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82년입니다. 어느덧 42년이 지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교 입구에는 교가가 돌에 새겨놓은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교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진세(塵世)를 버렸어라. 이 몸마져 버렸어라. 깨끗한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성신의 그느르심 아늑한 이 동산에 우리는 배우리라 구원의 베리스타(VERITAS)" 저의 사제 성소는 두 가지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정의 분위기입니다. 5대를 이어오는 천주교 집안이기에 삶의 중심에는 늘 '성당'이 있었습니다. 하교는 안 갈 수 있어도, 주일 미사는 빠지면 엄하게 혼났습니다. 첫영성체 교리를 배워야 했고, 기도문을 다 외워야 했습니다. 부활과 성탄 때는 숨이 막힐 정도로 꽉 찬 성당에서 미사참례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일학교 친구들입니다. 신학교에 가겠다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저도 친구들과 함께 신학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같은 본당 출신 3명이 신학교에 들어갔고, 사제의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교가에 나오는 대로 진세를 버리고, 이 몸마저 버리고,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치지는 않았지만, 큰 과오 없이 여기까지 온 것만도 하느님의 크신의미심장합니다.
오늘의 본기도는 이렇습니다.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게 하소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늘 우리 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는 길은 나의 거짓된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낡은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낡은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과 공기가 늘 우리 곁에 있듯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장소의 개념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단의 개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식은 3차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단순한 3차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버리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모든 권한과 능력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첫 번째 제자들도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셨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말처럼 모든 것을 버릴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가치 있고, 소중하며, 참된 행복을 주는 그런 자리를 찾았으며 좋겠습니다. 그런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분명 빛이 나는 자리는 아니었고, 물질적인 이익이 보장되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그 길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2025년의 1월도 많이 지났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