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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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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사랑방 나의 애장품 ㅡ 중국 난계 제갈팔괘촌에서 사온 '寧靜致遠' 부채
浮雲 추천 0 조회 19 26.06.16 01:19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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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6.16 01:21

    첫댓글 난계 제갈팔괘촌(蘭溪 諸葛八卦村)은 중국 절강성(저장성) 난계시(란시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제갈량 후손 집성촌이다.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의 27대손인 '제갈대사(諸葛大師)'가 원나라 시기에 기틀을 잡고 창건한 마을로, 현재도 주민의 대다수가 제갈씨 성을 쓰고 있다.

  • 작성자 26.06.16 01:22

    이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제갈량이 군사 진법으로 활용했던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陣)'을 마을 구조에 그대로 녹여냈기 때문이다.

  • 작성자 26.06.16 01:23

    마을의 구조를 살펴보면 왜 이곳이 '팔괘촌'으로 불리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종지(鐘池)'라는 태극 모양의 반음반양(半陰半陽)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을 중심으로 8개의 주요 골목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미로 같은 길을 만드는데, 이것이 '내팔괘'이다.

  • 작성자 26.06.16 01:25

    신기하게도 마을 구조뿐만 아니라,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외곽의 작은 산봉우리 8개가 자연스럽게 호위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이를 '외팔괘'라고 부른다.
    ​가가호호 벽을 맞대고 좁은 골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외부인이 가이드를 받지 않고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이다. 옛날부터 "도둑이 들어와도 길을 못 찾아 붙잡힌다"는 말이 전해진다.

  • 작성자 26.06.16 01:26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이 중국 대륙을 휩쓸었지만, 제갈팔괘촌은 묘하게 화를 면했다.
    ​1925년 북벌 전쟁기에 마을 주변에서 3일 밤낮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나, 신기하게도 마을 안으로는 포탄이나 총알이 거의 떨어지지 않아 고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 작성자 26.06.16 01:27

    ​일제강점기(항일 시기) 일본군이 마을 바로 옆 큰길(고륭강)을 지나가면서도, 지형적 특성과 기묘한 배치 때문인지 이 마을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일화가 있다.

  • 작성자 26.06.16 01:28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고건축 박물관'처럼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다. 하얗게 칠한 벽과 검은 기와(휘파 건축 양식)가 연못에 비치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승상사당(丞相祠堂)은 제갈량과 가문의 선현들을 모신 곳으로, 정교하고 섬세한 목조 조각이 일품이다.

  • 작성자 26.06.16 01:30

    ​대공당(大功堂)은 강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제갈량(무후) 기념 건축물이다.
    ​제갈량의 후손들은 대대로 한의학(중의학)에 종사한 이들이 많아 관련 박물관이 있으며, 거리에서는 제갈량의 발명품으로 전해지는 '공명자물쇠(루반잠)'나 '제갈우선(깃털부채)' 등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 작성자 26.06.16 01:32

    영정치원(寧靜致遠)은 중국 고전인 《회남자(淮南子)》와 제갈량의 《계자서(誡子書)》에 등장하는 아주 깊이 있는 명구이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寧 (편안할 영):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하다.
    ​靜 (고요할 정):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다.
    ​致 (이를 치): 도달하다, 이루다.
    ​遠 (멀 원): 멀리 보다, 원대한 목표를 이루다.

  • 작성자 26.06.16 01:34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만 먼 곳까지 생각하고 원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의미이다

    ​이 말은 단순히 '조용히 쉰다'는 뜻이 아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유혹, 혹은 마음속의 조급함과 잡념을 가라앉히고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 작성자 26.06.16 01:37

    이 글귀는 보통 다음 문장과 한 쌍으로 묶여 자주 쓰인다. 제갈량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인 《계자서》에 나오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어야(淡泊) 뜻을 밝게 세울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야(寧靜) 먼 곳에 이를 수 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인 중심을 잡고, 장기적인 혜안을 갖고자 할 때 서예 작품이나 좌우명으로 가장 사랑받는 문구 중 하나이다.

