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직업음악가입니다.여기 계신 고수님들같은 일반 애호가들과 소통하는걸 좋아해서 괴짜소리를 많이 듣는 직업음악가에요.ㅎㅎ
보통 오케스트라 작업(저는 이 표현을 즐겨씁니다)을 시작하면 스코어부터 가져다 놓고 전반적인 곡의 형태 파악을 합니다.
이 스코어를 펼쳐보면 교향곡의 번호가 올라갈수록 작곡가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실하게 느낄수 있는데
그 중 말러의 변화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집니다.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 되는게 팍팍 느껴진다고 해야할까요? ㅎㅎㅎ
1번 교향곡 도입부의 모든 파트에게 A(맞죠?)를 부여하는 깡따구에서 말러라는 작곡가는 자신의 교향곡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라인의 황금 도입부의 오마쥬정도가 아닌가 느껴지는데 암튼 이렇게 교향곡1번을 시작하더니 6번쯤 가면 도입부부터 카오스 그 자체이고 8번에 가서 정점을 찍어버리죠.그리고 마지막 9,대지,미완성에가서는 다시 덜 복잡하고(아니 덜 복잡하진 않네요...그냥 뭔가 부풀려진 오케스트라가 다이어트를 한 정도?)관조적인 음악으로 바뀌죠.
제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말러교향곡은 5번이었습니다.물론 한국에서도 대학오케스트라등으로 1번을 해본적은 있지만 좋은 단원들과 함께 제대로 작업한건 저 5번을 최초로 칩니다.그때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던게 당시만해도 유학생활 1년6개월 차라
말도 잘 못할때였는데 원래 수석오보에를 연주하기로 한 친구가 gustav mahler jugend orchester의 단원으로 갑자기 발령이 나는 바람에 저에게 이런 큰자리의 행운이 돌아왔던거였어요. 첫 리허설 불과 1주일 남겨놓고 연락이 왔는데 이런 큰 프로젝트를 독일에서 해본적도 없고 언어도 안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주일동안 정말 많이 연습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선 리허설할때 마딧수를 못알아들을까봐 스코어를 통째로 외워갔었습니다.사실 말러빠에 가까운 저에게 스코어를 익히는건 아주 어려운건 아닌데(물론 지휘자님들처럼 이 부분에 무슨 화성이 있고 어떤 악기가 중요한 음이고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지독한 작센주 사투리를 쓰는 지휘자양반의 "552마디 반 박자전!"같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말도 후딱후딱 캐치할수 있었어요. 물론 저를 제외한 나머지 단원 전부다 유럽인이고90%이상이 독일인이었기때문에 지독한 외로움이랑 싸워야하긴 했지만 그런건 무대위에서 맛보는 쾌감에는 비할바가 안되서 쉬는시간에도 스코어 보고 파트연습하고 뭐 그랬죠 ㅎㅎㅎ
덕분에 그런 훈련이 몸에 베어서 그 이후로는 늘 스코어 공부부터 하게 되었으니 저에겐 전화위복이 아닌가 싶네요.
아무튼 말러5번은 저에게는 가장 행복한 교향곡입니다. 말러4번에서의 천상의 삶은 말러가 그저 한낱 꿈꾸는 그런 판타지에 불과했다면 5번에서는 말러 스스로가 현실세계에서 체험한 행복이 고스란히 적혀있으니까요.그래서 5번의 1,2부에 해당하는 1-3악장과 3부에 해당하는 4,5악장은 따로 떼어놓고 들어도 무방하지만 이런 부조리함이 말러의 음악을 더 매력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이때 아주 기억에 남는 부분은 3악장 중간에 아주 짧은 오보에 페시지가 하나 있습니다.제가 나름의 방식으로 연주를 준비해서 리허설을 했는데 지휘자가 "너 거기 써있는게 무슨 뜻인줄 알아?"라고 묻길래 잘 모르면서도 대충 안다고 말하고 나중에 찾아봤더니
"schuechtern"이라는 단어였습니다.한국말로 하면 부끄럽게,수줍게 정도예요.ㅎㅎ 그런데 독일친구들이 참 신기한게 제가 그 단어의 뜻을 알고 그 이후부터 딱히 달라진것도 없는데, 오직 그 뜻을 알기만 했을뿐인데 주변 친구들은 바로 웃으면서 "너 이제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았구나?"라고 얘기해주더군요 ㅎㅎㅎ 참 음악하는 사람으로써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그로부터 몇년후 Mahler10의 판본으로 조금 이름이 알려진 Yoel Gamzou와 다시한번 5번을 작업하게 됬는데 그 친구의 정말 ㅈㄹ맞은 템포변화에도 무리없이 연주를 소화하기도 했어요.ㅎㅎ
요엘군은 6살때 말러를 듣고 이 곡을 지휘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지휘자가 된 그야말로 미쳐도 단단히 미친 말러리안인데 이 친구와는 말러10번 본인판본의 연주로 International Mahler Orchestra에서 연주했습니다. 아주 까다로운 지휘자이고 본인이 더
기괴하게 어레인지를 다시해서 세상에 내놓은 말러10번인데 당시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정말 세계각지에서 많은 연주자들이 비스바덴으로 날아왔습니다. 이 (당시나이 23)애송이 지휘자의 엄청나게 많은 짜증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무브먼트를 일으킨다는 사명감(?)에 다들 꾹 참아가면서 열심히 연주하던 당시 단원들의 모습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제 인생 최고의 5악장 플룻솔로도 당시 수석 연주자를 통해서 들었구요.지금은 Royal Danish Orchestra수석첼리스트가 된 친구의 마지막 솔로도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레코딩도 했는데 음반화 되지 않은게 참 아쉽네요...아마도 지휘자 성에는 까마득하게 안찼나봅니다.
