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폭탄 테러’에 대응하는 슬기로운 의정생활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 매일 글 쓰고 문자도 하나씩 보내주세요. 송영길 대표 010-××××-××××, 김용민 최고위원 010-××××-××××….”
최근 민주당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당 지도부를 향한 문자폭탄 테러가 한창이다. ‘조국 사태’ 사과와 종부세 완화 등 신임 지도부 행보에 대한 분노가 쌓인 상태에서 대선 경선 연기 논란과 ‘김경율 면접관’ 소동 등 내홍까지 겹치면서 문자폭탄 테러로 확전된 것이다. 이들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뿐 아니라 전체 의원 전화번호부를 돌리며 ‘더 화를 돋울 수 있는 표현’ 등도 공유한다.
물론 ‘문빠’들의 문자폭탄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막상 한번 당해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원인 중 하나로 조국 사태를 언급했다가 이른바 ‘초선 5적’으로 몰렸던 의원들은 입에 담기 힘든 성적 욕설부터 “네 딸도 꼭 조민 양(조국 딸)처럼 고통 받길 바란다”는 저주성 문자까지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한들 휴대전화가 과열되다 못해 저절로 꺼질 정도로 쏟아지는 문자에는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선의 송 대표조차 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요즘 문자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존댓말만 남기고 나머진 다 차단한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문자폭탄에 대해선 자타 공인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민주당 내 ‘비주류’ 의원들에게 그들만의 대응 노하우를 물어봤다.
A 의원은 쿨하게 “간단하다. 번호 3000개만 차단하면 된다”고 했다. 그 정도면 어떤 강경 발언을 해도 웬만해선 걸러진다고 했다. 다만 단점이 하나 있다. B 의원은 “3000개 넘게 모은 차단번호들이 혹여나 날아갈까 두려워 휴대전화를 못 바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출시된 지 수년이 지난 구형 아이폰을 아직도 쓰고 있다.
‘비주류 좌장’ 격인 중진 C 의원은 “그래서 번호가 아니라 문구로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 갤럭시 폰을 쓰는 그는 16개까지 가능한 차단 문구를 수시로 변경한다. 물론 기가 막힌 차단 문구 설정이 핵심이다. 지난달 중순 기준 그의 차단 문구는 ‘조국’ ‘검수완박’ ‘임대사업’ 등이었다.
더 독한 사람들도 있다. D 의원은 문자폭탄 번호를 별도로 수집했다가 역으로 자신의 의정활동 홍보 메시지를 정기적으로 보낸다. E 의원은 심지어 자신의 개인 폰에 문자폭탄 번호를 일일이 저장해둔다. 그는 “문자가 뜸하다 싶을 땐 먼저 전화를 걸어 ‘요즘은 왜 연락을 안 주시냐, 혹시 제 의정활동이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한다”고 했다.
물론 이들의 대응이 “문자폭탄은 ‘양념’”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선출직이라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윤건영 의원),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화법이 아니다”(박주민 의원) 등의 경지에는 못 미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들 나름의 슬기로운 의정생활인 건 확실해 보인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