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화사의 빅뱅 같은 사건이다.
1892년 파리에서 '향기로운 봄'이란 이름으로 '춘향전'이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된 지 132년,
1906년 이인직의 '혈의누'가 출간된 지 118년 만에 한국문학은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이동했다.
이번 수상은 작가 개인의 영예일뿐 아니라 문학의 강에 몸을 던져 현대 한국어의 사상적 높이와
감정적 심층을 이룩한 작가, 번역가, 편집자의 영광이기도 하다.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에 긁직한 변화가 일어날 건 분명하다.
무엇보다 작가 개인의 주변 서사에 머물렀던 작은 문학을 넘어, 제주 4.3항쟁이나
5.18 민주화운동 같은 거대한 역사적 상처에 관한 문학적 탐구가 늘 것이다.
분단과 전쟁, 빈부 격차와 사회 분열, 자살과 차별 등 공동체 전체의 고통을 끌어안고,
이를 자기 고유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도 증가할 테다.
폭력이 가득한 세계에서 위기를 견디며 되살아나고, 죽음을 등지고 나아가는
강렬한 실존의 언어가 문학의 본령이자 인류 전체의 공통어임이 선연해진 까닭이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상을 받은 후, 우리 문학에 관한 전 세계적 관심이 급증하고,
해외 출판이 활발해지는 '한강 이펙트 현상'이 일어났다.
해마다 작품 수백 편이 해외에 수출되고, 김혜순, 김이듬, 편혜영, 윤고은, 김금숙 등
우리 시인과 작가가 해외의 유력 문학상을 받곤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터이다.
특히 우리 여성 문학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그말이 그녀의 몸속에 부적으로 새겨져 있으므로' 애도의 산문시 '흰'에서는 한강은 말했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의 첨단을 이룩한 나라에서 여성 삶의 기본 문양이 생존이라니, 얼마나 비통한가.
내 제자는 그 절망을 '미래세대에 가질 자격이 없는 나라'라고 우울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포획된 세게에서 우리처럼 다양하게 희망의 통로를 탐구한 문학은 세계에서 드물다.
이 꽃들은 독자를 더 많은 언어로 만날 자격이 있다.
노벨문학상 덕분에 한강 작품은 일주일도 안 돼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거대한 붐을 일으켰다.
이 열풍이 한국문학 전체로 퍼져나갈진 확실치 않다.
2010년대 이후, 한국문학 시장은 자주 싸구려 위안이 범람하는 힐링 소설, 질 낮은 아포리즘을 남발하는 에세이,
막연한 화해를 강요하는 '영 어덜트' 소설에 파먹혔다.
한강 붐이 일회성 기념 소비에서 멈추지 않도록 , 황정은, 조해진, 최은미, 이혁진, 장강명, 김혜진,김기창, 강화길, 이서수 등
다른 뛰어난 한국작가 작품과 이어주는 큐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문학과 출판, 도서관과 서점의 분투가 요청된다.
정부는 꾸준한 지원도 필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떨어진 독서율은 작가들을 궁지로 내몰았고, 한강 작품을 불랙리스트에 올리고
도서관에서 퇴출하는 검열 정책은 수시로 문학의 활력을 빼았었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 출판을 지원할 때 문학성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지침을
한국문학번역원에 내렸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이러한 쪽박깨는 정책을 남발하면 한강이 가져온 한국문학의 기적도 한낱 신기루가 될 것이다.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