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로마서는 1장에서 8장까지
전개되는 가운데 표적이나 기사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신앙의 본 괘도에 들어가기 전에는
표적과 기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 다음에 로마서가 있음을 늘 기억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에피)와 그 복음을 잠잠히
이룰 때에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엔)의 역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역의 영과 존재가 되는 영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역의 영은 나타났다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존재의 영은 영원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저자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온 천하 만물은 다 물과 성령으로 되어졌습니다.
하늘의 것은 성령으로 땅의 것은 물로 되어졌습니다(벧후3:5)
우리 자신의 재창조(거듭남)도 물과 성령으로 되어 집니다(요3:5)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복을 입은 것은 파티 장에 들어가기 위한 것일 뿐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로마서 안에 바울이 가진 그리스도의 정신이 배어들어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지금의 서방 7개국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센 나라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은 복음을 통해 그 센 로마를
복음화 시켜 전 세계를 복음화 시켜야 하겠다는 바울의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통해 바울이 가진 성령의 정신,
그리스도의 정신을 우리가 물려받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은 세상의 어떤 사물보다 복잡한 존재입니다.
거듭난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상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로마서와 교회서신을 통해서 우리의 사상이
변화되고 정화되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아니 그대로 두면 죽을 때까지 본성이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브레이크의 성능이 달라 그게 우열로 나타날 뿐입니다.
따라서 참 기도는 우리의 생각에 주님의 생각으로 가득히 채워져서
하나님의 창조의 뜻에 의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 중에 가장 좋은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입니다.
롬4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을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구원받은 선진들의 믿음의 전통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믿음은 성경의 공인을 받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만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롬1장-11장까지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롬12장의 산 제사로 바로 들어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천주교는 행함이 곧 구원이라 합니다.
산제사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부터가 아니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산제사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듣는 헌신이 먼저 되어야 삶의 헌신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결혼하고 나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신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시부모를 모시려고 하는 일은 상식적으로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에 의한 섬김이나 봉사를 하나님이 보신다면 네가 임의로
가져 온 것이지 내가 언제 너희에게 요구하더냐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사1:12 참조)
롬5장은 1-11절까지는 완전한 구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모든 것이 이 말씀 안에 총망라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하나님과 평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 화평을 누리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건 대단한 복입니다.
죄 때문에 가로 막혔던 하나님과의 사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활짝 열려 하나님과 화평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롬14:17)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이렇게 저렇게 행해야 하는 조건적인 말씀입니다만
그 아들의 음성은 그 말씀을 들으면 심령 속에 서서히 배어듭니다.
배어들 뿐 아니라 곧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아들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십니다(요5:25)
또한 옛적에는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엔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겁니다(히1:1-2)
그러므로 그 아들의 말씀을 증거 하는 자의 권위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순종이란 말은 그분 앞에 '엎드려 듣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행할 수 있는 원리와 능력이 그 안에 나타납니다.
바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롬5장 12절부터 7장 4절까지는 신앙의 원리 문제입니다.
롬5:12-21은 아담과 그리스도, 롬6장은 죄와 의,
롬7장은 전 남편과 다시 살아나신 새 남편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소속부터 먼저 확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사단의 참소를 끊임없이 받게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담 안에 그대로 있어서 구원받지 못한
신자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어린아이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아담 안에는 어둠이요 사망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빛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 장로 체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보내신 아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를 지켜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그 부활과 생명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아서 의의 대표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소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언제나 주로 모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의 대표인 아담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에게 종노릇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언제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생각을 확립하고 있어야 됩니다.
결국 말씀이 믿음이 되고, 믿음이 사상이 되어야 행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죄도 권세가 있어서 죄가 왕 노릇합니다. 당연히 의도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도 왕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효력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가 임하면 그때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내가 통과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주님과 함께 통과한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세례(침례)와 죄 사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므로 의를 얻습니다(행2:38)
그로 인해 다윗처럼 하늘가는 밝은 길이 항상 앞에 있어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앙망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행2:14-36)
이 믿음은 주께서 제시하신 최고의 믿음이며(마22:41-46) 베드로와
바울의 증거와 히브리서의 믿음의 선진들의 뒤를 따르는 실상이 되는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