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가족 24-9, 아직 할머니는 텃밭에 계신다
월평빌라는 경남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에 있습니다.
전성훈 씨는 월평빌라 301호에 삽니다.
월평빌라 인근에 전성훈 씨 할머니 댁이 있습니다.
차로 삼사십 분 남짓 걸리는데 주소는 함양입니다.
내비게이션에서 봉전마을회관을 찍고 가면 그 동네에 할머니가 삽니다.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가정의 달을 맞아 전성훈 씨 일이 많았습니다.
둘이나 되는 조카 어린이날 챙기고 할머니와 고모 어버이날도 챙기느라 몸도 마음도 분주했습니다.
먼저 문구점에서 축하 카드를 골랐습니다.
받는 대상과 기념하는 날에 맞게 몇 가지를 권하면 그중에서 전성훈 씨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습니다.
영 아니다 싶으면 재차 권하기라도 할 텐데 안목이 탁월했습니다.
언뜻 보는가 싶을 만큼 대충 고르는데 쏙쏙 예쁜 것을 가리켰습니다.
아이들 옷을 파는 가게에서 조카 선물을 사고, 스포츠 브랜드에서 할머니와 고모, 고모부 드릴 하얀 양말을 샀습니다.
우체국에 들러 구미 동생 집으로 조카 선물을, 울산 고모 직장으로 고모와 고모부 선물을 보냈습니다.
할머니 댁은 가까우니 직접 들르기로 했습니다.
깜짝 놀라게 해 드릴 요량으로 일부러 연락드리지 않았습니다.
너무 큰 이벤트를 준비한 탓일까요?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한껏 들뜬 마음에 바람이 빠지는 듯했습니다.
시무룩한 손자는 마당 구석에 걸터앉아 할머니를 기다렸습니다.
할머니는 ‘강 건너기 전에 있는 우리 밭’으로 오면 된다고 했지만 어딘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임 동료에게 전화해 물었지만, 밭이 어딘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할머니 텃밭을 찾아, 아니 할머니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이 할머니인가?’, ‘저분인가?’ 비슷한 파마머리 동네 할머니를 볼 때마다 움찔했습니다.
이분도 아니고 저분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가까이 가서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일 겁니다.
내리쬐는 햇볕에 이마와 등에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나중에는 등에 땀 한 줄기가 흐르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포기하고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앞집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전임 동료의 기록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수상쩍게 보았다던 그 어르신이었습니다.
전성훈 씨는 익히 아실 테고 모르는 얼굴이어도 젊은 총각이 옆에 있는 일이 익숙하실 듯해
말 한마디 여쭐 용기가 생겼습니다.
전성훈 씨를 앞세워 주춤주춤 앞집 할머니 가까이 갔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여기 전성훈 씨 할머니 뵈러 왔는데요. 아! 저는 이분이랑 동행했고요….”
“알아. 그래, 그래.”
앞집 할머니가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다 안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인자한 미소는 덤이었고요.
“전화를 한번 해 보지, 그래?”
“통화는 했는데 텃밭에 계신다고 하네요. 어디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저희가 자세히 몰라서요.
한참 돌아다니다가 다시 왔습니다.”
“아이고, 고생이 많네. 그래, 할머니가 혼자 일한다고 텃밭에 가셨어.
저기 저쪽으로 가다 보면 큰 나무가 있거든. 그 나무 밑에 어디 보면 할머니 텃밭이 있는데, 한번 가 보지 그래요?”
방향은 잡았다 싶어 감사하다 인사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할머니 사시는 마을, 여기도 큰 나무, 저기도 큰 나무인데 어떤 나무가 할머니 텃밭 옆에 있는 나무인지 모르는걸요.
나중에는 힘이 풀려 뒤처지니 전성훈 씨가 손을 뻗어 꼭 잡아끌었습니다.
다시 걷기를 한참, 가는 길에 강도 건너고 다리도 건넜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싶은 우리 마음이 일치할 때쯤, 다시 할머니 댁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집 할머니에게 아쉬운 소식도 전하고요.
“아유, 고생해서 어떡해요. 훈이한테 물어보면 알 건데. ‘할머니 밭에 가자’ 하면 아는데.
어릴 때 자주 와서 놀고 그랬는데….”
“그러게요, 할머니. 안 그래도 성훈 씨한테 물으니까 어디로 계속 가더라고요.
아는 것 같아서 따라갔는데 오랜만이라 헷갈렸나 봐요. 할머니 안 계시더라고요.
다음에 놀러 오면 텃밭 구경도 시켜 주세요. 필요한 일 있으면 저희가 도울 수도 있고요.”
“그래요. 또 와요. 고마워요.”
할머니 드리려고 준비한 카네이션 화분과 편지, 상자에 포장된 하얀 양말을 마루에 두었습니다.
혹시 못 보실까 싶어 이리 놨다 저리 놨다 하다가 마루 정중앙 문 열면 못 볼 수 없는 데다 조심히 내려 두었습니다.
편지에는 시원시원한 전성훈 씨 손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께. 어버이날 할머니 드릴 선물 샀어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2024년 어버이날, 사랑하는 손자 전성훈 올림.’
밭일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가 땀 닦으며 읽으셨겠지요?
앞집 할머니 앞에서 어깨에 힘 한번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쉽게 돌아왔습니다.
그날 스마트 워치에 할머니 찾는 손자 발걸음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1시간 46분 35초, 6.38km.
오래 두고 추억할 어버이날을 보냈습니다.
2024년 5월 8일 수요일, 정진호
에고…. 신아름
할머니 찾아 두 시간여 6km를 걸었군요. 헤맸다고 해야 정확하겠죠. 성훈 씨가 두 시간여 다니려면 마음이 내켜야 했을 텐데, 할머니를 꼭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나 봅니다. 못 봬서 아쉽지만, 두고두고 남고, 후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애쓰셨어요.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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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정의 달에 이래저래 챙길 사람이 많다는게 복입니다. 성훈 씨가 직접 선물과 편지 고르고 전하게 도우니 성훈 씨의 삶이고 일이네요. 도시 사는 총각이 시골 사는 어른의 언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예전에 소장님이 들려준 인디언의 시간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