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자가 선물 보낸 정관계 인사 최소 27명… 경찰, 명단 확보
100억원대 사기혐의 수산업자, 각계 로비의혹 확산
영장심사 포기뒤 로비대상 진술… 주변에 “뒷배경 든든” 인맥 과시
정치권선 ‘文정부 첫 특사’ 공방
수산업자 로비 파문… 경찰, 선물 건넨 27명 명단 확보
가짜 대통령 편지 전시 수산업자 김모 씨(수감 중)의 집에 문재인 대통령 부부 사진과 함께 청와대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술병과 술잔, 머그컵, 시계 등이 진열돼 있다(위 사진). ‘항상 고마운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꼭 다시 만나게 되길 기원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인쇄된 편지도 함께 진열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보낸 편지가 저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채널A 제공
《경찰이 올 3월 100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 수감된 수산업자 김모 씨(43)가 지난해 6월 이후 선물을 보낸 정치권과 검찰, 경찰 간부 등 최소 27명의 명단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검찰과 경찰 간부, 언론인뿐 아니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국정농단 사건의 박영수 특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김무성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가 포함되어 있다. 김 씨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접 보낸 편지가 있다”며 주변인에게 과시했는데, 경찰은 가짜 편지로 보고 수사 중이다.》
수산업자 김모 씨(43·수감 중)의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 씨가 선물 배달을 지시한 정치인 등 각계 인사 최소 27명의 명단을 전직 직원으로부터 확보해 조사 중인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올 3월 말 100억 원대 사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김 씨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돌연 포기하고 로비 대상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해 6월 이후 최소 27명에 선물 전달”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 포항에 있는 수산물업체 부림물산의 회장 명함을 갖고 다닌 김 씨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검찰, 경찰 간부 등에게 독도새우와 대게, 전복 등 수산물을 선물로 보냈다. 김 씨가 직원에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보내면 직원이 택배를 부치거나 직접 배달하도록 했는데, 이 직원이 휴대전화에 보관 중인 명단이 최소 27명이다. 여기에는 국정농단 사건의 박영수 특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김무성 전 의원, 사립대 전 이사장, A 검사, B 총경, 특검에 근무 중인 전직 검찰 수사관 등이 포함돼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TV조선 엄성섭 앵커 등도 있었다. 해당 직원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6월부터 김 씨를 도왔고, 선물을 직접 배달하면 사진을 찍어서 김 씨에게 보내고 택배로 부치면 송장을 찍어 보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또 “김 씨가 ‘내 배경에 힘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은 다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인맥을 과시했다”고 했다.
김 씨는 2017년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함께 했던 월간조선 취재팀장 출신의 송모 씨를 통해 김무성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를 소개받았다. 김 전 의원이 다시 이 전 논설위원 등 언론인을, 이 전 논설위원은 국민의힘 홍준표 김정재 의원 등을 김 씨에게 소개해 김 씨의 인맥이 크게 넓어졌다. 국민의힘 홍준표 김정재 의원도 “이 전 논설위원의 소개로 김 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각각 밝혔다. 홍 의원은 5일 페이스북에 “이 전 논설위원 소개로 2년 전에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라며 “그때 하는 말들이 하도 황당해서 받은 명함에 적힌 회사 사무실 소재를 알아보니 포항 어느 한적한 시골의 길거리였다”고 밝혔다. 김 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부림물산의 본사 소재지는 공터로 방치돼 있는 상태다. 홍 의원은 또 “처음 만나 자기가 포르셰, 벤틀리 등 차가 다섯 대나 있다고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줄 때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봤다”고도 했다.
김 씨가 정치인 등에게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꼭 만나고 싶다”고 부탁해 박 국정원장을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특검은 특검에서 함께 근무한 A 검사가 포항지청으로 발령이 나자 김 씨의 전화번호를 넘겼고,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고교 동문인 경찰대 출신의 B 총경을 김 씨에게 소개했다. 박 특검은 입장문을 내고 “약 3년 전 송 씨를 통해 김 씨를 처음 만났고 명절에 서너 차례 대게, 과메기를 선물로 받았으나 고가이거나 문제 될 정도의 선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은 점에 대하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박 특검은 2016∼2017년 국회의원 총선거 예비후보였던 송 씨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변호인을 지냈다.
○ “청와대 기념품과 ‘가짜 대통령 편지’ 집에 전시”
김 씨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사진과 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기념품을 집에 전시해 놓고 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편지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전직 직원은 “김 씨가 ‘대통령 선거 때 대선 캠프에 있었고, 자기가 선거운동도 했다’고 말했다”면서 “대통령이 김 씨가 포항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니 편지도 써줬다고 자랑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명의의 휴먼편지체로 인쇄된 A4용지 1쪽 분량의 편지에는 김 씨의 실명을 네 번이나 언급하면서 ‘사업의 성공을 기원한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편지가 청와대의 공식 서식과 차이가 있어 김 씨가 주변인에게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김 씨에게 어떤 서신이나 선물을 보낸 적이 없다”면서 “대통령이 보낸 편지가 저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씨가 2017년 12월 말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을 놓고 공방이 일었다. 김 씨는 2008∼2009년 사무장을 사칭해 서민 36명으로부터 “파산 선고와 면책 결정을 받아주겠다”며 수백만 원씩 1억6000여만 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2017년 5월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김 씨는 당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약 7년간 도피생활을 하고, 피해자 중 일부에게 9600만 원가량의 피해 금액을 돌려주겠다고 합의를 해놓고는 1050만 원만 돌려줬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할 때 사기꾼을 특별사면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피해 회복도 되지 않은 김 씨가 어떻게 특별사면이 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김 씨가) 1년 7개월 정도 형을 살아 형 집행률이 81%로 사면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사면한 것”이라며 “(야권의 의혹 제기와 달리) 청와대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포항=박종민 기자, 권기범 기자, 채널A=구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