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가족 24-10, 가까이 사는 손자
가까이 사는 손자가 있으니 좋습니다.
손자가 가까이 사니 좋습니다.
전날, 전성훈 씨가 울산에 사는 고모, 구미에 있는 동생과 연락하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까이 사니 더 자주 찾아뵙도록 거들었어야 했는데 전해 듣고 알게 되어 속상했습니다.
고모도 동생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전성훈 씨가 움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창에서 함양은 멀지 않고 다녀오는 데 부담도 없으니 내일 짬을 내어 들르겠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오빠가 그래 주면 감사하겠다’고 인사했습니다.
전성훈 씨를 따라 함양에 갑니다.
“연세가 있어서 기운이 없으신가 봐요.”, “여름철에 어르신들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가서 뵙고 나면 마음이 놓일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진중한 얼굴로 창밖만 내다보는 전성훈 씨 곁에서 재잘재잘 말을 붙였습니다.
덜 걱정하기 바라는 일종의 위로였다고 할까요?
시원한 음료를 미리 사면 가는 동안 식을까 봐 일부러 함양에 있는 마트에 들렀습니다.
‘챙기느라 고생하실까 봐 할머니 댁에 들를 때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양념치킨을 자주 사 갔다’던
전임 동료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깎지 않아도 되고, 먹기 좋게 다듬어져 있는 과일을 골랐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으로 기억하는 간식 몇 가지를 전성훈 씨가 직접 골랐습니다.
묵직한 상자를 들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어버이날 뵙지 못했던 일의 여파인지 전성훈 씨 발걸음이 할머니 댁에 가까워질수록
남몰래 주문 외우듯 속으로 중얼댔습니다.
‘제발, 제발, 제발…. 계시면 좋겠다, 계시면 좋겠다.’
네, 오늘도 할머니 댁은 고요했습니다.
할머니는 텃밭에 나가셨답니다.
아직 소개받지 못해 우리는 텃밭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괜히 미안하실까 봐 할머니에게는 근처 드라이브하다가 전성훈 씨가 할머니 생각이 나서 잠깐 들렀다고 했습니다.
오늘 간식도 마루에 두고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유, 미안해서 어짜노? 어디 드라이브를 왔대? 일이 많을 건데…. 저번에도 놔두고 갔더라고. 내가 고마버서….”
“할머니, 성훈 씨랑 또 올게요. 가까우니까 금방 왔다 갔다 합니다. 다음에는 미리 연락드리고 약속 잡아서 올게요.
점심 같이하시면 좋겠어요.”
“할머니! 할머니!”
“그래, 훈이가? 훈이 착하다. 할머니 보러 왔나? 또 오그래이. 알았제?”
“네에, 네에.”
두 번 연속으로 뵙지 못하고 돌아가니 아쉬움이 배가 되지만,
그래도 텃밭에 나가신 거 보면 할머니가 기력을 회복하신 모양이라고, 직접 뵈러 오기 잘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전성훈 씨는 별말 없이 창밖만 보았습니다.
그래도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아니요, 아닐 겁니다.
짐작에서 시작해 짐작으로 끝난다 해도 지금 전성훈 씨 기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저는 봤거든요.
할머니 댁 마당에서 할머니와 통화할 때 그제야 활짝 웃는 어떤 얼굴을요.
만날 때마다 깨끗이 닦으라고 할머니가 신신당부한 하얀 치아를 한껏 드러내고 웃는 그 얼굴을 말입니다.
2024년 5월 23일 목요일, 정진호
하하, 이번에도. 이번에는 하고 기대했는데 읽는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동생과 고모가 성훈 씨를 든든하게 고맙게 여기니 감사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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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손 무겁게 할머니 찾아뵙는 성훈 씨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