  • 작성자 26.06.16 01:43

    부채의 대나무 살(변죽)에 새겨진 글귀는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제갈량을 기리며 지은 유명한 시 〈촉상(蜀相)〉의 핵심 구절이다.

    兩朝開濟老臣心
    ​兩朝 (양조)는 두 조정. 즉, 유비(선주)와 유선(후주) 두 임금의 시대를 말한다.
    ​開濟 (개제)는 나라를 창업하고(開), 위기에서 구제하다(濟).
    ​老臣心 (노신심)은 늙은 신하(제갈량)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각각 뜻한다.

  • 작성자 26.06.16 01:44

    三顧頻煩天下計 (삼고빈번천하계)
    ​三顧 (삼고)는 유비가 제갈량을 초빙하기 위해 초막을 세 번 찾았던 '삼고초려'를 뜻한다.
    ​頻煩 (빈번)은 자주, 번거롭게 거듭함 (유비가 인재를 얻기 위해 극진히 정성을 들인 모습)을 뜻한다.
    ​天下計 (천하계)는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지 다툰 계책 (그 유명한 '천중대책')을 의미한다.

  • 작성자 26.06.16 01:45

    두 구절을 매끄럽게 이어 보면 다음과 같은 깊은 뜻이 된다.

    ​"삼고초려로 자주 찾으시어 천하를 바로잡을 계책을 물으셨고,
    유비와 유선 두 조정에 걸쳐 나라를 세우고 구하려 애쓴 것은 오직 늙은 신하(제갈량)의 충정 어린 마음이었네."

  • 작성자 26.06.16 01:46

    '영정치원(寧靜致遠)'이 제갈량 본인의 삶의 철학과 내면의 태도를 보여주는 글귀라면, 부채 살에 새겨진 이 시 구절은 후대의 역사가와 시인이 제갈량의 평생의 업적과 충의를 최고의 문장으로 찬사한 내용이다.

  • 작성자 26.06.16 01:50

    ​제갈량의 후손들이 사는 마을에서 구한 이 두 글귀가 함께 담긴 부채에는 제갈량이라는 인물의 '내면적 수양(영정치원)'과 '외적인 실천 및 충절(삼고빈번~)'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이다. 부채를 펼치고 접을 때마다 촉한을 향했던 제갈공명의 장엄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 작성자 26.06.16 01:51

    부채의 뒷면이 아주 백미인데 제갈량의 문집 《계자서(誡子書)》의 원문 전체가 정성스럽게 서예로 담겨 있다. 이 글은 제갈량이 54세 때, 당시 8세였던 아들 제갈첨(諸葛瞻)에게 정서적 수양과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하며 보낸 편지이다.

  • 작성자 26.06.16 01:54

    ​諸葛亮 〈誡子書〉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무릇 군자의 행동은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르는 것이다. 마음에 욕심이 없고 맑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정성스럽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이르지 못한다. 무릇 배울 때는 모름지기 고요해야 하고,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어지는 법이다.

  • 작성자 26.06.17 14:06

    ​非學無以廣才 非志無以成學
    淫慢則不能勵精 險躁則不能治性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뜻이 없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방종하고 게으르면 정신을 가다듬어 힘쓸 수 없고, 조급하고 경솔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 작성자 26.06.17 14:06

    年與時馳 意與日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守窮廬 將復何及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의지는 날마다 사라져 가니, 마침내 가을날 초목처럼 시들어 떨어지면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때 가서 슬프게 곤궁한 초막이나 지키고 있은들, 장차 되돌리려 한들 어찌 미치겠는가 (후회해도 소용없다)

    諸葛亮誡子書 諸葛裔人 封樹 제갈량의 계자서를 제갈량의 후손(예인)인 '봉수'가 쓰다.

  • 작성자 26.06.16 02:00

    ​이 부채는 "젊은 시절에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寧靜) 학문에 정진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초목처럼 시들었을 때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제갈공명의 절절한 인생 조언이 한 자루에 압축된 '작은 서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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