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은 그 말에 웃을 뿐이었다.
현준은 은영을 택시에 태워 금오산 가는 길 선상카페로 데려갔다.
분위기가 은영을 들뜨게 했다.
처음 남자는 강도, 두 번째 남자는 노숙자,
세 번째 남자는 백말 탄 왕자님이었다.
두 번의 남자가 스쳐지나간 가슴에
노을 빛에 물든 파도가 밀려들었다.
쏴-쏴- 쉴 사이 없이 밀고 들어서는 남자의 밀어가
은영을 황홀케 했다.
은영이 연애도 분위기가 있는 것이란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귓속을 후비고 지나는 현준의 입김이 뜨거웠다.
은영은 무너지면 안 돼!
쉽게 문어지면 안 돼!! 아픈 과거가 돌처럼 씹혔다.
“오늘 잘 먹었어요.
다음에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예, 조심해서 가세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현준도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 했다.
☆☆☆
은영은 벚나무 줄지어선 금오천 방천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환경이 얼마나 무서운가, 옛날의 은영과 오늘의 은영은 너무너무 달랐다.
영숙이 은영에게 사업장을 가지면
좋은 남자들이 줄을 선다고 한말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지나간 일들일랑
지워지지는 않을지언정 묻어야 한다고 은영은 생각했다.
☆☆☆
은영과 현준은 양가의 승낙을 얻어
목련 피는 봄 결혼을 했다.
그러나 행복에도
행복을 심술 놓는 마(魔)가 있었다.
은영의 딸 혜주가 100일이 되는 날 현준은
서울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 교통사고로
은영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은영에게 사랑은 아픈 것이었다.
내력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은영은 운명이란 걸 아니 꺼내 볼 수가 없었다.
대대로 내리 외동딸만 낳는 내력.
아비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내력
은영은 앞으로의 운명이 두려웠다.
영숙은 은영에게 팔자 고칠 생각 말고 혜주만 잘 키우라고 했다.
“내 팔자가 그런 겨”
“그려 니 팔자가 그렁께 그리 알고 그렇게 혀”
“어매가 우째 고쳐 줄 수 없남”
“남의 복은 끌로도 못 판다고 혔다. 그런데 무슨 수로 고치겠냐!”
☆☆☆
은영이 말은 그리했어도 팔자 고칠 생각은 없었다.
어찌 거나 혜주만은 고아아닌 고아로 크지 않게 하리라 다짐했다 든 자리는
표가 없어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현준이 없는 집은 철창이었다.
십자매 둥지에서 수컷이 죽어나간 철창처럼
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밤마다 기도하듯 혜주를 바라보며
은영은 속살을 꼬집었다.
남자 냄새 남자의 단맛을 느낄 쯤이라
은영에게 밤은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젊은 여자에게 유혹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은영은 남자라는 남자 그 자체가 무서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