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충성된 일꾼에 대한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기적인 본능을 따라 행하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오늘은 부천 갑니다.
딸과 사위 그리고 예진이에게
주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본문 주해)
1~2절 : 누구에게도 명령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바로,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이끌고 세계를 주름 잡던 바로는 스스로를 신처럼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로에게 모세가 신이 되도록 하겠다고 하신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신처럼 된다는 것은 모세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차근차근 말씀하신다.
‘내 말을 네 형 아론에게 말해서 그가 바로에게 말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내게 하라’고 하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조금도 굽히지 않으신다. 이것이 자기 언약에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열심이며 신실하심이다.
3~7절 :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심으로 하나님의 표징과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시겠다고 하신다. 그것은 바로와 애굽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참 신이신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고자 함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애굽화 되어 있었다. 비록 고센 특구에 살기는 했지만 애굽의 문화와 종교에 깊이 물들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애굽이 섬기는 신들과 문화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인가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따라서 열 재앙들은 애굽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징계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분명하게 각인시키고자 하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많은 재앙을 더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해내시는 것은 단지 자신들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그러한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구원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원(4절)이라는 것이다.
8~13절 :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자꾸 모세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 하나님 되심을 증명해 보라는 의미로 ‘이적을 보이라’고 한다.
이는 고대 애굽인들의 종교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신의 메신저로 오는 자들은 그 증거로써 자신들을 보낸 신의 능력을 이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론이 지팡이를 던지자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다.
그러자 바로가 불러온 애굽의 술사들도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한다. 이것은 그들이 악한 영의 도움을 받아 초자연적인 힘으로 이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아론의 지팡이 뱀이 술사들이 만들어 낸 뱀들을 모조리 삼켜 버린다. 이는 영적 세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사악한 영적인 힘은 결코 성령의 능력을 앞서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나의 묵상)
바로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의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바로가 다른 인간보다 악해서 하나님의 재앙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는 왕으로서 그 누구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또 그가 애굽의 좋은 노동력인 이스라엘이라는 노예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바로는 애굽 왕으로서 그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의 완악함(강퍅함)이었다.(3,13절)
바로의 완악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는 일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애굽의 술사들을 시켜 그들의 지팡이도 뱀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완악함이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내세워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자들이 있고, 윤리도덕적인 차원의 선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교회 안에도 있다.
전도, 선교, 봉사, 구제 등의 행위를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자들도 있지만, 이를 통해 자기만족을 구하고 자기사랑에 도취한 자들이 많다. 이들은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인 양 위장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그 마음에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이들뿐이랴!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것에 더 끌리는 죄악 된 본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내가 아닌가?
자고 일어나면 내 심령은 완악해져 있고, 무슨 일을 열심히 하면 하는 대로 또 완악해져 있다. TV를 보고도 완악해지고, 이런저런 대화에도 완악해진다.
이런 나에 대해 스스로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예전처럼 이 문제 자체에 전전긍긍하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기만을 바라며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말씀이 아니면 나의 완악함을 볼 수 있는 곳이 없고, 말씀이 아니면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붙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양 저 모습으로 완악해진 내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긍휼의 은혜만을 구한다.
완악함으로 재앙을 부르는 자가 되지 않고, 날마다 그 완악함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은혜가 풍성한 자가 되길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바로의 완악함이 익숙한 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제 생각이 더 정당하다고 여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 사람이 다 옳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아니란 것을
날마다 말씀에서 배웁니다.
말씀 앞에 고집 피우며 완악한 자 되지 않게 하옵소서.
차근차근 반복하여 말씀하여 주실 때
모세처럼 변화되어 순종하게 하시고
바로의 완악함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 되어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