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4 한양대 붙박이 주전가드
지금은 사라져버린 농구대잔치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데뷔한 선수는 오세근이다. 중앙대 입학 예정 선수 신분이었던 오세근은 2006년 11월 20일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상무와 맞대결에서 21점 25리바운드 3블록을 기록하며 93-79, 14점 차 승리를 이끌었다. 오세근은 혼자서 상무 팀 전체 28리바운드보다 3개 적은 25리바운드를 잡았다. 2점슛 10개를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물론 상무에서 골밑을 지킨 선수는 백인선, 강은식 등이었다. 강은식은 한양대 재학 중이었던 2003년 농구대잔치에서, 마찬가지로 입학 예정자였던 하승진이 버틴 연세대와 맞대결에서 31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96-91로 승리하는데 앞장선 바 있다. 출전시간이나 매치업 등을 고려하면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오세근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추승균과 함께 한양대를 대표하는 선수인 양동근은 "불러주는 대학이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러브콜을 한 한양대에 갔다(스포츠조선 ‘양동근, 통합 MVP 영광 뒤엔 피나는 노력 있었다’에서 가져옴)"고 했다. 대학 입학 예정 선수가 농구대잔치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1999 농구대잔치부터다. 양동근이 한양대에 입학할 때였다. 양동근은 2000년 1월 10일 명지대와 경기에서 21분 13초 출전해 7점 4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대학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9경기 평균 26분 12초 동안 코트를 누비며 8.7점 1.9리바운드 2.8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했다. 양동근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한양대에서 데뷔 무대부터 주축 가드의 가능성을 뽐냈다.
고교 시절까진 양동근보다 앞서나갔던 옥범준은 “한양대 때 잠재력이 터졌다. 우리 때부터 예비신입생도 농구대잔치를 뛸 수 있게 바뀐 걸로 기억한다”며 “동근이가 그 때 경기를 뛰면서 날아다녔다. 엄청 났다. 득점, 어시스트, 모든 부분에서 정말 잘 했다. 1학년부터 내내 주전으로 뛰면서 저는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동근이는 그 때 정말 잘 했다”고 양동근의 기량을 인정했다.
한양대 2년 선배였던 박유진은 “농구대잔치 때 입학 예정자 중에서 제일 잘 했고, 1학년부터 곧잘 하더라. 우리 학년에는 가드가 없고, 한 학년 아래에도 이철규와 양동인 뿐이었다. 가드가 없는데다 동근이가 똘똘하게 잘 해서 출전시간 보장을 많이 받았다”며 “김춘수 감독님께서 바라시는 플레이(ex. 스텝을 놓을 때 원스텝)를 잘 따라 했고, 워낙 영리했다. 좋은 신체 조건도 발휘되고, 노력도 많이 했다”고 대학 시절 양동근을 설명했다.
수비는 여전했다. 양우섭은 “고등학교 때 대학이랑 연습경기를 하는데 한양대와 하면 가기 싫었다. 동근이 형이랑 김학섭 형 둘이 워낙 수비를 잘 해서다”라며 “다른 대학은 괜찮은데 한양대만은 죽을 정도로 가기 싫었다. 그러면서 (양동근과) 많이 (매치업을) 하면서 보고 배웠다”고 했다.
이상준은 “고등학교 때 농구 스타일은 슛이 별로 없었다. 대학 때 슛 연습을 많이 해서 슛도 많이 던졌다”고 했고, 박유진도 “1,2학년 때 정통 1번(포인트가드)이라기보다 공격형 선수였다. 슛이 없는 선수가 아니다”고 했다. 김승현은 “ 양동근과는 학교가 가까이 붙어있어 내가 대학생 때부터 연습경기를 많이 해왔다. 그때부터 양동근은 굉장히 열심히 하고 성실한 선수라고 생각했고,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경기를 운영하는 성격이고 양동근은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궂은일을 마다치 않은 선수이다(점프볼 ‘김승현, 포인트가드에게 고함 ‘네 멋대로 해라!’’에서 가져옴)”고 기억했다.
양동근은 농구대잔치에서 1999년과 2000년에는 56.5%(13/23)와 40.7%(11/27)로 준수했지만, 2학년부터 차례로 40.0%(4/10), 18.2%(2/11), 21.4%(3/14)로 3점슛 시도와 성공률이 줄었다. MBC배나 연맹회장기에서도 3점슛 시도나 성공률은 들쭉날쭉했다. 이 가운데 득점력은 좋았다. 비결은 2003년 농구대잔치에서 2점슛 성공률 65.2%(45/69)를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뛰어난 센터 수준의 2점슛 성공률이다. 2003년 MBC배에서도 2점슛 성공률 66.7%(44/66)를 기록하며 평균 21.7득점했다.
한상민은 “대학 때 동근이는 김태환이란 센터와 함께 투맨 게임을 잘 했다. 돌파와 수비를 잘 하는 선수였다. 그렇지만, 슛이 좋은 건 아니었다. 프로 1,2년 차까지는 3점슛이 안 좋았다. 슛은 계속 좋아졌던 선수였다. 경기를 많이 뛰어서 기량이 발전 가능했다”고 옛 기억을 꺼냈다.
한양대 후배인 조성민은 “지금과 비슷하다. 체력이 좋고, 수비가 좋은 선수였다. 그 때 당시에도 수비상, 어시스트상을 동근이 형이 휩쓸었다. 그래서 앞선이 강했다”며 “앞선이 중심을 잡아줘서 4강 이상 성적을 무조건 냈다. (대학 무대에서) 2~3위 하는 정도의 선수 구성이었다”고 기억했다. 양동근은 한양대 입학과 함께 주축으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며 프로 무대에서 활약할 기반을 다졌다.
첫댓글 확실히 대학도 경기를 계속 뛰어야지 기량이 늘어요..
선수는 뛰는 시간이 주어져야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