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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신드롬과 술
가을은 다가오는데 득달같이 달려드는 고독을 어찌할 것인가? 가을의 사나이 릴케는 그저 포도가 빨리 익기만 기원하고 있다. 포도 따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포도주 때문이다. 가을과 고독과 포도주, 뗄 수 없는 관계다.
얼마 전에 안재환이라는 탤런트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고 한다. 그 후 같은 방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모방자살을 '베르테르 신드롬'이라고 한다. 괴테의 베르테르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권총으로 자살한 후 유럽의 수많은 청년들이 따라 자살한 데서 유래한다. 조사보고에 의하면 당시(18세기 말 엽) 유럽에는 베르테를 따라 죽은 청년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베르테르, 그는 정말 죽어야 했을까? 그까짓 남의 여자(Lotte) 하나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최소한 술이라도 좀 마실 줄 알았다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술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괴테는 베르테르의 주검 현장을 딱 두 문장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그게 이렇다. 와인은 딱 한 잔만 마시고 버려두었다. 서대 위에는 <에밀리아 갈로티>가 펼쳐져 있었다.
와인과 <에밀리아 갈로티>. 레싱의 책이 왜 베르테르의 시체 옆에 펼쳐져 있었는지는 복잡한 이야기이니까 그만 두고 와인에 주목해 보자. 와인을 한 잔 만 마시고 그냥 두었다니? 괴테는 왜 자살한 사람 옆에 놓인 마시다 만 와인에 관심을 가졌을까? 포인트는 "한 잔 밖에 nur ein Glas"라는 표현에 있다. 'nur' 에는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이 스며있다. 와인을 한 잔 밖에 마지시 않은 망자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니까, 베르테르가 와인을 제대로 좀 마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함의가 아니겠나.
괴테, 그는 83 년을 살며 사랑이란 사랑은 다 해 보았고 실연도 했지만 입에서 와인을 떼지 않고 산 사람이다. 와인은 사람의 가슴을 즐겁게 하나니 즐거움은 모든 미덕의 어머니다 고 한 것도 괴테다.
<파우스트>에도 술 마시는 것으로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평생 서재와 실험실에서 고독하게 진리를 탐구하던 파우스트가 절망으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부활절 종소리 때문에 미수에 그친다. 그런 그가 메피스토에 이끌려 세상으로 나오며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그리고 놀라워 하는 것은 술 마시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아우어바흐어 술집 이야기다. 베르테르가 술을 마시지 않았기(못했기) 때문에 실연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단순 논리는 아니지만 “한 잔 밖에”라는 수사는 술의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와인은 알콜이라는 음료를 말한다기보다는 관계를 매개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말하자면, 와인은 한 잔 밖에 마시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말은 잔 부딪히며 이야기할 친구나 이웃 하나 없는 베르테르의 깊은 고독을 암시한다. 실제로 소설을 다 보아도 베르테르에게는 술 한 잔 같이 마실 지인이 없다. 내내 독백의 편지나 쓰고 앉아 있다. 베르테르의 자살은 바로 이 답장 없는 편지쓰기에 연유한다. 그 시간에 누구랑 술이나 마셨으면 혼자 쓸 데 없는 감정을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타르시스가 일어나 과도한 감정이 청소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만 마시면 술은 육신에도 카타르시가 된다. 카타르시스는 원래 의학적인 용어였다.
통계가 말하듯이 자살의 40%는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베르테르가 누구와 술잔 부딪히며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죽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윤리적으로 확대하면 삶의 무게로 힘겨워하는 베르테르 같은 이웃에게 술 한 잔 건네는 측은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가을에 필요한 미덕이다. 내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와인 예찬론자가 되었지만 성경도 술을 부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요즘 와인학이 생겼을 정도로 와인에 관심이 많은 모양지만 이미 3 천 년 전에 솔로몬이 와인의 도를 깨치고 있었다. 와인은 '영혼의 위로'라는 말도 그가 한 명언이다. 로마 사람들은 아예 'In Vino Veritas'라고 하여 '와인 속에 진리가 있다'고 했다. 술 마시면 진실이 나온다는 말이다. <가을 날>에서 릴케는 계속 말한다.
시는 여기서 끝나고 더 이상 말이 없지만 이 때 와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단 맛이 잘 든 포도로 만든 와인이.
어제 밖에 나갔다가 마음씨 좋은 동창에게 와인 한 병을 얻어왔다. 저간에 내가 하도 술타령을 해 대니까 준 모양이다. 염치 없지만 넙죽 받아와 고맙게 마시고 있다. 뭐, 가을맞이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느낌이 든다.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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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출장길에 올라오면서 동대구서 내려 함 뵙고 올라 올려고 했는데 일행이 있어 여의치 않았습니다. 경규형! 귀한 와인 다 비우지말고 쪼매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술은 취할려고 마시는거 처음처럼 일병하고 믹서해서 한잔하구로...
무신 소리하나. 독주도 아니고 뚜껑 딴 와인을 남겨놓나니. 벌써 다 비웠다. 언제 보면 소주나 마시자. 이 땅에서 우리 같은 프로레타리아가 취기가 돌 만큼 마실 술로 소주 만한 게 뭐 있겠나. 뵙느니 찾느니 마음 쓰지 말고 인연에 맡겨두면 때가 오겠지. 건강하고 사업 열심히 하길. lee
대학원 괴테수업을 위해 베르테를 독일어로 읽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베르테르의 자살장면에서 번역본에서는 못느꼈던 감정에 북받쳐 엄청나게 많이 울었고 나 역시 자살충동을 아주 많이 느꼈었죠. 선배의 논리와 정반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술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술의 힘을 빌어 그 경계를 넘어가고 싶은 유혹이 더 많던데요? ㅋㅋㅋ 내게 술마시자는 사람 이제 아무도 없겠당!
이 시대에 베르테르를 읽고 눈물 흘리는 감성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 물론 동시대인이라고 다 동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니까 별 시대 착오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게다가 20대 후반에도 사춘기를 겪는 사람이 있으니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야 술 마시는 게 죽을 맛이겠지만 술이 좋은 사람은 죽을 맛이다가도 술을 마시면 카타르시스가 일어나지. 술 마시며 죽고 싶다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죽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 하여간 내 술 궤변은 알코올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소통의 매개라는 데 포인트가 있음. 술 한 잔 안 마시면서도 분위기 돋우는데 탁월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미끼도 없이 고기를 낚는 대가급이지.
20년도 더 지났는데 이 시대에 해당되나.요.. 생각해보니 그 때가 내 사춘기였어요. 근데 그 때 하도 많이 울었던 기억으로 아마 지금 다시 읽어도 별로 자신없네.... 선배 말이 참 맞네요.. 나도 술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든 상대가 있든 소통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말이죠. 속을 좀 튼튼히 해서 함 도전해보리다.