말러 10번은 1악장만으로도 완벽한 단악장곡이지만 마지막 5악장이 본인 손으로 완성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듭니다.그 안에 있는 멜로디들과 처절한 감성들...부활이라는 곡을 스스로 작곡하기도 하고 9번을 통해서 이미 세상과 이별을 한 작곡가가 한번 더 힘을 내면서(스스로 부활이라도 할거라고 생각한걸까요?) 휘갈겨쓴 그 선율들은 너무 아프고 너무 아름다워서
연주하면서도 몇번이나 울컥하고 눈물나고 그러더군요...특히 5악장의 큰북 솔로 이후의 선율을 쿡 버젼처럼 튜바로 하지 않고 두대의 콘트라파곳을 이용한건 정말 기가막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또 아주 마지막의 알마쉬? 그런 단어가 써있는 큰 튜티 이후에 나오는 현악4중주(6중주인지 4중주인지 정확하겐 기억이 안나네요 ㅠㅠ)도 정말 너무 아름다웠구요...
요엘 감조우 본인도 언젠간 한국에서 꼭 연주하고 싶다고 얘기했으니까 한국에서 연주를 볼 날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그 까다로운 지휘자를 누가 부를지는 모르겠지만...엄청난 유태인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 친구니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굉장히 재미있는 친구에요.ㅎㅎㅎ 본인 스스로가 영국여왕을 알현한 최연소 유태인이랍니다.이유는 자기가 어릴때 영국에서 가장 큰 해리포터 팬클럽 회장이었다고...어릴때부터 미친 추진력하난 알아줘야해요 ㅎㅎㅎ 아 또 얘기가 산으로..ㅠㅜ
흠...생각보다 글이 길어지네요.한번에 다 쓰는건 힘들거 같아요.ㅠ_ㅠ 쓸데없이 기네요.두서없기만 한 주제에...
부득이하게 다음 이시간에....죄송합니다.ㅠ_ㅠ다음번엔 에셴바흐랑 작업한 말러8+노트와의 9번 중심으로 다시 이야기를 풀어볼께요. 안녕히들 주무세요!
첫댓글 결코 길지 않습니다. 단숨에 읽어버렸어요 ^^
그래도 너무 한꺼번에 올리지 마시고 천천히 풀어주세요 ㅎ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에 좋은 댓글...ㅜㅠ
하루를 이 글로 시작하네요.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하루를 이 글로 시작하네요. ^^ (2)
정말 흥미로운 비사(!)가 많으신 것 같네요. 우리 카페에는 오보이스트 님 같은 분이 더 많이 와주셔야 하는데...
애호가 입장이란 것도 있지만 당연히 연주자 입장도 있거든요. 뭐든 균형 잡힌 시각을 지녀야 할 것 같습니다.
글도 정말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많은 연주자분들도 각자의 수백개의ㅡ에피소드들과 개개인의 감성이 존재할터지만 아마 저처럼 글로쓰고 공유하는걸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겁니다. 오히려 저같은 사람이 배척받기 쉽상이죠 ㅎㅎ 여튼 저는 연주자이기 이전에 말빠이기 때문에 이렇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분들과 얘기하는게 참 좋아요 ㅎㅎ
와! 정말 재밌습니다.^^ 어디서도 듣기 힘든 얘기네요... 오케스트라 공연 볼 때마다 연주자 분들은 연주하면서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오보이스트님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글이 곡 해설 듣고 책 읽는 것보다 어떤 면에선 도움이 많이 되네요. 2편도 기대됩니다. 빨리 올려 달라고 재촉하면 실례겠죠? ^^ 다음 편도 기대됩니다.^^
곡해설,관련 책 읽는것도 연주자입장에선 너무 도움되는 부분이에요.한국에선 대부분 안그러지만 유럽친구들은 정말 어린 친구들도 말러를 연주한다고 하면 기본 상식들정도는 다 공부해서 오더군요.작품을 대하는 태도하니만큼은 정말 최고인듯...
재밌는 이야기보따리 같아요.
천천히 여러편에 걸쳐서 얘기해주세요.
열심히 해볼게요.감사합니당
오보이스트님의 글 무척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기대되는 칼럼이 될 것 같네요. 애독자로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넵 오늘이나 내일중으로 2탄을 기획해볼게요:-)
오보이스트님~재밌어요!!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오보에 악기 연주자에, 맛깔나게 쓰시는 글솜씨까지 매력이 슝슝~!!ㅎ
말러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시게 되는 이야기~연재 시리즈로 꼬옥 부탁드립니다.^^*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말은 많은데 글로 옮기기는 참 어렵네요.힘 써보겠습니당!
어떻게?! 노천까페에서 같이 커피 마시면서 도란도란 얘기해 주는듯이 생생하고 재밌고 편안하게 쓰시네요.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기대만땅 입니당^^
화려한 미사여구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글솜씨가 없는터라 부득이하게 이런 말투가 나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정말 재미있는 에세이 입니다
자주 해주시면 초보자인 저같은 사람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러 음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오보를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 5번 다시 들어보려고 합니다.
다음편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