날이면 날마다 할 일 없이 시간이나 죽치고 있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가난한 시골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라는 좌우명으로 동남아로, 중앙 아시아로 죽자사자 외화벌이에 나섰던 시인, 결혼을 하고 처자식이 생기자 대기업의 정유회사에 취직을 하여 정년퇴직을 했던 시인----. 이제 홍영택 시인이 산업현장에서 밀려나 백수가 되어보니, “휴식의 즐거움은 수고에서 태어나고/ 휴식의 맛은 노력에서 나온다/ 밥값을 해야 밥맛을 안다// 그대들이 어이 알리/ 낭만의 달콤한/ 이 설렘을”이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시절의 휴식의 달콤함과 낭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일은 휴식으로부터 그 힘을 얻고, 휴식은 일로부터 그 열매를 맺는다.
자연의 서기관이자 신학문의 개척자였던 프란시스 베이컨, 기독교의 천지창조론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진화론을 정립했던 찰스 다윈, 군자의 도덕으로 유교사상을 창출해냈던 공자,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 비판철학의 창시자인 칸트,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시타인, 정신분석학의 아버지인 프로이트, 디오니소스 철학의 창시자인 니체----,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기존의 모든 전통과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사상가, 즉, 전인류의 스승들로서 자기 자신의 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 찰스 다윈,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 아인시타인, 프로이트, 니체 등의 이름은 천하제일의 일꾼의 보증수표이며, 그 이름으로 ‘전인류의 스승이라는 월계관’을 쓴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 인간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실할 수가 있겠으며, 한 인간이 언제, 어느 때나 ‘영원한 청춘’처럼 자기 자신의 열정을 다 바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휴식의 즐거움을 알겠는가? 일은 성실함의 목표가 되고, 휴식은 일이 끝난 다음의 삶의 즐거움이 된다. 운명에의 사랑은 일에 대한 사랑이며, 이 운명에 대한 사랑은 그 일을 얼마나 즐겁고 기쁘게 하고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적인 삶’이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경제적 판단이 아닌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이 삶의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의 행복의 지수로 평가를 받게 된다. 모든 일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은 전적으로 내가 창출해내고, 내가 향유해야할 예술적 자산이기도 한 것이다.
일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고, 행복은 그 연출자의 자기 만족의 원리라고 할 수가 있다. 내가 만족하면 천하가 다 내것이 되고,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천하의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이 진짜 명인과 명장들만이 전인류의 스승인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