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
이 광
하늘이 눈을 내리네
참 고요한 말씀이다
한 마디 또 한 마디
받아 적는 목마른 땅
포근히 감동에 잠겨
눈 그치자 눈부시다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목련
권영희
젖빛 새떼다
날기 위해 숨 고르는
봉긋한 사월이다
손차양하고 보는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를
봄이 쓰는 편지다
2007년 《유심》 등단
학도병
김희동
유월의 마당가에 떨어진 감또개를
손바닥 위에 놓고 지그시 바라본다
그날에 꽃답게 졌을 서럽도록 떫은 영혼
2007년 《월간문학》 신인상 등단
낙과
박미자
예견된 이별처럼
너는 떠나가고
새가 쫀 부리 자국
햇살 아래 선명하다
툭, 떨군
마지막 인사
온 하늘이 텅 빈다
2007년 《유심》,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
이서원
체로 걸러내고 바람에 풍구질하여
너덧 되 겨우 얻은 메주콩을 삶는 저녁
한 아름 구수한 냄새 온 마을이 들썩인다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목련이 돌아오는 골목
김진숙
봄을 논하기 전에 겨울을 배우라네
사랑을 탐하기 전에 마음을 키우라네
오늘은 여행자처럼 길을 잃어도 좋겠네
2008년 《시조21》 신인상 등단
지평선
최재남
떠안은 기도 무거워 주저앉은 하늘과
오르려 발버둥쳐도 어림없던 땅이 만나
달동네 골목에 보낼 달 한 덩이 낳는다
2008년 《시조21》 신인상 등단
사과꽃 와글와글
김용주
외갓집 과수원에
사과꽃이 피었어요
핑크빛 꽃무리가
와글와글 시끄럽자
벌들이 잉잉대면서
조용하라 타일러요
2009년 《시조세계》, 《대구문학》 신인상 등단
별점
정희경
스피드에 별점 하나
단맛에 별점 다섯
별로 주는 점수에
가게마다 별천지다
밤하늘 사라진 별들
도시를 휙휙 달린다
2010년 《서정과현실》 등단
풋
김덕남
뒷면을 돌려보다 길 밖에 길을 찾다
향기를 잡겠다고 바람을 따라간 날
씨앗을 날려버렸네, ‘풋’이 자꾸 달아나네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손톱깎이
조정희
조심조심 물어서
톡톡톡 밥 먹는다
딱딱딱 박자 맞춰
밥알을 씹는다
아래 위
두 개뿐인 이빨로
맛있게도 먹는다
2011년 《아동문예》 동시조 등단
노을 4곡曲
성국희
하루가 멀다 하고
당신께 뛰어들죠
헤엄도 못 치는 내가
무작정 드는 바다
아 나는
두렵지 않죠,
당신 안에 숨 멎는 일
2011년 서울신문,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우산의 말
이두의
검은 비 내리치는
흉흉한 날 손 내밀고
돋을볕 붉은 날엔
외면하는 사람아
겹겹이
접혀있는 얼룩
자꾸만 바스락댄다
2011년 《시조시학》 등단
외등
최화수
빛이 고픈 땅거미가
초저녁부터 보챈다
화색 흠씬 돌 때까지
외짝 젖을 내주느라
한잠도 못잔 저 어미
눈이 퀭한 새벽녘
2011년 《시조시학》 등단
단풍
김종두
그리움도 무거우면
하나씩 내려놓는다
던질 것 알고 나서
불태우기 시작한다
버려서 절정에 오르는,
저 고요한 다비식茶毘式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일출
박종구
양수로 가득 찬 몸,
치어들이 헤엄친다
몇 억만년 먹을 갈아
쏟아 놓은 물결 위로
어머니 온 자식 위해
일월 등을 밝히네
2012년 《월간문학》 등단
딸
이태정
너일 수 없으면서
너인 내가 되는 나
나일 수 없으면서
나인 네가 되는 너
너와 나
하나같으나
전혀 다른 남 아닌 남
2012년 《유심》 등단
호박이 굴렀네
김임순
잡풀 속 호박 넌출
명함도 못 내더니
절기 알람 된서리에
일제히 기절한 풀
세상에, 풀죽은 풀숲에
벌거벗은 달덩이
2013년 《부산시조》 《시와소금》 등단
거북이
류현서
평생 내내 덧대 기운 단벌 승복 고쳐 입고
깜깜한 바다에서 동안거 끝나던 날
짧은 목 길게 빼 들고 묵언만행默言卍行 나선다
2013년 《월간문학》 시조 등단
- 2024. 청도국제시조대회 거리시화전 『단시조의 향기』들풀시조문학관 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